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말이지….", "왕년에는 내가···."
잠깐 잠깐, 젊은 후배들 앞에서 이런 말이 절로 나오려 한다면 여기서 얼른 멈추고 자신이 다음에 해당되는지 따져봅시다.
▶고위 공직자, 대기업 임원과의 개인적 인연을 강조한다 ▶내가 한때 잘나갔던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OO란 OOO인 거야' 식의 진리 명제를 구사한다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반말을 한다 ▶'내가 너만 했을 때' 얘기를 자주 한다···.
인터넷에 돌고 있는 20개 항목의 이 리스트 제목은 당신에게 이리 묻습니다.
"당신은 꼰대입니까?"
꼰대란 오래전 교련복 입던 시절부터 학생들이 선생님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던 은어였지요. 그런데 요즘 꼰대는 젊은 사람들에게 잔소리하기 좋아하고 눈치 없는 어른을 낮추어 말하거나, 나이 든 세대의 부정적 언행을 비판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방송에도 등장했습니다.
지난해 말 탤런트 김상중이 O tvN의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꼰대 자가 테스트'를 하던 중 "그래! 나 꼰대야!"라고 자복해 큰 웃음을 주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자 탤런트 박해미까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꼰대 자가 테스트를 했으니, 꼰대가 남자에게만 국한되어 지칭되는 용어는 아닌 듯합니다. 사실 여자 어른들에게는 꼰대보다 앞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이자 세상에 무섭거나 부끄러울 게 없는 질기고도 뻔뻔한 존재란 뜻의 '아줌마'란 용어가 있었습니다.
![어른 남자 일러스트 어른 남자 일러스트](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6.02/04/20160204152938435_03DSQ3DF.jpg)
산업화 · 민주화 세대, 정보화 세대의 다른 고민
윗세대부터 '어쩌다 어른'이 아니라 진짜 어른으로
꼰대가 선생님을 뜻하는 은어에서 나이 든 세대의 고루함을 비판하는 유행어로 확장된 데는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간에 겪어온 사회적, 경제적 배경이 다른 점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윗세대가 전후의 가난한 나라,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급속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대한민국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다면, 지금 젊은 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고속성장이 멈추고 저성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취업난, 주거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대 간 당면 문제가 다르니 인식 차이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세대 간 인식 차이를 극심하게 보여주는 예가 '노력'과 '노오오오력'입니다. 윗세대가 젊은 세대를 비판할 때 흔히 하는 말이 "노력을 안 한다"입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좋은 일자리 찾기는 바늘구멍 통과만큼이나 어렵고, 저물가 속에서 나홀로 상승 중인 주거비 부담으로 노력도 소용없다는 좌절감에 노력을 비꼬아 '노오오오력'이라 부릅니다.
지금 젊은 세대는 객관적으로 볼 때 윗세대보다 더 나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도 젊은 세대가 더 강합니다.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로 비무장지대(DMZ)에 위기감이 고조되자 앞다퉈 전역을 미룬 것도 젊은 장병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젊은 세대가 느끼는 좌절감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란 건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세대별 계층 간 이동 분석 결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연구원에서 직장이 있는 25~64세 남성 1342명을 산업화(1940~59년생), 민주화(1960~74년생), 정보화(1975~95년생) 세대로 구분해 계층 간 이동을 분석한 결과 산업화·민주화 세대보다 정보화 세대에서 직업, 계층, 학력 세습의 고착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젊은 세대도 언젠가 윗세대가 될 테지만, 그들이 윗세대 대열에 낄 때쯤 지금 꼰대라 불린 세대는 더욱 앞뒤 막힌 세대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사방에 민폐 끼치는 존재가 될지 모릅니다. 먼저 어른이 된 세대부터 '어쩌다 어른'이 아니라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은 꼰대입니까'의 20항목 자가 리스트가 너무 길다 싶으면 최근 등장한 '꼰대 방지 5계명'이라도 마음에 새겨봅시다. '첫째,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둘째, 내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셋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넷째, 말하지 말고 들어라, 답하지 말고 물어라. 다섯째, 존경은 권리가 아니라 성취다.'
글 · 박경아 (위클리 공감 기자) 2016. 02.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