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일강리 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 歷代國都之圖·일명 혼일강리도)’는 1402년(태종 2년)에 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다. 채색 필사본이며 가로 164㎝, 세로 148㎝의 대형 지도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포함하는 구대륙 지도이며 신대륙 발견 이전의 지도인 만큼 신대륙에 대한 정보는 없다.
▷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 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1402년의 원본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원본을 바탕으로 만든 지도가 일본 류코쿠대(龍谷大)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1402년 8월 태종의 왕명으로 지도 제작에 참여한 사람은 김사형, 이무, 이회, 권근 등이었다. 참찬(參贊) 권근은 지도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제작 동기를 밝힌 발문을 썼는데, 이것이 권근의 문집 <양촌집>에 기록돼 있다.
“천하는 지극히 넓다. 내중국(內中國)에서 외사해(外四海)에 이르기까지 몇 천만 리인지를 알 수 없다. …지금 특히 우리 지도를 증광(增廣)하고 일본을 첨부하여 새로운 지도를 작성하였다. 정연하고 보기에 좋아 집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지도를 보고 지역의 원근을 아는 것은 다스림의 일조가 된다. …나는 재주가 없으나 참찬을 맡아 이공(二公: 김사형과 이무)의 뒤를 따랐는데 이 지도의 완성을 기쁘게 바라보게 되었다.”
권근의 발문을 보면 김사형과 이무가 지도 제작을 기획하고, 실무 작업은 이회가 한 것으로 나타난다. 제작에 참고가 된 원나라 세계지도는 이슬람 계통 지도인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의 영향을 받았다. 아랍어 지명이 보이고 바다는 녹색, 하천은 청색으로 표기돼 있는데 이것은 이슬람 계통의 지구의(地球儀)와 동일하다. 세계제국을 형성했던 원나라 시대에 이 지도가 중국으로 들어왔고, 이것이 ‘혼일강리도’ 제작에 영향을 줬다.
그러나 이슬람 계통에서는 원형의 세계지도를 제작한 것과 달리 ‘혼일강리도’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천지관(天地觀)에 토대를 뒀다. 지도가 사각형으로 그려진 것은 이러한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명나라에서도 1398년경 ‘대명혼일도(大明混一圖)’가 제작됐는데, ‘혼일강리도’와 유사한 모습을 띤다. 결국 이슬람 계통의 지도에 영향을 받은 중국의 세계지도를 참조하고, 여기에 조선과 일본 지도를 합해 ‘혼일강리도’가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권근의 발문에 “우리 지도를 증광하고 일본을 첨부했다”는 표현이 이를 입증한다.
‘혼일강리도’엔 동북아시아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아라비아반도, 아프리카, 유럽까지 표시돼 있다. 100여 개의 유럽 지명과 35개의 아프리카 지명이 나오며, 지중해가 바다 아닌 호수로 표시되거나, 아프리카 중심부가 대부분 호수로 채워진 게 흥미롭다. 아프리카 대륙 한가운데에 ‘황사(黃砂)’라 하여 사하라 사막에 대한 정보도 나타난다. 필리핀과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주요 동남아시아 국가까지 선명히 표시돼 있다. 610여 년 전에 작성된 세계지도 ‘혼일강리도’를 통해 넓은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인식한 조선 초기 선조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글 ·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