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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해마다 수능 시험을 볼 때 자기 필적을 확인하기 위해 쓰는 문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행해온 제도인데 주로 시인들의 시에서 따온 한 줄의 문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첫 번째 문구는 2005년, 윤동주 시인의 <서시> 가운데 한 구절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었다 한다. 그런데 올해는 나의 시 ‘들길을 걸으며’란 작품의 한 구절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이었다 한다. 그 바람에 나도 수능에서 본인 확인 문구란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 와 그대를 만난 건/ 내게 얼마나 행운이었나/ 그대 생각 내게 머물므로/ 나의 세상은 빛나는 세상이 됩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 그대 생각 내게 머물므로/ 나의 세상은 따뜻한 세상이 됩니다.”
‘들길을 걸으며’란 작품의 일부분이다. 이 시는 나의 40대 누군가 한 사람을 위해서 쓴 연애시 가운데 한 편이다. 유난히 살기가 고달프고 힘든 나날이었다.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고 버겁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런 연애시라도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있었다.
이른바 개별이고 특수다. 한 사람의 일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의 일이 30년 세월을 넘어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다. 유난히 힘들게 보낸 지난해. 그 가운데서 고3의 어려운 시기를 우울하고도 따분하게 보냈을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쓰다듬어주기 위해 나의 글 일부가 동원된 것이다.
말하자면 나 한 사람의 개별과 특수가 여러 사람의 것으로 바뀐 것이다. 개인적인 일이긴 하지만 이것이 보편이라고 생각한다. 특수도 좋지만 더욱 좋은 것은 보편이다. 특수는 한 사람만 살리지만 보편은 여러 사람을 살린다. 정말로 좋은 특수는 보편에 이를 수 있는 특수여야 한다.
문학작품이나 예술품에서 좋은 작품은 특수에서 출발하여 보편으로까지 확대되는 작품이다. 독선(獨善)이란 말도 한 사람이나 일부 사람에게만 좋은 것을 말한다. 보다 좋은 것은 공동선(共同善)이다. 다 같이 여러 사람에게 좋은 것을 말한다.
정치든 경제든 교육이든 우리가 원하는 건 개별이나 특수가 아니라 보편이다. 누구에게든지 통하는 것이어야 하고 다 같이 좋은 것이어야 한다. 특히 사회지도층에 있는 분들, 유능한 분들, 학식이 높은 분들, 많이 가진 분들이 이것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알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 것인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어떤 방법으로든 행동에 옮기는 실천이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작은 글의 짧은 문장이지만 시험지를 앞에 두고 힘들어하는 젊은 벗들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도움을 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나태주 시인_ 풀꽃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100여 권의 문학 서적을 출간했으며 충남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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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