수출 강국 위한 정부의 정책과제
우리나라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아 ‘외풍’을 많이 탄다. 세계 경제 상황과 교역 상대국의 경기 변동에 따라 국가 경제 전체의 부침이 심하다는 뜻이다. 전체 총수출입액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인 무역의존도는 2019년 기준 63.5%로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수입은 수출을 위한 자본재나 중간재 비중이 크기 때문에 수출이 줄어들면 수입도 위축되고, 결국에는 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어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다. 코로나19로 충격을 받은 2020년이 바로 그런 해였다. 수출입이 모두 줄어들어 실질 GDP 성장률이 -1.0%라는 역성장을 기록했다.
2021년에는 상황이 다르다. 코로나19 유행이 해를 넘겨 장기화하는 가운데서도 수출이 빠르게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에 따라 제조업 중심으로 기업 실적과 투자도 개선세가 뚜렷하다. 수출이 경제회복 흐름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 충격을 고려하면 2020년 우리나라 수출은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국경 간 통관 기준으로 집계한 2020년 세계 교역은 전년 대비 9.7% 줄었는데, 우리나라 상품 수출은 -5.4%로 세계 교역보다 감소 폭이 더 적었다. 세계 10대 수출 대국 가운데 2020년에 우리나라보다 더 나은 수출 실적을 기록한 국가는 중국과 네덜란드뿐이다.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두 자리 수출 감소율을 기록했다. 과거 대외 충격을 겪을 때와 비교해봐도 수출이 잘 버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0년 이후 세계 경제의 침체로 교역이 감소한 사례는 2020년을 포함해 네 번 있었다. 2020년 이전 세 차례 충격기에는 우리나라 수출이 세계 교역보다 더 빨리, 더 깊게 침체의 수렁에 빠져 있었다.
수출 2020년 3분기 기점 완연한 회복세
수출은 2020년 3분기를 기점으로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4분기에는 수출액과 증감률이 2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공교롭게도 수출이 증가세로 돌아선 시점은 코로나19 3차 확산이 전 세계에서 본격화할 즈음이다. 수출 호조에 힘입어 경제성장률도 반등 흐름을 타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2020년 지출항목별 GDP 구성에서 순수출(수출-수입)의 성장 기여도는 0.4%포인트를 기록했다. 수출의 기여가 없었다면 2020년 경제성장률은 -1.0%가 아니라 -1.4%까지 떨어졌다는 뜻이다. 수출의 양적 회복보다 더 희망적인 것은 질적 성장이다.
정부의 발 빠른 대책 마련으로 수출 복원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민관 합동으로 수출 제고에 모든 역량을 쏟아 위기를 슬기롭게 벗어날 수 있었다. 반도체 등 수출 비중이 큰 주력 제조업의 저력과 탄탄한 대외 경쟁력도 확인했다. 특히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주요국의 방역 강화와 이동제한 조치가 비대면 경제의 확대를 가져와 컴퓨터, 무선통신기기, 2차전지, 가전 등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품목의 수요 기반을 넓혔다.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친환경차,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부가가치가 높은 유망 품목의 수출이 연간 최고 실적을 달성한 것은 미래 수출 전망에 긍정적인 신호이다.
수출 주체와 품목의 다변화도 큰 성과다. 한국의 우수한 방역 체계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화장품이나 농수산식품 같은 일반 소비재 품목 수출이 크게 늘고, 자연스럽게 중견·중소기업의 수출 참여도 활기를 띠고 있다. K-뷰티, K-푸드와 같은 한국산 제품이 코로나19를 겪으며 브랜드화되었다. 냉동만두의 수출 급증이 단적인 사례다. 냉동만두 수출은 2016~2019년까지 연 평균 증가율이 10%에도 못 미쳤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가정 간편식 수요가 늘면서 전년 대비 46.2% 증가한 5089만 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
수출 경기 3월 이후에도 증가세 이어갈 전망
주요 품목의 고른 수출 호조는 2021년 들어 2월까지 실적에서 잘 드러난다. 수출 상위 15대 품목 가운데 11개 품목이 두 달 이상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진단도구(키트)를 포함한 바이오헬스는 18개월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16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프리미엄 제품 비중이 커지고 있는 가전은 수출 단가 상승과 함께 8개월째 증가세다.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무선통신기기 등 정보기술(IT) 관련 세 가지 품목은 2월에 모두 1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하며 4~6개월 연속 증가하고 있다. 자동차는 스포츠실용차(SUV)와 친환경차를 중심으로 1월에 이어 2월에도 40%가 넘는 수출 증가세를 보였다. 자동차 수출이 두 달 연속으로 40%대 증가율을 기록한 것은 10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조업일수만 따져서 2월의 하루 평균 수출액을 계산하면, 석유제품과 섬유를 제외한 13개 품목이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를 이어갔다. 2014년 5월 이후 6년 9개월 만에 가장 많은 품목이다. 수출 대상 지역을 크게 아홉 곳으로 나눠 하루 평균 수출의 증감 추이를 보면, 중동을 제외한 여덟 곳이 증가세를 기록했다. 품목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수출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수출 경기는 3월 이후에도 강한 증가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수출입은행은 주요 수출 대상국의 경기, 수출용 원부자재의 수입 증감 추이, 제조업의 신규 주문 등으로 구성되는 수출선행지수가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어, 1분기 전체가 전년 동기 대비 10~12%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2월까지 수출 회복 속도를 확인한 다음 연간 수출 전망을 상향 조정하는 기관들도 늘고 있다. 한국은행은 2월 중순에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2021년 상품 수출 증가율 전망치를 종전 5.3%에서 7.1%로 1.8%포인트나 올려 잡았다. 상품 수입 증가율도 5.9%에서 6.4%로 상향 조정했고, 경상수지 흑자는 600억 달러에서 640억 달러로 수정해 전망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2월 경제 브리프’ 보고서에서 서비스 교역까지 포함한 2021년 수출 전망치를 기존 4.1%에서 5.3%로 올려 잡았다. 백신 보급과 접종 확대에 따른 주요국 소비·투자 활동 재개, 반도체 경기 호조,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반영한 상향 조정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연구소는 수출 전망치 상향 조정과 함께 2021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기존 3.0%에서 3.3%로 상향 조정했다. GDP 성장률의 개선을 수출이 견인한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설비를 갖춘 평택공장 2라인 | 삼성전자
범부처 차원 수출 총력 지원 체제 가동
수출에 대한 정부 기대감은 경제 전망 기관보다 더 높다. 정부는 수출 증가율을 8%대로 예상하고, 2020년과 마찬가지로 범부처 차원의 수출총력지원체계를 가동할 방침이다. 무역금융에 167조 원을 투입해 수출 활력을 적극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무역금융’은 수출입 활동 과정에서 필요한 원자재 구입 자금이나 물류비 등에 소용되는 단기 자금을 저리로 대출해주거나 보증해주는 금융서비스다.
산업별 수요 특성을 반영하는 맞춤형 무역금융 상품을 상반기 중 개발하고,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 관리에 취약한 중소기업에는 보험료를 최대 45% 인하한 상품을 연내 내놓는다. 수출 기업의 토대를 넓히기 위한 정책 지원으로 종업원 10명 이하의 소상공인 기업에 집중한다. 정부는 2030년까지 수출 중소기업 수 20만 대에 진입하고, 무역 2조 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 약 600만에 이르는 소상공인 사업체의 수출 기업화를 통한 저변 확대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는 3월 초 코트라에 ‘소상공인 수출지원센터’를 개설했다. 센터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중소상공인희망재단 등 유관기관과 함께 수출 지원을 위한 대내외 협업 프로젝트, 해외 마케팅 컨설팅 등을 총괄한다. 기술력이 있는 유망 소상공인 발굴, 수출 실무 교육, 온라인 수출 마케팅, 샘플 테스트 등으로 ‘첫 수출 성공 패키지 사업’을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수출을 희망하는 소상공인에게는 코트라가 운영하는 ‘수출 전문위원’을 배정해 맞춤형 멘토링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3월 4일 서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열린 소상공인 수출지원센터 현판식에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산업통상자원부
무역 구조 디지털로 전환 포스트 코로나 대비
수출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범부처 지원 사업도 시작한다. 산업부를 비롯한 7개 부처와 17개 광역 지자체, 6개 유관기관 등이 참여하는 ‘해외마케팅 정책협의회’를 구성해 2021년 사업 계획을 수립했다. 코로나19로 대부분 중단된 해외 전시회와 공동 시장 개척단 운영을 온라인, 온·오프라인 융합 등 다양한 형태로 조직해 중소기업 해외 마케팅을 총력 지원하기로 했다.
각 부처와 지자체는 약 682억 원을 투입해 6800여 중소기업이 참여하는 448건의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상반기에는 소비재 등 비대면 마케팅이 용이한 품목과 온라인 전시회 중심으로, 하반기에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등 전략 품목의 글로벌 공급망 진입을 목적으로 한 온·오프라인 융합 전시 등 코로나19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일정을 짤 계획이다.
무역의 디지털 전환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중요 정책 과제다. 우선 국내 3대 온라인 무역 플랫폼인 바이코리아(코트라)와 고비즈코리아(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트레이드코리아(무역협회)를 점차 기능적으로 통합해 입점 기업 확대와 대형화를 추진한다. 기존에 없었던 전자계약 체결 기능을 갖추고, 1만 달러 이상 결제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높여 어느 플랫폼을 방문해도 하나의 플랫폼처럼 3대 플랫폼에 입점한 상품을 비교·선택할 수 있도록 개편한다. 연말에는 3대 플랫폼에서 가장 많이 팔린 기업과 상품을 선정한 뒤 미국 아마존과 중국 알리바바 같은 세계적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공동 한국관’을 구축해 판매를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섬유·바이오헬스·전자·스마트홈·로봇 등 10대 제조업의 온라인 상설전시관도 가동하기로 했다. 이들 전시관을 허브로 활용해 ‘한국전자전’ 같은 이름으로 7대 산업전시회를 세계적 수준의 온·오프라인(O2O) 융합 전시회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수출 지원 시스템도 디지털로 전환한다. 전자무역체계 개편, 통관·인증 절차의 전자화, 비대면 금융·법률 서비스 신설 등을 통해 궁극적으로 수출 전 과정을 디지털화할 방침이다. 무역 구조를 디지털로 전환하면 수출 중소기업 수와 저변 확대, 서비스·상품 전반의 품목 다변화, 온라인시장 개척 등으로 무역 장벽 완화 등 ‘일석 삼조’ 효과를 낼 것으로 정부는 기대한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