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이미 ‘포용 성장론’으로 선회

2019.01.07 최신호 보기

 

성장론

 ▶게티이미지뱅크

“불평등은 성장의 독… 모두에게 기회 주는 성장으로”
정부가 지난해 가을 꺼내든 화두 ‘포용성장’이 새해 들어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에선 정부가 ‘소득주도성장론’ 대신 새로운 개념을 꺼내들며 정책 기조 전환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고용 부진의 원인 중 하나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꽃인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이라는 시각이 그런 경우다. 정부는 이런 해석을 부인하며 포용성장은 소득주도성장의 상위 개념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그대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예산안을 다룬 국회 시정연설에서 기존 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다면 포용성장의 이론적 기반은 무엇이며 소득주도성장과는 어떠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폐해로 대안 담론 탄생
포용성장론과 소득주도성장론은 모두 토종 성장론은 아니다. 두 성장론 모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불거진 ‘기존 성장론’에 대한 반성 과정에서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로 꼽히는 2008년 금융위기는 그 충격이 깊고 넓었던 터라 기존 성장 전략에 대한 근본적 반성은 물론, 새로운 성장 전략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불러왔다.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아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1%의 탐욕에 맞선 99%의 저항운동)은 새로운 질서를 염원하는 아래로부터의 사회 운동이었다. 영국, 스웨덴,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에 등장하거나 세를 불려가는 좌우파 포퓰리즘 역시 기존 질서에 대한 분노가 그 동력이다. 학계와 국제기구에서도 진지한 반성을 위한 연구가 진행됐다. 세계적 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량샤드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재직하며 ‘거시 경제 정책을 다시 생각한다’란 문패로 국제 컨퍼런스를 매년 진행했다. 폴 크루그먼,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이 컨퍼런스는 새로운 성장 담론과 이를 구현할 정책 처방을 찾으려는 학자들의 분투였다.
이런 흐름들이 넘어서려 했던 기존 질서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무엇이 2008년 초유의 경제위기를 촉발했을까. 여러 이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대체로 지목되는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다. 1980년대 미국(레이거노믹스)과 영국(대처리즘)을 중심으로 모습을 드러낸 신자유주의는 그 이후 30년 가까이 세계 정치, 경제, 사회의 주류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신자유주의에 바탕한 정책의 키워드는 ‘작은 정부’(감세, 지출 축소) ‘공공부문의 민영화’ ‘경쟁 확대’ ‘규제 완화’ ‘무역 확대’(시장 개방) ‘금융 자유화’를 꼽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민간 부문의 자율성과 경쟁 확대가 인류 사회를 좀 더 풍요로운 땅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세계 변방에만 머물렀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낳은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불평등 확대와 정부 위에 군림할 정도로 막강한 글로벌 금융 기업의 탄생을 꼽을 수 있다. 2008년 위기 전까지 주류 경제학자나 각국 정부는 불평등과 금융화는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교리를 신뢰했다. 불평등은 경쟁을 촉진하고 금융화는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가져와 더 많은 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2008년 위기는 이런 믿음을 송두리째 흔든 사건이었다. 신자유주의의 끝은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진실이 일순간에 세계인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비대화한 금융 권력은 부패를 낳았고, 경제에 엄청난 변동성을 가져왔다. 깊어진 불평등의 골은 부의 세습으로 이어지며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불만을 낳으며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었다. 2008년 이후 국제통화기금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가 앞다퉈 ‘불평등 확대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져오지 못한다’거나 ‘불평등 완화가 좀 더 많은 부를 창출한다’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실증 연구에 뛰어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2016년 6월 국제통화기금의 조너선 오스트리 조사국 부국장은 ‘신자유주의는 과대평가 됐나?’란 보고서에서 신자유주의적 처방이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를 통렬하게 고백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불평등은 성장의 독”이라고 단언했다.

소득주도성장 처방은 매우 구체적

 

성장론표


이런 맥락에서 포용성장과 소득주도성장 사이에는 ‘대안 담론’으로서 넓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금융에 대한 규제 강화, 분배 및 재분배 확대와 같은 세부 정책에서 같은 목소리를 낸다. 나아가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간 이어진 저성장의 원인을 ‘수요 부진’에서 찾고 재정·통화 확대라는 케인시언 처방전을 옹호했다. 이런 정책 기조는 2008년 이후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 사이의 컨센서스였다. 2008년 위기의 충격이 너무 컸던 탓에 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매우 빠른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는 공공부문 부채 축소와 노동권 약화를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해온 전임 정권은 세계적 전환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핵심 경제정책 기조로 들고 나온 것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공통분모가 넓지만 두 성장론이 같지는 않다. 정책 우선순위나 강조점에선 차이도 보인다. 포용성장 지지론자들이 모두 소득주도 성장론자도 아니다. 한 예로 각국 정상들과 내로라하는 경제인들이 모이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에선 2014년부터 포용성장을 부쩍 강조하고 있지만 각 연사들의 발언이나 포럼 쪽이 내놓은 보고서엔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언급은 눈에 띄지 않는다. 두 성장론 사이에 다른 결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포용성장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국제통화기금의 설명을 따라가보자. 이 기구는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하며,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끌어올리고, 금융 발전의 과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으며, 미래 세대들도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정책을 포용성장 정책이라고 갈음한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친환경 정책이나 사회 부패를 줄이는 정책도 포용성장 정책에 포함시킨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포용성장을 “사회 전체에 (부가) 고르게 분배되며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성장론”이라고 정의한다. 신자유주의 맹신론자가 아니면 포용성장은 지지하지 않을 수 없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다. 국제노동기구(ILO)와 포스트 케인시언 학자들이 중심이 돼 주창한 성장론이다. 국민총소득에서 노동 쪽 몫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노동소득 분배율이 개선되면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게 기본적 ‘이론’ 틀이다. 노동 몫이 늘어나게 되면 수요가 확충될 뿐만 아니라, 임금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기업들의 투자가 늘어 경제 전반의 생산성도 개선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사고다. 세부 정책 과제도 노동 몫(특히 재분배 전의 임금인 시장 임금)을 늘리는 쪽에 무게를 둔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권 강화,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강화 정책 등이다. 포용성장론이 포괄적이라면 소득주도성장론에 따른 정책 처방은 매우 구체적인 셈이다.
이런 구체성은 확장성을 떨어뜨리는 요소이기도 하다. ‘큰 틀(포용성장)에는 수긍하지만 세부 사안(소득주도성장)은 반대한다’는 입장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소득주도성장은 노동권 강화를 바탕에 깔고 있어 자본 쪽이 쉽게 수긍하지 않으려 한다. 보수 세력이 소득주도성장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배경이다.

포용성장으로 정책 선택폭 넓어져

 

포용성장 
▶서울 명동 거리의 풍경. <한겨레> 자료사진

소득주도성장 전략이 제시하는 정책들을 포용성장의 부분집합으로 볼 수도 있다. 바꿔 말하면 포용성장을 앞세운 정부는 구사할 수 있는 정책 선택의 폭이 소득주도성장에만 집착할 때보다는 크게 넓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포용성장은 그 개념의 포괄성 덕택에 담을 수 있는 정책들은 무궁무진한 편이다. 다른 나라에 견줘 매우 낮은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재정 확대는 포용성장이란 틀 속에서 얼마든지 설득력을 가진다. 또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증세 정책이나 불로소득을 창출하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도 넓은 의미에서 포용성장 전략으로 논의가 가능하다. 사실 그간 복지 확대와 같은 확장 재정 정책은 매번 재정 건전성 악화나 국가 부채 확대 우려와 같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트라우마에 부딪혀 현실화하기 어려웠다. 소극적인 증세마저 침소봉대를 우려해야 했다. 하지만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심지어 다보스 포럼까지도 강조하는 ‘포용성장’은 이러한 허들을 수월하게 넘을 수 있는 대의명분이 될 수 있다.


김경락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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