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효운(曉雲) 김영일 광복 회장이 영면했다. 고인은 2월 28일 오후
경기도 성남 분당구 제생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5일간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3월 3일 고인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김영일 애국지사의 세대는 독립 이후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이루고 가신 세대”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 대통령은 “젊은 세대가 우리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면서 “고대사도 중요하지만 부모님 세대의 근대사도 함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김황식 국무총리도 고인의 빈소를 찾아 분향하는 등 각계 각층 인사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고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금화 여사와 아들 훈, 딸 모란, 수선, 수련이 있다.
평북 정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1943년 12월 중국으로 망명해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 일제강점기 광복군 제3지대원이자 기관지 <빛>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45년 8월 국내진공작전을 위한 미국 전략정보국(OSS) 특수훈련을 받던 중 조국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고인은 1949년 육군사관학교, 1966년 국민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주월 십자성부대 사령관, 1970년 육군 보병 사단장, 1976년 육군대학 총장을 역임했으며 1979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이후 한국해외개발공사 사장, 광복군동지회 회장, 광복회 부회장을 거쳐 2008년 6월 제18대 광복회장에 당선돼 지금까지 광복회를 이끌어 왔다.
생전에 고인은 독립운동 선열 위패 봉안전 건립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 왔으며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역사교육 연수기관으로 선정되어 초·중·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근대사 교육에 힘쓰는 등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또 역사교육 필수과목 채택 안을 서울시교육청 교육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고인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기세를 떨치던 지난 2009년 제90주년 3·1절을 기해 경제위기에서 더욱 고통받을 사회적 약자를 위해 ‘10퍼센트 나눔 범국민 모금운동’을 펼치는 등 광복회의 대(對)사회적 역할 확대에도 큰 기여를 했다.
최근에는 대법원의 친일재산 환수결정 취소 판결에 불복하여 3월 11일 서울역광장에서 개최되는 대한민국 정통성 회복을 위한 범국민 친일 세력 규탄대회 참석을 앞두고 있었다.
고인은 1951년 은성화랑훈장, 1953년 미 동성훈장, 1969년 충무무공훈장, 1970년 을지무공훈장, 1971년 미 육군공로훈장을 받았으며,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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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