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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응봉산은 아름다운 ‘오지계곡’을 여럿 거느린 산으로 손꼽힌다. 사진은 태곳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산터골. 사진 C영상미디어

삼척·울진 응봉산
우리나라 산 가운데 가장 흔한 이름을 꼽으라면 단연 응봉산(鷹峰山)이다. 산세가 날아오르는 매를 닮았거나 매가 깃들어 살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여름의 문턱을 넘어설 무렵 전국의 많은 응봉산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산이 있다. 강원도 삼척과 경북 울진의 경계를 가르며 웅장하게 솟은 응봉산(999.7m)이다.
국립공원의 대표 계곡으로 설악산 천불동, 지리산 칠선, 한라산 탐라계곡을 꼽는다면 응봉산 용소골은 명실상부한 국립공원 밖 ‘재야의 제왕’이라 할 만하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붉은 암벽과 거친 폭포가 굽이마다 다른 풍경을 펼쳐놓는다. 정비된 국립공원의 탐방로처럼 친절하지는 않지만 날것 그대로의 풍광에 홀려 자꾸만 깊은 상류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마성이 있다.
응봉산이 여름 산행지로 특별한 것은 품고 있는 계곡의 표정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주능선을 기준으로 북쪽 삼척 방면에는 거칠고 야성적인 용소골이 흐르고, 남쪽 울진에는 따뜻한 온천수를 품은 온정골이 자리한다. 차량 접근이 쉬워 널리 알려진 덕풍계곡과 덕구계곡도 그 비경의 모태가 되는 상류가 바로 용소골과 온정골이다.
버릿골의 버릿소도 빼놓을 수 없다. 블랙홀처럼 검푸른 물웅덩이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터골과 재량박골, 구수곡자연휴양림을 품은 구수골까지, 하나의 산에서 흘러내렸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각양각색의 매력을 지닌 골짜기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구수골에 자리한 울진 구수곡자연휴양림. 사진 울진군청

붉은 암벽과 옥빛 물
용소골은 응봉산이 낳은 골짜기 중 가장 길고 늠름하다. 총연장 14㎞에 달하는 덕풍계곡의 최상류로, 붉은 암벽과 옥빛 담소가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장대하게 펼쳐진다. 수직절벽이 뱀처럼 계곡을 휘감아 돌며 용의 전설을 풀어내는 이곳에는 이름의 유래가 된 세 개의 깊은 소(沼)가 자리한다.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제1용소는 거대한 검은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마치 웅장한 연주홀을 방불케 한다. 가뭄 때 기우제를 지냈다는 전설처럼 영험하고 은밀한 기운이 감돈다. 바위와 낙엽을 거쳐 흐르는 물은 잘 우려낸 맑은 차처럼 황금빛을 띤다.
용소골의 백미는 제2용소다. 8m 높이에서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물줄기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 소로 곤두박질친다. 과거에는 범접하기 힘든 맹수처럼 위압적이었지만 최근 탐방로가 정비되고 젊은 백패커와 산꾼들이 찾으면서 한결 친근한 풍경이 됐다.
가장 깊숙한 곳에는 제3용소가 숨어 있다. 베테랑 산악인의 발길만 닿는 오지 중의 오지로 너른 천연 암반 슬라이드와 짙은 숲 그늘이 어우러져 한여름 최고의 쉼터를 내어준다.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로움’ 역시 응봉산의 묘미다. 안전을 지키는 선에서 맑은 소에 뛰어들거나 물길을 첨벙거리며 걷는 계곡 트레킹의 원초적 즐거움이 살아 있다.

온정골 원탕의 자연용출 온천수를 끌어 쓰는 울진 덕구온천. 사진 울진군청

8m 높이에서 폭포수가 쏟아지는 제2용소. 응봉산의 맏형 격인 용소골에서도 제2용소는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사진 C영상미디어

온천수에서 금강송 숲길까지
삼척 쪽이 거친 모험의 무대라면, 울진 방면 온정골은 한결 다정하고 넉넉하다. 국내 유일의 자연용출 온천수가 샘솟는 ‘원탕(原湯)’에서는 42.4℃의 알칼리 온천수가 하루 약 2000~4000톤씩 솟구쳐 덕구온천으로 흘러든다. 야외 족욕탕에 발을 담그고 차가운 계곡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산행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계곡을 따라 미국 금문교, 프랑스 노르망디교 등 세계 유명 교량 12곳을 본뜬 다리가 놓여 있어 소소한 볼거리를 더한다. 덕구온천에서 정상을 거쳐 온정골로 이어진 산길에서는 붉은빛의 우람한 금강송도 만날 수 있다. 다만 2022년 발생한 산불로 소나무가 일부 소실돼 짙은 그늘을 이루던 산길이 뙤약볕 아래 드러난 곳도 눈에 띈다.
응봉산은 자연이 가진 양날의 검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산이다. 거친 야성과 대자연의 감동을 단 하루 산행으로 모두 보여준다. 또한 겸손을 가르쳐주는 산꾼들의 스승으로 통한다. 과거 응봉산은 등고선 지도와 나침반에 의지해 길을 찾아야 했던 베테랑 산꾼들의 모험지였다. 최근에는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비경이 알려지고 초보 탐방객이 늘면서 조난 사고가 잇따르자 용소골 2용소 위쪽 상류는 출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계곡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더위가 가시지 않는다면 이 땅에 남은 마지막 오지 응봉산을 추천한다. 거친 바위를 딛고 차가운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는 동안 번잡했던 일상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진다. 입장료를 받는 사람도 벌금을 매기는 사람도 없지만 국립공원만큼 아름다운 산, 그곳에 원초적인 해방감이 기다리고 있다.

신준범 월간<산> 기자

알고 가면 좋은 정보

삼척·울진 응봉산

추천코스 1. 용소골
덕풍산장(삼척시 가곡면 덕풍길 1085)~1용소~2용소~1용소~덕풍산장(5㎞, 4시간 소요). 2용소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오는 편도회귀 코스. 여름 성수기에는 덕풍계곡 입구에서 덕풍산장까지 차량 입장을 통제하기도 하므로 방문 시 사전에 문의하는 것이 좋다. 도보 진입 상시 가능.

추천코스 2. 온정골
덕구온천~옛재능선길~정상~온정골(온천계곡)~덕구온천(13㎞, 5시간 소요).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올랐다가 지능선을 따라 계곡에 내려선 후 덕구온천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 산길 정비가 잘 돼 있으며 원점회귀라 자가용 이용 시 편리하다. 온천에서 땀을 씻을 수 있는 것도 장점.

주의사항
① 용소골은 절벽과 가파른 산이 에워싸고 있는 성벽 같은 협곡이다. 갑자기 큰 비가 올 경우 피할 곳이 없어 위험하므로 야영을 삼가고 일기예보에 신경 써야 한다.
② 울진 온정골 입구와 삼척 용소골 입구는 차량으로 갈 경우 50㎞에 이른다. 두 코스를 당일에 모두 둘러보기는 쉽지 않다.
③ 버릿골과 재량박골은 등산 베테랑이 아니면 위험하므로 진입을 삼가야 한다.
④ 용소골은 발을 담가 텀벙텀벙 걷는 계곡 트레킹이 인기 있다. 샌들과 등산화를 모두 준비하는 것이 좋고 양말을 신고 샌들을 신어야 물집이 생기지 않는다.

대중교통
용소골은 삼척에 있지만 태백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편하다. 태백에서 용소골 입구의 덕풍계곡까지 25㎞, 삼척역에서 덕풍계곡까지 60㎞이며 버스가 드물어 접근이 불편하다. 태백터미널에서 출발해 427번 지방도와 416번 지방도를 거쳐 삼척시 원덕읍 호산항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있다. 덕풍계곡을 경유한다.
덕구온천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울진 부구터미널행 버스를 탄다. 하루 7회(07:10~20:05) 운행하며 3시간 30분 걸린다. 부구터미널에서 덕구온천까지 9㎞이며 버스로 20분이면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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