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보름달에 먹는 송편 왜 반달일까?

추석이면 둥근 보름달을 기다린다. 그런데 달을 바라보며 먹는 송편은 둥글지 않고 반달 모양이다. 더없이 상서로운 날, 충만함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 대신 절반의 불완전함을 택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 궁금증을 따라가다 뜻밖에 신라의 왕궁인 경주 월성(月城)에 닿았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제4대 왕인 석탈해가 토함산 아래 호공의 집을 보고 그곳을 길지(吉地)라고 여겨 차지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곳이 훗날 월성이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월성을 왕궁으로 삼은 것은 파사 이사금 때인 101년이다. 후대의 기록에는 월성이 남천을 감싸듯 휘어진 모습이 초승달과 같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석탈해가 그 땅을 길지라고 여긴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기록은 이유를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초승달을 떠올려볼 수 있다. 초승달은 아직 보름달이 아니다. 그렇다고 스러져가는 달도 아니다. 이제 막 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다. 부족함 속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품은 모양이다.
동양에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오래된 우주관이 있다. 후대의 역학에서는 이를 하늘의 운행과 땅의 안정, 동(動)과 정(靜)의 관계로 설명하기도 했다. 하늘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땅은 그 움직임을 받아 만물을 기른다. 움직임과 머묾, 변화와 축적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함께 세상을 이룬다.
달 역시 끊임없이 차고 기운다. 보름은 가장 충만한 순간이지만 동시에 다시 기울기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반달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나아갈 여지를 품고 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극에 이른 것을 경계하고 아직 차지 않은 것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읽기도 했다. 송편의 반달은 바로 그 가능성을 닮았다.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 안에는 콩과 깨 같은 소가 들어간다. 비어 있는 반달에 풍요를 채워 넣고 두 손으로 꼭 눌러 모양을 만든다. 이미 완성된 보름달을 빚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차오를 반달을 빚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서도 아름다운 것은 꼭 완성된 것만이 아니다. 씨앗은 꽃이 아니지만 꽃을 품고 있다. 어린 나무는 큰 나무가 아니지만 숲으로 자랄 시간을 품고 있다. 반달도 보름달이 아니어서 부족한 것이 아니라, 보름을 향해 가고 있어서 아름답다.
‘차오름’은 단순히 많아지는 것이 아니다. 아직 남아 있는 가능성을 믿는 마음이다. 이미 이룬 것에 감사하면서도 내일을 위한 자리를 남겨두는 마음이다. 하늘에는 꽉 찬 보름달이 떠 있고, 우리의 손에는 아직 덜 찬 반달이 들려 있다. 하늘은 완성을 보여주지만 우리의 손은 미래를 빚는다.
그래서 추석은 완성의 축제인 동시에 차오름을 기다리는 날인지도 모른다. 한 해의 결실을 거둬 감사하면서도 다시 씨앗을 남긴다. 지나온 시간에 감사하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축원한다.
석탈해가 정말 초승달의 형상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신라인이 월성의 초승달 모양에 어떤 뜻을 담았는지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초승달과 반달에서 하나의 의미를 읽어볼 수 있다.
반달은 덜 찬 달이 아니다. 차오르고 있는 달이다.
송편도 그렇다. 작은 반달 하나에는 햇곡식으로 대표되는 한 해의 결실과 가족의 정성,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기대가 함께 담겨 있다. 어쩌면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가득 찬 것보다 차오르는 것의 힘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있기에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가능성 하나 믿고 차오름을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온 지금의 대한민국이 꼭 추석날의 송편 같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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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