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제목 <쌍화점>은 원래 고려 가요의 제목이다. 이 고려가요 <쌍화점>은 충렬왕 즈음에 지어져 이후 궁중 연회에서 자주 불렸던 노래라고 한다. 영화에서도 왕이 이 노래를 연회에서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쌍화란 만두를 말하는 것이니 쌍화점이란 만두가게란 뜻이다. 노래 1절의 배경이 쌍화점이라 이런 제목이 붙었다.
그 1절은 이러하다.
“쌍화점(雙花店)에 쌍화사라 가고 신댄 회회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삼미 이점(店)밧 긔 나명 들명 다로러 거디러. 죠고맛간 삿기광대 네마리라 호리라. 더라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다로러 긔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니 잔 대가티 덤거츠니 업다…” (쌍화점에 만두 사러 갔는데 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쟌 데 같이 난잡한 곳이 없다)
여기서 회회아비란 잘 알려져 있듯이 고려에 건너온 아랍의 상인을 말한다. 고려 가요 <쌍화점>은 원래 남녀 사이의 노골적인 애정행각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조선 성종 때 이를 남녀상열지사 또는 음사(淫辭)라 하여 가사를 약간 고쳤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왕(주진모 분)을 공민왕이라고 꼭 집어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시대적 배경과 고려사에 남아 있는 공민왕에 대한 기록, 왕을 호위하는 청년무사의 존재, 원나라 공주 출신의 왕비, 공민왕의 시해 사건 전후의 일 등 공민왕 때 실제 있었던 일들을 영화의 소재로 많이 가져왔다.
영화는 실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고 감독의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매우 격렬한 사랑이야기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영화 <쌍화점>의 내용과 실제 역사적 사실은 얼마만큼 비슷하며 또 얼마만큼 다른 것일까?
우선 영화 속 인물들의 이름이 실제 인물들과 살짝 다르다. 공민왕의 첫 왕비는 원나라 공주인 보탑실리(노국공주)이다. 그런데 영화 속 왕비(송지효 분)는 원나라 공주인 것은 그대로 가져오되, 이름이 연탑실리로 조금 바뀌었다.
왕이 사랑하고, 또 왕비와도 사랑하게 되어 삼각관계의 중심에 있던 호위무사 홍림(조인성 분)은 공민왕 때 실존했던 인물 홍륜의 이름에서 따왔다. 왕이 만든 청년호위무사집단의 이름을 영화 속에서는 ‘건룡위’라고 하였는데, 공민왕이 만든 청년호위무사집단의 명칭은 ‘자제위’였다.
영화에서 왕은 청년시절에 ‘건룡위’를 만들고 이들과 무예를 함께 익히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공민왕은 청년시절의 대부분을 원나라에서 인질로 보냈고 청년무사집단을 만든 것은 나이 40줄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이미 이때 공민왕의 첫 왕비 보탑실리는 7년 전에 죽은 상태였다.
그렇지만 실존인물 홍륜과 공민왕의 왕비 사이에 매우 기묘한 관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때의 왕비는 원나라 공주였던 보탑실리가 아니라 익비라는 고려왕족 출신의 여인이었다.
고려 왕실은 제도적으로 후궁뿐만 아니라 왕비도 여럿 둘 수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익비는 홍륜의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이 임신이 영화에서처럼 공민왕 시해사건의 결정적 원인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에서 왕은 홍림을 사랑하고 왕비에게는 인간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다.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강하게 내정간섭을 해오는 원나라를 막기 위해 시작한 기묘한 고육지책이 애정구도를 새롭게 그리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왕은 홍림의 아이를 후계자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인다. 이 과정에서 홍림은 어린 시절부터 흠모하고 따랐던 왕을 배신하고 왕비와의 사랑을 택하면서 왕을 죽인다.
실제 역사에서 홍륜과 익비가 영화에서처럼 절절하게 사랑하는 사이였는지 아닌지는 역사서에 개인의 감정까지 기록되어 있지는 않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고려사>에 처음 왕의 명령으로 하는 수 없이 홍륜과 동침했던 익비가 ‘홍륜이 왕명을 핑계 대며 여러 번 왕래하여도 그것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거절하지 않아 결국 임신하였다’고 나오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이 왕의 눈을 속이며 밀회를 거듭해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영화 속 홍림과 왕의 결말은 매우 슬프고도 안타깝다. 그러나 실제 <고려사>에 남아 있는 공민왕의 최후는 섬뜩할 만큼 현실적이고 잔혹하다.
영화에서처럼 공민왕도 홍림과 익비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은밀한 관계를 아는 사람을 모두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이를 알게 된 내시 최만생이 아이의 아버지인 홍륜과 자제위의 청년들에게 이를 알렸다. 목숨이 위태로웠던 그들은 이때까지 모셨던 왕을 배반하고 즉각적으로 시역에 참가하였다.
공민왕의 시해사건은 수사를 맡은 이인임에 의해 범인이 밝혀지고 홍륜을 비롯한 그 동료는 일족이 멸문당하는 화를 입게 된다.
한편 영화에서는 왕비의 이후 일이 나오지 않지만 실제 역사에서 익비는 폐서인이 된 후 사가에서 홍륜의 아이를 낳았다. 딸이었다. 이 딸아이는 다른 집에 맡겨져 자랐는데 홍륜의 자식이며 딸임에도 불구하고 훗날 왕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글·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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