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와 동거 내 삶의 전환점

2019.10.07 최신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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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삐가 집에 온 지 6개월이 되어간다. 공장에서 살고 있는 ‘길냥이’를 왜 데려왔는지 지금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냥 지친 삶이 정점을 찍었을 무렵,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던 듯하다. 지나가는 말로 남편에게 고양이 한 마리 데려오고 싶다고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지인에게서 임시 보호소에 있는 길냥이들의 사진을 받았다.
새끼도 아닌 이미 다 큰 고양이를 데려가려는 사람이 많지 않은 탓인지 임시 보호자는 사진을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남편은 실행력이 나보다 뛰어난 사람인지라 혼자 차를 몰고 가더니 수많은 길냥이 가운데 예삐를 데려왔다.
“고양이가 너무 커서 깜짝 놀랐다.” 예삐와 처음 만난 순간 남편이 보내온 문자였다. 막상 집으로 데려온 예삐를 보니 정말 놀랄 정도로 커서 ‘고양이가 아니라 시라소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예삐와 동거가 시작됐다.

고양이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덥석 데려오고 보니 밤만 되면 울어대는 예삐로 인해 수시로 잠을 깼다. 필요한 물건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집 안은 고양이 용품으로 가득 찼다. 털이 날려서 매일 한두 번 청소기를 돌려야 했고 검은색 옷은 입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렇게 나를 부지런하게 만든 예삐와 불편한(?) 동거는 날이 갈수록 편해졌고 삶에 지친 나에게 위안을 줬다. 하루 종일 사람과 일에 치여서 돌아와 털썩 앉아 있는 나를 가만히 응시하는 눈동자를 바라보거나 내 무릎에 엉덩이를 슥 부딪히며 지나가는 모습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얼마 전 추석 연휴에 차례상을 차리느라 지친 나는 곤히 잠에 빠졌다가 한밤중에 깼다. 너무 밝은 보름달 때문이었을까. 창문 가득 들어오는 달빛을 받으며 보름달을 쳐다보고 있는 예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무언가를 빌고 있는 듯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했다.

예삐를 들이고 나서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동안 동물이나 식물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는데 길에 핀 풀꽃까지 눈에 들어올 만큼 생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어느새 회사 책상은 사람들이 기르다 포기한 화분으로 가득 찼고 집 안에도 화초를 들여놓았다. 초록이 주는 편안함으로 딱딱한 마음이 어느새 부드럽게 풀어졌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권유나 강요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개똥철학’을 지니고 살던 나는 이제 그들에게 유기견이나 유기묘 입양을 조심스럽게 권한다. 보고만 있어도 위안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사람들과 함께 느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나 자신부터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되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늘 나는 다시 업무와 사람들에게 지쳤지만 집에 가면 가만히 위로를 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가볍다.

오혜숙 부산 사하구 신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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