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디 귀한 코로나19 백신 K-주사기로 마지막 한방울까지…

2021.03.15 최신호 보기
▶충남 공주시 우성면에 위치한 신아양행 공장의 LDS 주사기 생산 현장. 조립 라인에서 주사기 바늘이 외통에 조립되고 있다.

주사기 제조업체 신아양행을 가다
2월 말부터 국내 코로나19 예방접종을 시작한 가운데 접종 시 사용하는 최소잔여형(LDS) 주사기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LDS 주사기는 투약 뒤 남아 버려지는 약물을 최소화하는 주사기다. 이 주사기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를 사용할 경우 백신 1바이알(병)당 접종 가능 인원을 1~2명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LDS 주사기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기존에 이 주사기의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해놓은 우리 벤처기업들이 있어 이른바 ‘K-주사기’라는 말도 나왔다. 국내 업체 가운데 두원메디텍과 신아양행은 질병관리청에 이 주사기를 납품했고, 풍림파마텍은 미국 수출을 앞두고 우리 정부에 주사기를 기부했다. LDS 주사기는 어떤 주사기이고, 어떻게 만들어질까? LDS 주사기를 생산하고 있는 신아양행을 찾아가 봤다.

“이전에는 발주 때 바짝 만들던 제품인데요. 지금은 주야간 교대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3월 3일 경기 성남시 소재 신아양행 사무실에서 만난 방상혁 대표의 설명이다. 국내 코로나19 예방접종이 시작되면서 요즘 신아양행은 LDS 주사기 생산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회사 측엔 수출 관련 문의, 인터뷰 요청 등도 쇄도한다. “우리 회사가 생산하는 주사기가 국내 코로나19를 막아낼 예방접종에 쓰인다니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합니다. 백신을 한 사람이라도 더 접종할 수 있으니 국가 차원에서도 이득이 되는 일이잖아요. 덕분에 직원들 자부심도 커진 것 같아요.”

비싼 약 투입 시 사용, 미국 수출용으로 생산해
신아양행은 의료기기 제조 벤처기업으로 인슐린 주사기, LDS 주사기, 안전 LDS 주사기, 주사침 등을 생산해왔다. 이 회사는 전체 생산 제품의 85%를 해외로, 그 가운데 주사기의 경우 거의 전량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사실 LDS 주사기는 수요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신아양행 주주 회사 가운데 한 곳에서 이 주사기를 생산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 제품을 생산하게 된 계기였다. “신장에 이상이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약을 주입해야 하는데 치료제 가격이 너무 비싼 겁니다. 버려지는 고가의 약물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LDS 주사기를 제작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1995년 LDS 주사기를 개발했죠. 이 주사기는 월 약 150만 개씩 미국으로 수출했습니다.”
특수 주사기에 해당하는 LDS 주사기의 이름은 ‘Low Dead Space’의 줄임말이다. 즉 주삿바늘과 밀대(피스톤) 사이의 ‘죽은 공간’을 최소화한다는 뜻이다. 일반 주사기의 주사기 잔여량이 0.07밀리리터 이하(식약처 의료기기 기준규격)라면, LDS 주사기는 잔여량이 0.035밀리리터 이하(EMA, 유럽의약품청 기준)다. 일반 주사기는 밀대와 바늘 사이에 공간이 꽤 남지만, LDS 주사기는 남는 공간이 일반 주사기의 절반 이하다. 그야말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낼 수 있다는 얘기다.
업체마다 다양한 형태의 LDS 주사기가 나와 있다. 그 가운데 신아양행 제품은 바늘 고정형으로 가장 단순하고, 버려지는 약물을 최소화하도록 설계했다는 게 특징이다. 한국화학시험연구원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신아양행 LDS 주사기의 약물 잔류량은 4마이크로리터다.

▶완성된 LDS 주사기. 주삿바늘과 밀대(피스톤) 사이의 공간이 일반 주사기의 절반 이하다.

잔류랑 4마이크로리터, 예방접종에 최고 효율성
“실제 일반 주사기와 직접 비교해볼까요?”
일반 주사기와 LDS 주사기에 각각 같은 양의 커피를 넣은 뒤 밀대를 올리며 시범을 보이는 방 대표. 일반 주삿바늘과 밀대 사이엔 갈색 커피가 남은 게 확연히 보였지만 LDS 주사기는 그렇지 않았다. “전혀 안 보이죠? 사실 이 주사기에도 커피가 남아있긴 합니다. 바로 바늘 속에 있죠. 밀대를 당겨보면 바늘 안에 있던 게 다시 역류해 눈에 보이긴 해요. 이 양이 바로 4마이크로리터죠. 일반 주사기의 경우 보통 잔류량이 75~84마이크로리터 정도거든요. 이 말은 LDS 주사기를 사용할 때 버려지는 약물 잔량이 사실상 거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백신을 조금이라도 더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죠.”
언젠가 백신이 나오리라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LDS 주사기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용 주사기로 주목받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2020년 12월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주사기 생산업체들 측에 이 주사기에 대한 다양한 문의가 들어왔다. 실제 이 주사기를 생산하고 있는지, 공급 물량은 어느 정도까지 소화 가능한지 등 다양한 질문이 오갔다. 이후 2021년 1월 하순쯤 조달청을 통해 수의계약(경쟁이나 입찰에 의하지 않고 상대편을 임의로 선택해 체결하는 계약)을 진행했다.
LDS 주사기는 전 세계적인 관심거리다. 일본의 경우 이 주사기를 사전에 확보하지 못해 1병당 5회분만 사용하게 돼 일본 내 공급 계약된 화이자 백신 7200만 명분 가운데 약 1200만 명분을 폐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애초 미국식품의약국(FDA)이 화이자 백신의 긴급사용을 승인할 땐 1병당 5회 접종 조건이었지만, 이것이 6회로 바뀌면서 LDS 주사기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신아양행을 비롯해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한 국내업체들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3월 3일 공주시 신아양행 공장에서 김형철 상무가 LDS 주사기 제조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안전성 등 품질 관리 중시, 하루 1만 5000개 생산
현재 신아양행 LDS 주사기는 충남 공주시 우성면에 위치한 신아양행 본사·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날 오후 2시쯤 찾은 LDS 생산 현장은 전례 없이 많은 물량을 소화하느라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방진복(먼지를 막기 위한 작업복)을 입고 생산 현장에 들어서자 셀 수 없이 많은 주사기가 자동화 설비 트랙에서 착착 만들어지고 있었다. 현재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 현장에서 쓰이는 이른바 ‘K-주사기’였다. 직원들은 생산 과정에서 오류가 없는지 검수하고 포장 작업 등도 꼼꼼히 진행했다.
이 회사의 생산 현장은 크게 ‘조립 라인’, ‘포장 라인’ 이렇게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주사기 원료 및 부품은 입고 뒤 수입검사와 사출을 거쳐 이곳 LDS 생산 현장으로 들어온다. 이곳에선 주사기 눈금을 인쇄한 뒤 외통과 바늘, 앞캡과 밀대 등을 조립한다. 조립을 마친 주사기는 블리스터 포장(개별 플라스틱 포장) 공정을 거쳐 상자에 들어간다. 이어 멸균, 최종검사까지 거치면 출고 완료다.
현재 밤낮없이 공장을 돌려 생산하는 LDS 주사기 양은 월 500만 개. 백신 전용 주사기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설비를 증설하기로 하면서 6월 이후에는 월 1000만 개까지 생산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 모든 과정 가운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역시 품질 관리다. 식약처에서도 생산 과정 시 품질에 집중적인 관리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공주시 신아양행 공장에서 미국으로 수출될 LDS주사기가 수출용 컨테이너에 실리고 있다.

“한국산 의료기기 전 세계 알리고 수출 힘 얻었으면”
사실 신아양행 LDS 주사기는 기존 미국 시장 납품분에 더해 6월 국내 질병청에 공급해야 하는 물량까지 더하면 다른 국가에 수출할 양이 충분한 편은 아니다. 현재 신아양행이 국내 질병청에 6월 말까지 납품하기로 한 LDS 주사기는 1250만 개. 유럽 프랑스에서도 구매 뜻을 밝혀와 3~4월 두 달간 600만 개를 수출할 예정이다. 여기에 동남아(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남미(브라질, 파라과이), 중동(아랍에미리트, 이라크) 등 여러 국가와도 수출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단 국가별 인증절차가 달라 수출로 성사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방 대표의 설명이다.
“LDS 주사기는 원래 백신 접종용이 아닌데 급히 백신 접종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벤처기업이 생산한 제품으로 우리나라 국민 한 분이라도 더 코로나19 예방접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한국산 의료기기가 전 세계에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이 수출되기를 희망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품질의 의료기기로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이 되고자 합니다.”

글 김청연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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