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이야기에 아이들의 꿈이 자란다

2021.02.08 최신호 보기
▶경북 안동시 태화어린이집 어린이들이 2018년 10월 ‘어서 오세요 이야기할머니’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한국국학진흥원

13년째 이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
예부터 할머니들이 손주, 손녀들을 무릎에 앉히고 옛이야기나 삶의 지혜를 전했다. 이른 바 ‘무릎교육’이다. 핵가족 시대인 요즘 무릎교육도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은 여성 어르신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유아 교육기관을 방문해 전래 동화 등 우리나라의 옛이야기나 선조들의 미담을 들려주는 사업이다. 이 사업에 참여한 할머니들은 이야기를 직접 만들거나 들려주면서 아이들과 눈을 맞춘다.
경북 의성군 비안면 이두초등학교병설유치원에서는 강점희(70) 이야기할머니를 초빙했다. 이두초교병설유치원에서 진행하는 이야기할머니 교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린다. 강 할머니는 매주 10명의 아이들에게 선현들의 미담이나 전래 동화를 구수하고 정감 있는 목소리로 들려준다. 2020년 추석 명절을 앞두고 특별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평소 방문 때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 할머니같이 아이들도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할머니를 맞이했다. 아이들은 이야기할머니에게 큰절을 올리며 인사를 나눴다. 강 할머니는 추석 전통 예절을 들려주는 한편 〈호랑이와 효자〉 이야기 속에 나타난 효성스러운 주인공을 소개했다.

▶경북 의성군 비안면 이두초등학교병설유치원에서 강점희 이야기할머니가 유아들에게 추석 전통 예절과 전래동화를 이야기해주고있다.│이두초등학교병설유치원

이야기할머니와 소통하며 사랑 나누는 아이들
동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호랑이도 만나보며 ‘효’를 생각해보는 특별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할머니의 다정한 손길, 애정 가득한 말들로 아이들이 자라난다. 무한한 사랑을 전하는 할머니가 아이들을 찾아오는 날,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전해줄지 기대감에 찬 아이들이 한자리로 모여든다.
2013년부터 이야기할머니로 활동하며 항상 다양하고 재미난 이야기로 어린 아이들을 만나는 경북 영주시 영주2동에 사는 조옥수(64) 할머니. 자녀를 키운 경험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주거나 읽어주기 등의 봉사활동에 관심이 있었지만 참여 방법을 몰랐다. 그러다 2010년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에 대해 알게 됐지만 자격 조건에 들지 못했다. 이야기할머니 지원 기준 가운데 나이 제한에 걸려 몇 년 후를 바라봐야 했다.
봉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바로 서류를 냈다. 경북대학교에서 면접을 봤다. 서류와 면접에 통과한 후에 6개월 동안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매달 한 편씩 새로운 이야기를 외워 교육장에서 사람들 앞에 나가 발표해야 했다. 교육을 마친 후 이야기할머니로 처음 방문한 곳은 남산어린이집이었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두근거림은 어쩔 수 없었다. 막상 아이들의 모습을 마주하니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자신이 전하는 이야기에 따라 아이들의 눈빛이 따라 오면 전율이 느껴졌다.
아이들을 위해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읽고 외우기를 여러 번 반복하기도 했다. 이야기할머니가 아이들을 안아주면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어느 날은 이야기를 마친 후에 아이들을 둘러보는데 한 아이가 자리에 없었다. 밖에 나가보니 아이가 신발장에 있는 이야기할머니의 신발을 꺼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야기할머니와 소통하며 사랑을 나눴다.

▶“즐거운 모험 동화가 재밌었어요. 저도 친구를 도와주는 어린이가 될 꺼(거)예요.” 이야기할머니 수업을 들은 전남 무안군 오룡유치원 아이들의 그림편지

부엌을 벗어나 처음으로 생긴 ‘내 일’
경기도 양주시에서 이야기할머니로 활동하는 구본예(68) 할머니는 평생 주부로 살면서 손주를 돌보고 어린이집 도우미 일도 잠깐 했다. 그러던 2014년 이야기할머니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선발 공고를 본 순간 심장이 뛰었다. ‘고정된 직업이 없는 만 56~70세 여성’이라면 누구든지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엌을 벗어나 처음으로 내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지원자가 많아서 주눅 들었지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는 순간 눈물이 맺혔다. 자신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만약 아이들이 이야기 듣는 태도가 좋지 않다면 눈을 맞추고 목소리를 더 작게 내서 집중하게 만들겠다”고 한 게 뽑힌 이유 같았다. 그러나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교육을 받던 중 림프종에 걸렸다. 몸은 완전히 지쳤지만 가발과 모자를 쓰고서 끝까지 교육을 받았다. 림프종에 이어 대상포진도 몸을 덮쳤다. 한쪽 얼굴이 마비됐다. 그러고는 1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봄에 이야기할머니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연락이 왔다. 할머니는 얼굴에 반창고를 붙인 채 2015년 3월 떨리는 마음으로 ‘5세반’ 교실에 들어섰다. 아이들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그날 수업을 다 마친 뒤 교실을 나오려는데 한 여자아이가 할머니를 쫓아왔다. “할머니 얼굴이 낫도록 기도해주고 싶어요.” 그 아이는 할머니의 허리를 끌어안고 기도했다.
구 할머니는 더 열심히 이야기를 외우고 수업을 준비했다. 발음이 어눌할까 봐 수백 번 이야기를 녹음해서 듣고 발음을 고쳤다. 수업용으로 해마다 이야기 30여 편을 새로 외웠더니 이야깃거리도 많아졌다.

▶“모르는 사람들을 이야기로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이야기를 듣고 그림편지를 보내온 아이들│ 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할머니 활동하다 동시 작가로 등단도
이야기를 짓는 할머니들도 눈에 띈다. 옛이야기와 선현의 미담을 들려주던 할머니들은 이제 글을 직접 쓰기 시작했다. 서울에 사는 김혜자(66) 할머니는 ‘월요일 가방’이라는 제목의 동시를 썼다.
“학교 가방 놓고 피아노 가방 든다/ 피아노 가방 놓고 미술 가방 든다/ 미술 가방 놓고 글쓰기 가방 든다/ 글쓰기 가방 놓고 영어 가방 든다/ 영어 가방 놓고/ 꾸벅 졸면서/ 저녁밥 먹었다// 휴! 힘든 월요일/ 놀이터 가방은 왜 없을까?”
김 할머니는 이야기 활동 3년 만인 2018년 등단해 동시 작가가 되었다. 시를 600편이나 쓴 박정란(65·인천시) 할머니도 2019년 인천시 ‘미추홀구 문예대상’ 구청장상을 받았다.
이야기할머니는 이야기를 읽어주지 않고 반드시 외워서 들려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들려주는 사람은 직접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아이들의 꿈도 자란다.

박유리 기자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모십니다 2월 22일까지 500명 새롭게 선발
노년층 여성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어린이들에게는 전통문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이 2021년에도 이어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우리 옛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전달하는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500명을 새롭게 선발한다.
2009년부터 시작해 2021년 13년째를 맞이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은 전통문화를 매개로 세대 간 소통 기회를 확대하는 데 기여해왔다. 여성 어르신에게는 인생 이모작 활동을 지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어린이에게는 전통문화 교육 기회를 제공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이야기할머니 총 5664명이 함께했고 그중 4130명이 계속 활동하고 있다.
문체부와 국학진흥원은 2021년에도 ‘13기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500명을 추가로 선발하고 일정 교육 기간을 거친 후 10월부터 현장에 파견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방역 지침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화상 시스템을 활용한 비대면 방식으로 안전한 환경 속에서 이야기할머니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번 13기에는 만 56세부터 74세까지(1947년 1월 1일~1965년 12월 31일 출생)의 대한민국 국적 여성 어르신으로서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이야기 구연에 필요한 기본 소양과 재담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든 지원할 수 있다. 지원자는 ‘이야기할머니사업단 누리집(www.storymama.kr)’에서 선발 공고문을 확인하고 2월 22일까지 지원서를 작성해 ‘국학진흥원 이야기할머니사업단’에 우편(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1997) 또는 전자우편으로 접수하면 된다.
문체부와 국학진흥원은 1차 서류심사와 이야기 구연 능력을 포함한 2차 면접 심사를 통해 예비 합격자를 결정하고 예비 합격자들은 5월부터 9월까지 60여 시간의 교육과정(1회당 교육 수당 3만 원 지급)을 이수한 후 평가를 거쳐 ‘13기 이야기할머니’로 최종 선발된다.
선발된 이야기할머니는 2021년 10월부터 현장 실습을 하고 향후 5년간 거주 지역 인근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활동(1회당 활동 수당 4만 원 지급)한다. 지원서 접수 등 ‘13기 이야기할머니’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문체부와 국학진흥원, 이야기할머니 누리집에서 확인하거나 이야기할머니사업단 대표전화(080-751-0700)로 문의하면 알 수 있다.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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