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로 알아가는 부마민주항쟁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프로그램의 주제는 ‘시민과 함께’이다. <부마 1979: 위대한 민주여정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전국 각지에서 18개의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아카이브 순회전시<부마 1979, 유신의 심장을 쏘다>
부마민주항쟁 관련 각종 사료와 해설, 부마민주항쟁에서 영감을 받은 10점의 대형 그림이 함께하는 전국 순회전시. 부마민주항쟁의 배경부터 전개 과정, 이후 상황까지 돌아보는 대규모 전시로,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부마민주항쟁의 진상과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기간 7~10월 장소 창원 3·15아트센터
기간10.4(금)~31(목) 장소 부산 민주공원
청소년 역사 탐험대
5월의 광주로 떠나는 ‘5월 광주기행’을 거쳐 ‘<거룩한 양복> 연극 관람’, 부마민주항쟁과 민주주의에 대한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청소년 역사학교’, 그리고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가보는 ‘10월 부마항쟁지 답사’까지! 부마민주항쟁을 향해 떠나는 청소년의 역사 탐험!
기간 5~10월 장소부산, 창원, 광주
부산국제영화제 <부마 섹션>
부마민주항쟁을 대중에 소개하고 그 정신을 널리 홍보할 수 있는 다양한 기록영화, 극영화 상영. 관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 및 음악과 함께 항쟁을 추억해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기간 10.3(목)~12(토) 장소 부산 BIFF 광장 등
민주대동 큰잔치
‘대동(大同)’의 의미를 살려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축제의 장. 지역의 문화 역량을 모아 부마민주항쟁이라는 민주주의의 큰 역사를 무용극으로 표현
기간 10.12(토) 18시 30분 장소 창원 MBC경남홀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
전국 9개 도시의 10개 민주화단체 합창단이 참여하는 합창축전. 부마민주항쟁을 주제로 창작한 합창곡도 처음으로 선보인다. 합창단과 시민들이 만나 하모니를 이루는 문화적 체험
기간 10.12(토) 15~17시 장소 부산 소향아트홀
상황재현 문화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당시의 생생한 현장을 체험하는 장. 주 무대에서는 열림굿과 축하 가수의 흥겨운 무대가, 거리에서는 합창단 무대가 어우러져 1979년 10월 16일의 현장을 예술로 재현한다.
기간 10.12(토) 16~20시 장소 부산 광복동 시티스폿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식
부마민주항쟁의 정신과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념식. 부마에서 광주로 그리고 촛불까지 이어지는 민주주의 역사에서 부마민주항쟁의 자리를 찾는 행사
기간 10.16(수) 10~11시
장소 창원 경남대학교 대운동장(예정)
청소년 창작 뮤지컬 공연
‘빛날’(부제: 그들이 비추는 내일)이라는 주제로 창원 지역 청소년들이 선보이는 뮤지컬.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당시를 현장감 있게 재구성한다. 전문 극단의 지도와 석동중학교 학생들의 열정이 더해져 웅장하면서도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뮤지컬을 선보일 예정
기간 10.18(금) 15시, 19시 장소 창원 3·15아트센터 소극장
부마민주음악제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음악제로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문화 공연. 부마민주항쟁 관련 창작곡 초연 및 클래식, 국악, 가요, 성악, 합창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기간 10.29(화) 19시 30분 장소 창원 3·15아트센터 대극장
부마민주영화제
문화·예술 장르를 통한 민주주의 정신과 가치 공유. 시민 항쟁과 민주화 관련 영화 선별 상영
기간 11.15(금)~30(토)
장소 창원 씨네아트 리좀, 창원시 소재 일반 상영관
부마민주항쟁이란?
1979년 10월 부산·마산의 시민과 학생들이 박정희 유신독재에 대항해 펼친 민주화 운동이다. 1970년대 유신체제의 폭압 속에서도 시민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으로, 사실상 유신독재의 붕괴를 아래로부터 촉발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결정적 장면이다.
5·18과 쌍생아이자 6·10민주항쟁의 도화선
서슬 퍼런 유신독재 시기에 부산과 마산의 시민은 “유신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18년 군부독재가 무너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부마민주항쟁의 10월 정신은 이듬해 5월 광주에서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은 더욱 강력해졌다. 1979년 10월 부마와 1980년 5월 광주는 모두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6월 전국적인 규모로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 이 땅에서 군부독재를 몰아냈다.
부마민주항쟁은 5·18민주화운동과 쌍생아이며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었다. 부마민주항쟁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군부독재의 사슬을 끊어내고 민주주의가 면면히 이어질 수 있게 한 출발점이자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촛불혁명으로 그 정신이 계승되어 평범한 시민이 이 나라의 진짜 주인임을 알게 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역사다.
부마민주항쟁 왜 일어났나?
한계를 드러낸 유신체제
박정희정부의 유신체제는 1979년 한계에 이르렀다. 당시 반정부 인사들을 연행·체포·고문·연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야당과 재야 세력의 저항이 고조되고 있었다. 1979년 8월에는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신민당사에 들어가 부당 폐업을 반대하며 농성을 벌이다가 경찰의 폭력적 진압으로 22세 여성 노동자가 사망하고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79년 10월 초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강력히 비판했고, 이를 빌미로 박 정권은 김영삼을 의원직에서 제명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시민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와 공화당에 염증을 느꼈으며, 그 분노가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항쟁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말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제2차 오일쇼크라는 세계 경제의 불황과 맞물려 큰 위기에 빠졌다. 물가가 상승하고 경기가 침체되었으며, 불황으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경제적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난 곳은 저임금 노동자를 바탕으로 수출지향적 경공업을 발전시켜가던 부산과 마산이었다. 정부는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중소 자본가, 봉급생활자, 도시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부담을 떠넘겼다. 그 일환으로 시행된 부가가치세 도입은 사회적 불만을 더욱 증폭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글 강민진 기자
자료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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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