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평양

2018.09.09 최신호 보기

내일의 평양은 오늘과 다르지 않을까? 소설집 <안녕, 평양>의 출발은 이러한 희망에서 출발했다. 기획이 시작된 건 3년 전이다. 성석제, 공선옥, 김태용, 정용준, 한은형, 이승민. 세대를 아우르는 여섯 작가가 모여 북한을 소재로 단편소설집을 펴내기로 한 것. 하지만 출판사 사정으로 <안녕, 평양>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작가들의 상상력이 담긴 원고는 먼지만 쌓여갔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만났다. 두 정상의 만남은 기폭제가 됐다. 묶여 있던 상상력의 끈이 풀리며 작가들은 꿈틀댔다. <안녕, 평양> 기획도 다시 탄력을 받았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정세가 참 많이 변했다. 어떤 작가는 처음부터 소설을 다시 썼고 어떤 작가는 새로운 현실을 반영했다. <안녕, 평양>은 이렇게 세상에 인사를 건넸다.

<안녕, 평양>에 참여한 (왼쪽부터) 이승민, 한은형, 정용준, 김태용 작가

▶ <안녕, 평양>에 참여한 (왼쪽부터) 이승민, 한은형, 정용준, 김태용 작가 ⓒC영상미디어

지난 9월 5일 <안녕, 평양>에 참여한 여섯 명의 작가 중 네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북한’이란 같은 소재가 주어졌지만 각기 다른 각도로 북한을 조명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작가들. 이들은 과연 무얼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남북의 현실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상상력을 얹었는지, 자유롭게 수다를 나눴다.

Q <안녕, 평양>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소재가 부담스럽진 않았나?

정용준 북한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웠다. 잘 알아서 참여한 게 아니라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북한 사람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엉뚱한 생각을 해보다가 가벼운 해프닝으로 풀어냈다. 소재는 부담스럽지 않았는데 오히려 지금이 더 부담스럽다. 정말 편하게 썼는데 주제가 주제다 보니 책이 소비되는 방식이 부담스럽다.

김태용 맞다. 남북문제를 공부해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동시에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다. 소재가 흥미로워서 흔쾌히 응해놓고는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북한은 가깝지만 미지의 장소였다. 3년 전 소설을 쓸 때 자료가 많지 않았다. 신문을 뒤져봐도 북한의 참혹한 현실과 어두운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데 북한에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답답했다. 처음 쓴 소설은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3세가 북한에 간 어두운 내용을 다뤘다. 그런데 최근 남북관계에 영향을 받아 다시 쓰기로 했다. ‘옥미의 여름’은 먼저 쓴 소설과 비교하면 풀어낸 방식과 톤이 확 바뀌었다.

이승민 당시 우스갯소리로 평양과 우주를 주제로 이야기했는데 평양에 더 끌렸다. 평양이란 세계가 우주보다 더 신비로운 소재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38선 하나만 넘으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북한, 평양이 너무나 멀게 다가왔다. 그래서 매력적이었다. 평양을 소재로 한 앤솔로지는 흔하지 않아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난 이념적으로 편향된 사람은 아니다. 문학인데 무얼 소재로 하든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미국, 러시아를 소재로 차용하는 것처럼 소재가 북한일 뿐이다.

한은형 2014년 제안을 받고 재미있게 썼다. ‘샌프란시스코 사우나’의 주인공 본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북한 출신, 어머니는 남한 출신이다. 해체된 이민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이 느꼈을 고통과 정체성 혼란, 방황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경험과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주인공처럼 살아가는 한인 2세가 생각보다 많다. 이런 이야기를 꼭 다뤄보고 싶었다.

Q 작품을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김태용 2023년의 북한을 배경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남한 기자가 북한 과학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우정을 그렸다. 북한 소설 <녀학자의 고백>을 모티브로 삼았다. 사실적 장치라고 한다면 크리스 마르케 사진전을 보고 온 기억뿐이다. 1950년대 후반 북한의 모습을 담은 크리스 마르케의 포토에세이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각인돼 있었는데 이야기가 이렇게 발전할지 몰랐다. 소설의 미래 배경은 논란의 여지도 있고 인식이 다를 수도 있다. 70년 동안 그래 왔으니까. 그래도 지금의 화해 분위기를 긍정하고 나름의 유토피아를 그려보려고 노력했다.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정용준 사람 이야기다. 독자들은 북한에 대해 어떻게 썼는지 보고자 하는 마음이 클 수도 있지만 남한에 있는 북한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담았다. 한 인디 가수가 심야버스에서 깜빡 졸다가 정체 모를 일행과 경주까지 동행하는 여정을 그렸다. 실제 스무 살 때의 내 일화를 차용했다. 버스에서 졸았는데 내가 없는 줄 알고 기사 아저씨는 종점을 지나 다른 곳으로 갔다. 이미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갔다. 기사 아저씨는 한 폐차장에 차를 멈추고 지인들과 고기를 구워 먹었다. 나도 그 자리에 함께했고 무사히 돌아왔다. 강렬한 경험이었다. 여기에 상상력을 더했다. 이야기는 사람을 따라 그냥 흘러간다. 그 사람들도 먹고살기 위해 애써 일하는 하루하루가 고단할 것 같았다. 북한 사람은 이럴 것이다, 먼저 판단하기보다 삶을 깊게 들여다보고 일상다반사에 관심을 갖고 싶었다. 

한은형 정체성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떤 사람에게 태어날지, 부모가 어떤 사람일지, 어떤 나라에서 태어날지 등은 우리 의지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다음의 행동과 선택이 모여 삶을 이루는데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어떤 인물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만났던 베를린에서 온 남자가 떠올랐다. 이름이 본이라고 했다. 본에서 태어나서 붙인 이름이라 했다. 총명하고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그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승민 남북이 뭐가 다를까, 차이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자료를 찾다 보니 닮은 꼴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다. 그래서 소재로 사랑을 택했다. 서울과 평양의 시간이 같게 흐르듯이 남이나 북이나 사랑은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소설의 골격은 ‘연분희’라는 인물의 애정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주인공을 ‘적대적 이상론자’로 표현했는데 이는 체제에 정형화된 캐릭터가 아닌, 그 개념을 깨뜨리려는 캐릭터라는 의미다. 북한 사회도 기존에 고수하던 방식과 달리 이상을 추구하는 인물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찌 보면 김정은 위원장도 그렇다. 지금까지의 북한과는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김일성·김정일이 만들어온 시스템을 깰 수도 있으니 말이다.

Q 소설 작업을 하며 새롭게 안 사실이 있는가?

이승민 정보에 한계가 있어 막막했다. 자료를 찾으며 그동안 알고 있던 북한이 피상적이었단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우리나라 사이트에서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던 정보가 구글에서 잘 모르는 언어로 나올 때면 아이러니했다. 인터넷을 헤매고 헤매야 이 정도의 정보가 구해지는구나 싶었다.

런던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일주일 정도 런던에 있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는데 불편함 없이 마음껏 썼다. 반면 평양을 묘사하는 데 굉장히 신경 쓰였다. 자료 제약도 있지만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니 스스로를 검열하게 됐다. 문학이란 장르에서 허용될 수 있는 부분도 평양이란 세상에 갇혀 자유롭게 써내려가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

김태용 어느 때보다 뉴스를 꼼꼼하게 챙겨본 것 같다. 미래를 배경으로 설정했지만 현실감(리얼리티)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가장 고민한 건 평화협정 과정에서 수차례 회담을 가졌다는 대목이다. 남북미로 할지, 남북미중으로 할지 끝까지 고민했다. 아직도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소설에는 남북미가 수차례 회담했다고 썼다.

한은형 작품을 쓰고 베를린에 갔다. 김일성대학교에서 유학한 동독 출신이나 북한 사람, 탈북민도 만났다. 한번은 젊은 탈북민 여성들을 단체로 만났는데 패션, 화장 등 외형이 너무 비슷했다. 남한 사람처럼, 미국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들과  얘기하면서 실제 북한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를 수 있단 걸 느꼈다. 어떤 북한 학자 말로는 그들은 반미를 배우지만 미국을 동경한다고 했다. 매우 흥미로웠다.

김태용 나도 유사한 말을 들었다. 북한도 어려서부터 영어 공부를 한다고. 그래서 탈북민들은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북한에 있을 때는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지만 탈북하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용준 우리는 분단을 잘 느끼지 못한다. 남북 간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도 할 건 다 했다. 오히려 무더위에 더한 공포심을 느꼈다. 실제 우리 삶은 휘둘리지 않는 실존이었다. 버스에 오른 대학생 ‘폴리’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산다.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에 군사분계선에 사는 시골 할머니가 나온다. 매일 밤 손전등을 비추며 누구 편이냐는 질문을 받고 러시아 룰렛게임처럼 답을 한다. 상황에 맞는 답을 해야 삶이 연장되는 셈이다. 문학의 가치는 <소문의 벽> 할머니처럼 사회의 거대 담론과 싸워나가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김태용 개인적으로 지난해부터 북한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언젠가 글로 풀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탐독할수록 흥미로웠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려서부터 받은 반공교육과 강박에 충돌하는 과정이랄까(웃음).

한은형 소설을 새로 쓴 작가들도 있는데 ‘샌프란시스코 사우나’는 2014년 집필한 그대로다. 바꾸고 싶은 대목도 있지만 하나를 바꾸면 전체가 흔들려 그냥 뒀다. 다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 소설을 쓰기 전과 후, 접한 정보와 만난 사람의 폭이 달라졌다. 해외에서 북한에 다녀온 사람을 많이 만났다. 소설에서 북한 여성들이 구시대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전제했다. 우리나라 여성이 수십 년 전 가졌던 사고방식을 북한 여성이 갖고 있을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탈북 여성을 만나 봐도 그렇다. 굳이 바꾸고 싶은 부분을 말한다면 소설에서 북한 여성을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라 다르게 그렸다면 어땠을까 싶다.

정용준 남북예술단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레드벨벳이 옥류관에서 찍힌 사진이 생각난다. 테이블 위에 평양냉면과 양념장, 식초, 겨자 등이 놓여 있었다. 평양냉면은 양념 없이 먹어야 한다는 기존 인식과 달랐다. 작은 차이겠지만 북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평양을 생각할 때도 유사하지 않을까. 북한 사람들이 사상적으로 맹목적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정도의 감각과 변화의 여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상상력이 갇혀 있는 것 같다.

한은형 그런 것 같다. 최근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우리는 화이트와인을 마실 때 긴 손잡이를 잡아야 한다는 서양 테이블 매너에 강박이 있다. 그런데 오히려 서양인들은 편하게 한다. 평양냉면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김태용 옛날에 북에 살던 어른들이 하는 구전이 그대로 보호됐으면 하는 바람 아닐까. ‘북한에서는 이렇게 했다’는 풍습이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이 ‘북한에서는 이렇게 한다’고 정의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이승민 2007년 취재차 금강산에 간 적이 있다. 소설에도 인용한 부분인데 냉면을 자를 가위를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안내원이 “위대한 원수님이 내려주신 귀한 음식에 쇳조각을 갖다 대는 행위라니, 당치도 않다”고 했다. 덜컥 겁이 났다. 세월이 지난 후 냉면을 ‘숨줄국수’라고 부르고 명이 짧아질까봐 면을 자르지 않는단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여성이 정색하며 나를 놀렸다는 걸 깨달았다.

정용준 이럴 거면 평양냉면 집에서 만날 걸 그랬다. (일동 웃음)

Q 끝으로 바람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승민 우여곡절 끝에 최근에야 <안녕, 평양>이 발간됐다. 타이밍이 좋았다고 할 수 있지만 너무 정세 변화와 연결 짓지 말고 소설 자체로 봐줬으면 한다. 동시에 남북 평화무드가 잘 진행돼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소설에 담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보고 느껴보는 날이 오길 바란다.

한은형 기회가 되면 평양에 가고 싶다. 작가들의 문화교류처럼 거창한 것 말고, 산책하고 물건도 사는 편한 여행처럼 말이다. 미국 국적을 가진 친구들이 북한에 다녀온 경우가 꽤 있다. 작가들도 평양에 다녀오면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듣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용준 많은 일이 뜬금없이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분위기 봐서’라는 말도 있지 않나.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다가도 갑자기 울고 그러듯 우발적 상황이 많이 작용한다. 독일 통일도 그랬다. 남북관계를 두고 많은 전망과 의견이 있지만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오면서 이러다? 이러다? 하다가 역시나, 역시나 하기도 했다. 큰 기대도, 너무 빠른 실망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인데 서로 웃다 보면 잘 풀리기도 하듯 여유를 갖고 유머를 잃지 않길 바란다.

김태용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 말이 기억난다. 북미 정상의 만남을 두고 사람들이 공상과학 영화 속 판타지를 본다고 생각할 수 있겠단 말이었다. 이처럼 유머를 가졌으면 좋겠다. 한은형 작가가 평양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과거 작가들이 갔던 방식과는 달랐으면 좋겠다. 시대는 변하는데 만나는 모습은 과거와 똑같다. 국가를 소재로 시대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북한에 가서 통일을 외치고 남북 작가가 술잔을 부딪치는 방식도 탈피했으면 한다. 나처럼 일상을 쓰는 작가는 통일에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방문을 원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이벤트도 열고 언제든 영상통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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