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3’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삼우제를 지내고 삼년상을 치른다. 제사상에 올리는 나물은 세 가지고 과일도 세 종류를 놓는다. 아이를 낳았을 때는 삼칠일 동안 조심해야 하고 게임을 할 때도 삼세판을 한다. 한국인에게 3은 행운의 숫자다. 3은 길수(吉數)이자 신성수(神聖數)이며 가장 안정적인 숫자다. 3이 두 번 겹친 3월 3일은 삼짇날이라 부르며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는 길일로 친다. 독립선언문에 33인이 서명한 것도 그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숫자 3은 단군신화에 삼태극(三太極)으로 등장할 만큼 그 역사가 오래됐다. 건국신화에 따르면 하늘의 신 환인은 그의 서자인 환웅을 땅으로 내려보내면서 제왕의 지위를 표시하는 천부인(天符印) 세 개의 도장을 준다. 환웅이 서자라는 것은 하늘 세상과 차원이 다른 지상의 왕이라는 뜻이다.
환웅은 하늘에서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올 때 풍백, 우사, 운사의 3신과 3000의 무리를 거느렸고 곡식, 수명, 질병 등 3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렸다. 신화에 언급된 숫자가 모두 3과 관련돼 있다. 환웅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간자적 존재이며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서 인간이 된 웅녀와 결합해 단군왕검을 낳는다.
천상에서 지상까지 연결된 환인(天), 환웅(地), 단군(人), 삼재(三才)를 합해 삼태극이라고 부른다. 태극이란 모든 존재와 가치의 근원이 되는 궁극적 실체이다.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天孫)사상을 반영한다. 또한 하늘에 대한 공경심을 보여주는 경천사상과 조상숭배의식도 엿볼 수 있다. 삼신할머니는 삼태극에서 여성적인 의미가 확대된 것이고 천지인합일사상을 보여주는 삼족오(三足烏)는 무속에서 삼재(三災)를 쫓는 3두1족의 매로 변신한다.
삼태극은 ‘태극선’에서 청적황의 삼색으로 표현된다. 이때 청색은 하늘(천), 적색은 땅(지), 황색은 사람(인)을 뜻한다. 한국인의 삶은 온통 삼태극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궁궐, 사찰, 서원, 향교의 대문과 문설주에는 삼태극 문양이 자주 등장한다. 풍물패의 의상도 청적황의 삼색띠가 들어가고 법고와 진고, 건고와 소고 등의 악기에도 삼태극이 그려져 있다. 기와, 도자기, 자물쇠, 사물함, 벼루, 떡살, 반짇고리, 방패연 심지어는 베갯모에도 삼태극이 들어간다. 우리나라 태극기는 청색과 적색 이태극으로 그려지지만 최초의 태극은 음양태극이 아니라 삼태극이다. 한국인은 삼태극을 생활화했기 때문에 불교의 삼세불이나 기독교의 삼위일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헤겔 정반합보다 앞선 지혜
그렇다면 한국인은 왜 유난히 3을 좋아할까? 3이야말로 처음으로 느낄 수 있는 완전한 숫자기 때문이다. 1이 단독이고 2가 대립이라면 3은 안정에 속한다. 1과 2가 서론과 본론이라면 3은 결론이다. ‘삼족정립(三足鼎立)’에서처럼 솥이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발이 세 개여야 한다. 그러나 3은 가위바위보 게임에서처럼 어떤 것도 하나만 완벽하게 이기거나 완벽하게 질 수 없다. 가위(사람)는 보(하늘)를 이기지만 바위(땅)를 이길 수 없다. 보는 바위를 이기지만 가위를 이길 수 없으며 바위는 가위를 이길 수 있지만 보를 이길 수 없다.
삼태극의 천지인도 상중하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보충하는 관계다. 한국인은 헤겔이 정반합(正反合)의 개념을 주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변증법적인 사고에 익숙해 있었다. 3은 안정된 숫자지만 멈춰 있지 않고 ‘태극선’에서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3에 익숙한 한국인은 정에 상반되는 반을 들고 나오지만 갈등에 머무르지 않고 전혀 새로운 차원의 합으로 나아갈 줄 안다. 역동성과 포용력이야말로 우리 유전자 속에 내재된 진정한 힘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