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백범의 문화강국 비전과 국가전략 재조정
대한민국에서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국가주권을 박탈당하는 참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을 되새기는 날이다. 올해는 특히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 기념일이어서 경건함을 더하고 있다. 백범은 한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위대한 지도자로 명성을 넓혀가고 있다. 유네스코가 올해를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해’로 지정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김구 선생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이 커지면서 그가 제시한 ‘문화강국론’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공약에 5대 문화강국 달성을 포함했고 취임 이후에도 여러 차례 문화강국에 대한 백범의 소망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백범이 제시한 문화강국론은 문화 분야에 특화된 정책 구상이 아니고 총체적인 국가비전으로 제시됐다는 점에서 정확한 개념 정리가 요구된다. 특히 이 대통령이 국가전략 차원에서 제시한 몇 가지 개념의 위계와 상호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한다면 국정 운영에서 불필요한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강국 구상은 포괄적인 국가비전
백범이 말한 문화강국은 매우 포괄적인 국가비전이다. 백범은 부강한 나라보다 문화강국을 바란다면서 국민이 행복한 나라, 행복을 다른 나라에 전하는 나라, 평화를 선도하는 나라, 존경받는 선비의 나라가 문화강국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백범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함으로써 발생하는 갖가지 인권 유린과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문화강국 개념을 제시했을 것이다. 백범은 특히 이런 불행의 배경에 인의, 자비, 사랑의 부족이 있다고 진단하고 이를 교육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백범의 문화강국은 예술 중심의 문화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교양과 덕성, 품격을 갖춘 국민과 제도를 바탕으로 한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K-이니셔티브는 의미가 조금씩 확장돼 온 개념이다. 이 대통령은 당초 K-컬처는 물론 K-푸드, K-민주주의 등 다양한 종류의 K-현상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했지만 이후에는 대한민국이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추고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 또는 그런 상황에 도달하기 위한 정책 노력을 포괄하는 의미로 확장됐다.
‘대체불가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조선 등 세계 공급망에서 한국이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분야가 등장한 데 주목해 이를 AI·우주항공 등 미래산업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대통령이 ‘초격차 산업’ 개념을 동시에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대체불가 대한민국’은 산업·경제 분야 국가 발전 목표 또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초 기자회견에서 ‘글로벌 외교·안보 강국’ 개념도 제시했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작은 나라가 아니라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평화를 지키고 자부심을 높이는 글로벌 외교·안보 강국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원자력 협정 개정과 핵잠수함 도입, 조기 전시작전통제권 회복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문화강국 위한 ‘K-이니셔티브’ 전략
이처럼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다양한 국가비전 또는 국가전략 개념이 제시됐지만 각 개념의 상관관계에 대해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설명된 적은 없다. 이 대통령의 여러 언급을 종합하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는 있다. 이들 개념을 체계적으로 재배치한다면 가장 위에는 ‘문화강국’을 국가비전으로 두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그리고 백범의 설명을 오늘의 국가전략 언어로 정리하면 문화강국의 3대 국가목표는 ‘행복·평화·존경’으로 압축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는 국정기획위원회가 설정한 국가비전인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과도 맥락이 유사하다. 백범이 제안한 문화강국 비전은 특히 대동세상, 홍익인간, 선비정신 등 우리 전통문화 요소를 두루 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체계에서 K-이니셔티브는 문화강국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고 행복·평화·존경이라는 3대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전략으로 재정립할 수 있다. 이 전략 아래 3대 국가목표에 맞춰 분야별로 3개씩 모두 9가지 프로젝트를 상정할 수 있다.
‘행복’ 분야에는 삶의 질을 높이는 K-라이프와 삶을 풍요롭게 하는 K-컬처,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K-이코노미를 배치하면 좋을 것이다. ‘평화’ 분야에서는 K-민주주의, K-외교, 그리고 개발협력과 기후변화, 보건, 재난 등 지구촌 공동과제 해결에 기여하는 K-글로벌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존경’ 분야에서는 생명을 지키는 K-보건, 사람을 돌보는 K-복지, 그리고 인재와 품격을 키우는 K-교육을 배치하면 적절하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체불가 대한민국 건설이나 글로벌 외교·안보 강국 건설은 K-이니셔티브 아래 K-이코노미 프로젝트와 K-외교 프로젝트로 각각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강국을 중심으로 흩어진 국가전략 개념을 재정렬한다면 국정의 방향은 훨씬 선명해질 수 있다. 백범이 꿈꾼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존경받는 나라를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비전으로 계승하고 대한민국이 이미 확보한 세계적 역량을 그 꿈을 실현하는 힘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왕선택
서강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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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