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 중국 다롄(大連)과 창춘(長春)에 다녀왔다. 다롄은 요동반도의 중심도시이고, 다롄에서 고속철로 세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창춘은 드넓은 만주 벌판의 중심지이다. 이 지역은 고구려시대에는 우리 땅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중국으로 가는 사신이 왕래하는 곳이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농민들이나 조국 해방의 꿈을 안고 떠났던 우리 선조들이 삭풍 속을 헤매던 곳이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이 활동하던 이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해방 이후 외세에 의해서 결정된 분단 때문이다. 해방 이후 우리는 불리한 환경을 뚫고 세계가 찬탄할 정도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달성했다. 그래도 남북 분단으로 한반도의 한쪽을 성장에 이용하지도 못했고, 가까운 중국의 동북지역이나 극동지역을 활용하지도 못했다. 더구나 분단 상황에서 정치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해야 했다. 이에 못지않게 우리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 심화, 큰 불안 요소
주변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는 지금 또 다른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갈등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갈등의 근본 원인은 기존 패권국인 미국에 대해 신흥 패권국인 중국이 세계 질서 구축에 자기 몫을 요구하고 미국은 이를 허용치 않으려는 데 있다. 현실 경제에서 이는 단기적으로 중국의 막대한 대미국 무역수지 흑자에서 출발한다. 미국은 자국의 제조업 경쟁력 하락은 고려하지 않고 무역수지 적자를 시장의 힘이 아닌 정치적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바로 중국의 주요 수출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주의 정신을 훼손하고 전방위적으로 주요 무역 대상국에 보복적 관세 인상을 주도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중국, EU 등도 마찬가지 대응을 하고 있다. 이 바람에 우리 수출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주요 국가의 보호주의가 단기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미국과 중국의 정치안보적 상호관계는 장기적으로 더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전쟁이 신흥 패권으로 부상한 아테네에 대한 기존 패권인 스파르타의 두려움 때문에 일어났다고 했다.
문제는 패권 대립과 새로운 패권 확립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산업혁명으로 영국은 세계를 지배했으나 1880년이 되면서 신흥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나 공업생산액이 영국을 넘어섰다. 그러나 1900년 새해가 밝아올 때도 영국은 아직 세계 25%의 인구를 지배하고 있었고, 2차 세계대전 무렵에 와서야 영국은 패권 자리를 미국에 완전히 내어주었다. 지금 중국의 GDP나 공업생산액이 미국보다 많아졌지만 세계 질서는 한동안 계속 불안정할 것이다. 중국이 혁신적인 정치·경제제도를 마련해 계속 성장할 것인가, 성장을 계속한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 후에 1강 국가가 될 것인가, 중국의 부상에 대해 보호주의와 중국 봉쇄정책을 동원하고 있는 미국이 또 어떤 수단을 개발해 동맹국들에게 강요할 것인가, 미국에 정치, 중국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큰 불안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 한반도 상황은 희망적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막대한 분단비용을 물어왔다. 직접 지출하는 안보 관련 비용, 우리 사회 내 이념 갈등, 국제사회에서 독립적인 대외정책 추진의 어려움은 중요한 분단비용이다. 또한 남북한 경제적 격차의 확대는 통일 이후의 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다. 통일된 이후 북한 주민들의 평균적인 삶의 수준을 올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지출이 필요하고 그 격차가 크면 클수록 더 많아질 것은 분명하다. 다행히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미의 직접 대화로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했다. 협상은 시간을 끌고 있지만 다시 볼 수 없는 기회를 맞게 되었다.
시장 이상의 가치, 사람 연계 통한 공동 번영
이러한 한반도 내외부의 상황에서 우리는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을 선택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의 기회를 활용해 미국과 중국에 의존하던 정치, 경제의 다각화를 통해 다가올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응하고 동시에 경제적 기회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신북방정책은 우리에게는 아직 미개발 지역인 북한, 중국의 동북지역, 극동 러시아, 시베리아와 협력을 확대해 평화를 정착시키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유럽을 거쳐 유럽까지 연결될 수 있는 북방지역은 자원과 시장 그리고 한반도의 해빙까지를 동시에 달성시킬 수 있는 미답의 지역이다.
한편 신남방정책은 기존의 주요 경제 협력 파트너인 아세안 및 인도와 새로운 차원으로 협력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아세안은 이미 우리 수출의 16% 이상을 흡수하는, 미국보다 훨씬 큰 시장이고 인구가 6억 5000명에 이르는 성장지대이다. 인도 역시 인구가 13억 명 이상으로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우리는 이미 아세안과 인도와는 FTA·CEPA를 체결해 협력의 기초를 마련해두고 있다. 따라서 신남방정책은 새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중상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 번영이라는 측면을 더 강조한다. 즉 단순히 아세안을 시장으로 이용하기보다 사람과 사람의 연계, 평화의 동반자,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미래의 공동체로 더욱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아세안과는 문화 교류를 확대하고 인적 교류를 늘리면서 하나의 가족과 같은 공동체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 중견국의 입장에서 세계 평화에 협력할 것이다. 현재 아세안과 인도에 대해서는 우리가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우리 기업의 투자도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이들의 경제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기술, 중소기업, 인적 자원 육성 등을 지원할 수 있다.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은 우리의 냉혹한 국제질서 속에서 독자성을 확대하고, 경제활동 영역을 넓혀나가는 미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기반으로 미중 의존도를 줄이고 경제협력 대상을 더 다양화하면서 불안정한 세계 정치·경제 환경에 대응하고 번영을 달성하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남북한, 북미의 해빙 시대라는 보기 드문 호기를 맞고 있다. 신북방·신남방정책을 성공시켜 한반도를 평화와 번영이 넘치는 땅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 그 기회를 맞고 있다.
박번순│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