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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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집과 가족이 사라졌다며 절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 가슴도 무너졌어요.”
지난 2년 동안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 스리랑카본부에서 일한 조현경(32) 씨는 아직도 당시 상황을 잊을 수 없다. 26년여에 걸친 기나긴 스리랑카 내전은 결국 지난해 5월 반군의 패퇴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내전의 아픔은 계속됐다. 보금자리를 잃은 28만명의 난민들은 구호캠프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조 씨는 구호모금을 위한 기획을 담당했지만, 매일같이 캠프를 찾아 구호물품을 챙겨주고 인권유린이 발생하지 않는지 보호실태를 조사했다. 현재 잠시 귀국해 UNHCR 한국본부에서 일하는 조 씨는 “인권이 존중되는 세계를 만드는 데 한몫한다는 것이 이 일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외교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조 씨와 같이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3백26명으로 집계됐다. 유엔 사무국과 유엔 산하 및 관련 기구에서 일하는 인원이 6만2천6백97명(2009년 6월 말 기준)인 것을 감안하면 아직 한국인들의 국제기구 진출은 미미한 수준. 그러나 세계화 추세에다 2006년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오르면서 국제기구에 관심을 갖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었다. 도전정신과 외국어 실력으로 무장한 2030세대들은 ‘세계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국제기구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국제기구에 들어가려면 크게 네 가지의 길이 있다. △유엔 국가별경쟁시험(NCRE) △국제기구 초급전문가(JPO) △국제기구 인턴십 △공석(空席) 공고 지원 등이다.
유엔은 매년 가입국의 예산금 분담 규모와 지리적 배분 원칙에 따른 국가별 안배로 적정 진출 수준을 정한다. NCRE는 적정 진출 수준에 미달하는 회원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며, 매년 뽑는 인원과 분야는 일정치 않다. NCRE 지원요건은 공고된 주요 시험 분야에 관련된 만 32세 이하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로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해야 한다.
JPO도 국제기구 진출을 노리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제도. 정부는 JPO 비용 전부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유엔 관련 국제기구 사무국에 수습직원을 2년간 파견, 근무시킨 뒤 정규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외교통상부 국제연합과 송미영 서기관은 “지난해 5명 모집에 2백7명이 응시해 41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며 “현재까지 JPO 파견기간이 만료된 58명 중 49명이 국제기구에 진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수의 한정된 인원만 뽑는다는 게 이들 제도의 단점. JPO 5기인 조현경 씨는 “일본이나 유럽 국가에 비해 JPO의 한국인 수가 턱없이 적다”며 “국제기구 진출에 유리한 JPO 선발인원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유엔 정규 분담금 납부 순위에서도 세계 11위 수준이지만 매년 고작 5~7명을 모집하는 게 현실. 따라서 인턴십이나 공석 공고 지원 등에 대한 지원자들의 관심이 필요한 실정이다.
국제기구는 바로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기에 인턴십으로 전문분야 경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기구는 필요에 따라 인턴을 뽑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야와 지역을 골라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턴십이 20, 30대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고 무보수라 본인이 경비를 부담해야 하는 등 어려운 점이 많다.
정부는 이런 점을 감안해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국제기구 인턴십을 지원하는 국제전문가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여성부는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5~30명을 선발해 지원해왔으며, 환경부는 지난해 처음 ‘국제환경전문가’ 과정을 신설해 환경 업무 관련 국제기구에 14명을 파견해 지원하고 있다.
국제기구 공석 정보는 외교통상부 국제기구 채용정보 사이트에서 제공하지만, 해당 국제기구 홈페이지를 틈틈이 살펴보는 것이 좋다. 2005년 국제기구 취업 안내서를 펴냈고 현재 청와대 대변인실 행정관으로 일하는 김바른(32) 씨는 “한 분야의 전문성만 갖추고 있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그 경력을 쌓아 공석 공고에 도전하라”고 충고했다.
인터넷 다음 카페 ‘유엔과 국제활동정보센터(ICUNIA)’처럼 국제기구에 관심 많은 이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카페 운영진인 한재윤(28) 씨는 “‘세계야생동물기금(WWF) 지구촌 불끄기 행사’ 등 직접 국제교류 활동에 참여하는 기회도 얻고 국제기구 진출자와 국제 활동가들의 조언도 들을 수 있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유엔거버넌스센터(UNPOG) 홍보담당관으로 일하는 김정태(33) 씨는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국제기구가 인생의 목표가 돼선 안 된다”고 말한다. 김 씨는 유엔본부 인턴십 등을 통해 UNPOG가 국내에 처음 생길 때 지원해 국제공무원의 길을 열었다.
김 씨는 “영어 등 외국어 실력이 기본이지만, 무엇보다 ‘국제 이슈 전문가’로서 어떤 분야에서 일할 것인지에 대해 뚜렷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국제 전문 분야에 대해 알리고 그와 관련된 활동을 틈틈이 해보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글·김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