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얼마나 많이’에서 ‘어떻게 잘 쓰느냐’로… 무탄소 전원 시대 전력의 기준이 바뀐다

무탄소 전원
햇볕이 쨍쨍한 한낮이면 전국의 태양광발전소에서 전기가 쏟아져 나와요. 시원한 바람이 불면 풍력발전기도 힘차게 돌아가죠.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으면서 전기를 많이 만들었으니 무조건 좋은 일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전기는 필요한 양보다 너무 많이 만들어도 곤란하기 때문이에요. 전력망은 전기를 쓰는 양과 만드는 양의 균형을 실시간으로 맞춰야 안정적으로 운영돼요. 그런데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져요. 그렇다고 필요할 때마다 햇빛과 바람을 켰다 끌 수도 없죠.
탄소중립 시대의 전력정책이 단순히 ‘친환경 발전소를 많이 짓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이유입니다. 재생에너지와 원전, 청정수소 등 탄소를 배출하지 않거나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무탄소 전원’을 확대하는 동시에 전력망과 저장장치, 전력시장이 서로 맞물려 움직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정부가 수립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도 이런 변화의 큰 그림 위에 세워질 예정입니다. 정부는 2040년 석탄발전 폐지를 목표로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대전환을 추진하면서 안전성을 전제로 원전도 지속 활용한다는 방침이에요. 5월에는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확대 방향과 실행 전략을 담은 첫 국가 기본계획인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도 내놓았습니다.
재생에너지 늘리려면 전력망도 바꿔야
무탄소 전원은 전기를 생산할 때 탄소를 배출하지 않거나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발전원을 뜻해요.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청정수소 등이 대표적이죠.
정부는 특히 재생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어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100GW 규모로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에는 이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한 전략과 함께 2035년까지의 중장기 이행계획도 담겼어요.
하지만 발전소만 늘린다고 에너지 전환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태양광·풍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도 이를 받아들이고 필요한 곳으로 보내줄 전력망이 부족하면 제대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정부는 기존 전력망의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의 전력계통 접속을 확대하는 한편 지역에서 만든 전기를 지역에서 활용하는 분산형 전력망 구축도 추진하고 있어요. 재생에너지 접속이 어려운 배전선로에는 ESS(에너지저장장치)를 설치해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농공단지나 대학 캠퍼스 등에는 일정 지역 안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마이크로그리드도 구축할 계획이에요.
태양광과 풍력이 많아지면 다른 발전원의 역할도 달라집니다. 원전은 그동안 일정한 출력을 유지하면서 많은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저전원 역할을 해왔어요. 그런데 맑고 바람이 좋은 날에는 특정 시간대에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크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때 전력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면 재생에너지 발전량만 줄이는 게 아니라 다른 발전원도 상황에 맞게 출력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죠. 정부가 ‘원전 탄력운전’ 기술 개발을 추진하는 이유예요.
정격출력 80% → 50% 수준으로
현재 원전은 정격출력의 80% 수준까지 낮춰 운전할 수 있는데 정부는 이를 2027년 70%, 2032년 50% 수준까지 낮출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햇빛과 바람으로 전기가 많이 만들어질 때는 원전 출력을 낮추고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줄어들면 다시 출력을 높여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예요.
기술개발과 함께 안전규제 준비도 시작됐습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9월 1일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에는 원전 탄력운전에 대비한 안전규제 연구개발 확대가 포함됐어요. 한국수력원자력은 2032년 50% 수준의 탄력운전을 목표로 기술을 개발하고 2029년 관련 인허가를 신청할 계획입니다.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신규 원전(대형 원전 2기)도 계획대로 추진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상용화를 위한 기술개발과 규제체계 구축도 진행하고 있어요. 결국 ‘재생에너지냐 원전이냐’를 선택하는 문제를 넘어 성격이 다른 무탄소 전원을 하나의 전력망 안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운영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가 된 셈이죠.
무탄소 전원 전환에서 수소도 한 축을 담당해요. 하지만 수소라고 모두 똑같이 깨끗한 것은 아니에요. 어떻게 생산했느냐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죠.
정부가 6월 행정예고한 2026년 수소발전 입찰시장 개편안에 따르면 올해 개설 물량은 청정수소발전시장 500GWh, 일반수소발전시장 930GWh입니다. 청정수소발전시장에는 수소 1㎏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4㎏CO₂e 이하라는 국내 청정수소 인증기준을 충족한 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설비만 참여할 수 있어요.
올해부터는 석탄과 암모니아를 함께 태우는 ‘석탄-암모니아 혼소발전’도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 지원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040년 석탄발전 폐지 목표에 맞춘 조치예요. 대신 수전해 등 국내 청정수소 생산 생태계를 키우고 일반수소발전시장에서도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할 수 있도록 환경성 평가를 강화할 계획이에요.
전기를 만드는 것만큼 잘 보내는 것도 중요
무탄소 전원이 늘어날수록 발전소 못지않게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전기가 오가는 전력망이에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햇빛과 서남해의 바람으로 많은 전기를 만들어도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수도권이나 산업단지까지 보낼 전력망이 부족하면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겠죠. 특정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한꺼번에 늘었는데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저장하지 못하면 발전량을 줄여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고요.
전력시장도 달라져야 해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변하는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하루 전에 예상한 수요와 공급만으로 전력시장을 운영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에요. 정부는 재생에너지가 전력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실시간으로 변하는 전력 수요와 공급에 대응할 수 있는 시장체계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에요.
이제는 화석연료를 태워 대량의 전기를 생산해 일방향으로 보내던 시대에서 여러 무탄소 전원이 함께 전기를 만들고, 남는 전기를 저장하고, 필요한 곳으로 보내는 시대로 바뀌고 있어요.
탄소중립 시대의 숙제는 이제 전기를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를 넘어섭니다. 얼마나 깨끗하게 만들고, 안정적으로 연결하고, 똑똑하게 나눠 쓰느냐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전기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어요.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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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