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과학지식을 3분 안에 쉽게 설명하는 강연대회 ‘페임랩(FameLab) 코리아’가 국내에서 처음 열렸다. 지난 4월 18일 서울 광화문 KT올레플라자에서 열린 ‘페임랩 코리아 2014’ 본선에 참가한 ‘톡톡 튀는’ 11명의 참가자들 중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주제로 뜨거운 관객 반응을 이끌어낸 지웅배(23·연세대 천문우주학과) 씨가 대상을 수상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주한영국문화원이 공동 주관한 이번 대회는 PT의 달인이었던 스티브 잡스와 같은 과학기술 소통 전문가를 양성하고, 과학을 더욱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 열렸다.
“페임랩 참가도 좋지만, 해외 참가자들의 발표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더 흥분했어요.”
금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마른 체구에 앳된 얼굴을 한 청년 지웅배 씨. ‘진지하고 학구적일 것’이라는 과학도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인상이다. ‘페임랩 코리아’ 본선에서도 그는 ‘반전의 매력’을 선사하며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본선에서 ‘ART’라고 새겨진 알파벳 카드를 양쪽으로 펼친 후 “‘ART’의 앞에 ‘E’가, 뒤에 ‘H’가 붙어서 ’EARTH‘가 된다”며 ‘ART(예술)=EARTH(지구)’라는 설명으로 서두를 열면서 인상 깊은 퍼포먼스를 펼쳤다. 탁구공 위에 그린 지구본까지 동원한 그의 발표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외계행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청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페임랩 코리아’는 PPT 등 별도의 발표자료 없이 과학적 주제에 대해 3분 이내에 발표하는 경연대회다. 영국에서 2005년부터 시작한 ‘과학 발표대회’로 ‘과학과 공학 분야의 커뮤니케이터 발굴’을 목적으로 한다. ‘페임랩 코리아’ 대상 수상자에게는 오는 6월 영국 ‘첼튼엄 과학페스티벌’에서 열리는 페임랩 국제대회 참가자격도 주어졌다.
“동영상으로만 접했던 페임랩 국제대회 참가자들의 발표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두근거려요. 하지만 한국의 첫번째 참가자인 제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2회, 3회 우승자들에게 국제대회 참가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기도 하죠.”

국제 페임랩 준비 “한국 과학도 센스를 보여줘야죠”
‘페임랩 코리아’가 내세우고 있는 ‘과학과 대중의 소통’은 사실 지씨가 오래 전부터 고민해 오던 주제이기도 했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비영리 학생단체 ‘우주 : 라이크(WouldYouLike)’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천문우주학 대중화를 목표로 한 ‘우주 : 라이크’는 부정기적으로 천문우주에 관한 내용을 담은 잡지를 발간해 서울 신촌지역의 대학교와 구독을 원하는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천문우주과학의 최신 소식부터 천문대 탐방, 천체 사진을 찍는 방법을 소개하는 등 일반인들도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구독자들 사이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제가 사실 ‘과학 오타쿠’예요. 과학의 재미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주 : 라이크’ 활동을 하는 거죠. ‘페임랩 코리아’에 출전한 것도 같은 이유였죠. 영국에서 열리는 페임랩을 보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행사를 우리나라에서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랐는데 제가 출전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흥분됐는지 몰라요.”
그는 “재미있고 기발한 발표들을 보면서 과학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과학의 대중화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가 희망하는 ‘과학의 대중화’는 ‘대중들에게 과학을 알리는’ 대중화가 아니다.
‘과학자들에게 대중과의 소통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진정한 과학의 대중화라고 말한다.
“사실 과학이라고 하면 너무 무겁고 지나치게 폼을 잡아 일반인들이 쉽게 알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 있어요. 전공자들이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고 대중 앞에 적극 나서 과학의 즐거움을 알리면 진정한 ‘과학의 대중화’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해요.”
대상 수상의 여운을 즐길 틈도 없이 지 씨는 곧바로 페임랩 국제대회 준비에 돌입했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힘을 쏟고 있는 점은 ‘논리력과 깊이’, 그리고 ‘영어를 통한 감성전달’이다.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의 박종일 교수께서 언론을 통해 제게 ‘지금보다 훨씬 더 논리적으로 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 말씀대로 국제대회에선 보다 논리적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에요.”
그는 우리말과는 다른 방법으로 감성을 전달해야 한다는 점도 고민이라고 했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문과계열 친구들과 부모님을 상대로 영어로 연습발표를 하면서 반응을 살피고 있는데,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전 세계의 페임랩 팬들을 향해 한국 과학도들도 센스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 연구자로서의 길을 가고 싶다는 지 씨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의 소소한 재미를 알릴 수 있는 유쾌한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올해 열리는 영국의 페임랩 국제대회에는 한국을 비롯한 25개국의 페임랩 우승자 25명이 국가를 대표해 참여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매년 ‘페임랩 코리아’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결선 대회는 YTN 사이언스에서 5월 2일, 9일 밤 10시에 2회로 나눠 녹화방송될 예정이다. 아프리카 TV에서 VOD로도 볼 수 있다.
글·이윤진 객원기자 2014.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