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가명) 씨는 메르스(중동호흡기질환) 이후 달라진 회식 문화가 반갑다. 예전에는 '술잔 돌리기'를 일종의 정을 나누는 친근함의 표시로 생각했지만 메르스 이후 이 같은 문화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회사 인사팀에서는 '회식 시 술잔 돌리기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김 씨는 "메르스 때문에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술자리에서 위생수칙을 철저히 지키게 된 점은 참 좋다"고 말했다.
나깔끔(가명) 씨도 더 이상 회사 동료들과 식사하는 자리를 피하지 않게 됐다. 먹던 숟가락으로 찌개를 함께 떠먹는 게 꺼려져 혼자만 다른 메뉴를 시켜 먹느라 눈치를 봐야 했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메르스 이후 스스로 위생수칙을 지키려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동료들도 식사할 때 개인 접시를 사용해 찌개를 덜어 먹는다. 나 씨는 "혼자 깔끔한 사람으로 보여 신경이 쓰였는데 이젠 다들 알아서 청결하게 하는 분위기"라며 "메르스가 사라진 이후에도 이 같은 문화가 계속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식 자리에서 여럿이 같은 잔을 사용하는 ‘술잔 돌리기’는 서로에게 감염병을 돌리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메르스가 확산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감염병 예방을 위한 생활수칙 지키기에 동참하고 있다. 가장 많이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식생활 문화다. 특히 여럿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던 '술잔 돌리기'나 '찌개 함께 떠먹기' 문화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술잔 돌리기는 '질병 선물하는 것'
휴지로 닦거나 물로 씻어도 세균 여전
보건 당국은 '술잔 돌리기'는 각종 감염의 원인이 되므로 삼가야 한다고 당부한다. 보건복지부는 암 환자 4~5명 중 1명은 감염으로 암을 얻고 이런 감염 경로 중 하나가 술잔 돌리기라고 밝혔다. 국립암센터 신해림 박사 팀은 남성 암의 25.1%, 여성 암의 16.8%는 헬리코박터균 등 외부 감염으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우리나라 국민의 70% 정도가 보유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감염되면 바로 위장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위 점막에서 장시간 기생하면서 위염, 위궤양, 위암 발병 확률을 높인다.
헬리코박터균의 경우 주로 구강에서 구강으로, 또 분변에서 구강으로 전파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찌개나 국을 함께 떠먹는 행위 역시 헬리코박터균의 충분한 전파 경로가 될 수 있다. 또한 이 같은 행위는 타액이 섞여 감염될 확률이 높은 A형 간염이나 충치균, 구순포진을 유발할 위험도 크다. 특히 A형 간염의 경우 30대 이하 젊은 층은 항체 보유율이 낮아 쉽게 감염될 수 있는 만큼 더욱 주의해야 한다.
더욱이 마신 술잔을 휴지로 닦거나 물에 한번 담갔다가 돌린다고 해서 감염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질병의 위험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정훈 교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항생제를 통해서만 죽지 휴지로 닦거나 심지어 알코올 소독을 해도 잘 죽지 않는다"며 "술잔 돌리기는 곧 '질병을 선물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따라서 술은 각자의 잔에, 찌개는 개인 접시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추석 앞두고 음식물 관리 주의
육류·해산물은 살모넬라균 오염 전제하고 조리
추석을 앞두고 명절 음식물 조리, 보관, 섭취 등에 따른 감염병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에 따른 위생 관리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명절 음식을 조리하기 전이나 외출에서 돌아온 후에는 반드시 손을 씻고, 음용수는 끓여 먹거나 안전이 확보된 것을 섭취해야 한다. 특히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달걀 같은 육류를 조리할 때는 살모넬라균에 오염된 것을 전제로 조리해야 한다.
살모넬라균은 조리 전 오염된 육류와 접촉한 칼, 도마, 행주, 접시 등에 의해 재차 오염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가열해서 사용하도록 한다. 생선, 조개류, 게, 오징어 등 해산물은 주로 콜레라균, 장염비브리오, 각종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육류와 마찬가지로 조리 전에 이미 오염된 것으로 간주하고 조리해야 한다.
채소류에는 직접 식중독을 일으키는 원인균은 없으나 오염된 육류 또는 해산물을 다루던 칼, 도마, 행주 등으로 채소류를 다루게 되면 재차 오염될 수 있으므로 가급적 주방기구는 육류용, 해산물용, 채소용으로 구분해 사용하는 것이 좋다. 또 음식은 먹을 만큼만 조리해서 먹고, 조리된 음식은 냉장고에 장시간 보관하지 말고 되도록 빨리 먹어야 한다. 가족 중 설사 환자가 있다면 절대로 음식물을 다루게 해서는 안 된다.
한편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최근 날씨는 고온 다습하여 세균, 바이러스가 번식하기에 좋은 반면 사람들은 활동성이 줄어들어 저항력이나 면역력이 저하되기 쉽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몸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오염된 물, 식품에서 비롯되는 수인성·식품매개 감염병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특히 개인의 위생 수준은 높아졌을지라도 학교 급식의 전면 보급, 외식 및 즉석식품의 증가 등 식생활 변화로 수인성·식품매개 감염병은 여전히 위협적인 질병이다.
수인성·식품매개 감염병의 종류는 콜레라,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세균성이질,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 A형 간염 등으로 감염 시에는 설사, 복통, 구토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수인성·식품매개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물은 반드시 끓여 먹고 음식물을 철저히 익혀서 먹어야 한다. 날것으로 섭취하는 채소류는 염소 처리한 깨끗한 물로 씻어 섭취한다. 음식을 조리하기 전과 먹기 전, 또 배변 후에는 손 씻기를 철저히 한다. 집 주변을 청결히 해 해충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청심국제병원 김종형 내과과장은 "(수인성·식품매개 감염병의 증상인) 구토와 설사로 인한 탈수를 방지하기 위해 수분 공급과 전해질 보충 등 대증요법이 중요한 치료 원칙이다. 금식보다는 미음 등 기름기 없는 음식을 조금씩 섭취하고 과일즙이나 우유 등 유제품, 탄산음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병의 원인이 된 독성물질을 몸 밖으로 내보내야 하므로 의사의 지시 없이 설사를 멎게 하는 지사제나 항구토제를 먹지 않아야 한다. 항생제는 발열, 혈변이나 점액성 변 등이 동반되는 등 증상이 심각한 일부의 경우에 한해 사용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감염병 예방을 위한 식생활 수칙
• 회식 자리에서 술잔 돌리지 않기
• 찌개, 국은 개인 접시에 담아 각자 먹기
• 음식물 조리 및 섭취 전 반드시 손 씻기
• 주방기구는 육류용, 해산물용, 채소용으로 구분해 사용하기
• 칼, 도마, 행주, 접시는 가열해 사용하기
• 물은 끓여 먹고 음식물은 충분히 익혀 먹기
• 명절 음식은 먹을 만큼만 준비해 가급적 빨리 먹기
• 설사 환자가 음식물 다루지 않기
글 · 조영실 (위클리 공감 기자) 201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