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이 선택한 K-호위함
2024년 4월 22일부터 5월 10일까지 진행된 미국·필리핀 연합 군사훈련 ‘발리카탄(Balikatan)’에서 필리핀 해군 호위함이 대함미사일을 발사해 표적 선박을 정밀 타격하는 장면이 공개됐다. 연합 훈련에서 사격 장면이 공개되는 일 자체는 흔하지만 당시 필리핀 현지에서는 큰 관심을 모았다. 필리핀 해군이 호위함에서 실제 표적을 향해 대함미사일을 발사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또 실사격에 활용된 호위함 ‘호세 리잘함’(2600톤급)과 함대함미사일인 ‘해성’(C-Star·SSM-700K)이 각각 우리 방산기업 HD현대중공업과 LIG넥스원이 개발한 체계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필리핀 누리꾼들은 해군 전력 강화 소식을 축하하면서도 “한국의 기술력에 감사하다”, “한-필리핀 군사협력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는 반응을 보였다.
호위함은 군함 가운데 함대나 수송선단을 보호하고 다양한 해상전투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적 군함과 맞서는 ‘대함전’, 전투기나 미사일 등 공중 위협에 대응하는 ‘대공전’, 수중에서 접근하는 잠수함을 탐지·격멸하는 ‘대잠전’까지 수행할 수 있어 ‘다목적 전투함’으로 불린다. 해군 전력 현대화를 추진 중인 동남아와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서 핵심 전력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들 국가가 K-호위함 도입에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구매하면 정비까지 책임집니다!
K-호위함 수출의 대표 사례는 필리핀 해군 호위함 사업이다. HD현대중공업은 2016년 필리핀 해군 호위함 1차 사업을 수주해 호세 리잘급 호위함 2척을 각각 2020년과 2021년 인도했다. 이어 후속 사업 수주에도 성공해 미겔 말바르급 호위함(약 3200톤급) 2척을 2024년 5월과 12월에 각각 인도했다.
당시 입찰에는 스페인과 독일 등 유럽 조선업체도 참여했지만 K-호위함이 최종 선택됐다. 성능 대비 높은 가격경쟁력이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유럽 조선소가 건조하는 호위함 가격이 보통 수천억 원에서 1조 원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K-호위함은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낮다는 평가다.
실제 계약 규모를 보면 2016년 체결된 1차 사업에서 HD현대중공업은 호세 리잘급 호위함 2척을 약 3억 3700만 달러(약 4000억 원대)에 수주했다. 이후 진행된 후속 사업에서는 미겔 말바르급 호위함 2척을 약 5억 5000만 달러 안팎(약 8000억 원대)에 계약했다.
K-호위함 사업은 건조를 넘어 MRO(유지·보수·정비)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2023년과 2024년 필리핀 해군의 호세 리잘함과 안토니오 루나함(2600톤급)에 대한 MRO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한국이 수출한 군함을 직접 정비한 첫 사례다.
군함은 통상 30~40년 이상 운용되는 만큼 건조 이후에도 정기 정비와 성능 개량, 부품 교체가 반복된다. MRO 사업이 장기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 분야로 꼽히는 이유다. 특히 군함을 건조한 업체가 정비까지 맡을 경우 운용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고 해당 국가 해군과 협력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리핀에 진출한 K-호위함이 향후 추가 군함 수주나 성능 개량 사업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것이란 전망이다.

K-호위함에 한국형 전투체계까지 장착
필리핀 해군이 도입한 K-호위함에는 국산 무기체계도 함께 탑재됐다. 어뢰 ‘청상어’(K-ASROC), 함대함미사일 ‘해성’ 등이 대표적이다. 청상어는 잠수함과 수상함 공격에 사용되고 해성은 원거리에서 적 함정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호세 리잘급과 미겔 말바르급 호위함 모두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한국형 전투체계(K-CMS)를 채택했다는 점이다. 전투체계는 센서와 레이더, 통신장비, 무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 작전 상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대응하도록 지원하는 핵심 장비다.
한국형 전투체계는 이미 우리 해군의 호위함과 구축함에서 운용되며 성능을 검증받았다. 필리핀 해군이 한국형 전투체계를 도입한 이유도 자국의 K-호위함을 통합적으로 운용·훈련·정비할 수 있어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형 전투체계는 센서, 레이더, 통신장치, 무기 제어, 전자전 장비 등을 각각 독립된 단위로 구성한 모듈화 설계를 적용했다. 향후 필리핀이 새로운 무기체계를 도입하더라도 비교적 쉽게 연동할 수 있어 한-필리핀 간 추가 방산 협력 가능성도 열려 있다.
중남미 넘어 중동까지
동남아시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K-호위함 사업은 중남미로도 확산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2024년 페루 국영 조선소(SIMA)와 총 4척의 페루 해군 호위함 공동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페루 국영 조선소에서 선체 건조가 진행 중이다.
페루 해군 호위함은 우리 해군이 운용 중인 2000~3000톤급 다목적 호위함 프로젝트인 ‘FFX 설계’를 기반으로 제작된다. 선체 건조가 완료되면 2026년부터 순차적으로 인도할 예정이다.
중동 시장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2월 열린 중동 최대 규모 국제방산전시회 ‘WDS 2026’에서 HD현대중공업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최적화된 6000톤급 수출용 호위함(HDF-6000)을 제안했다. 사우디 정부의 높은 현지 생산 비율 요구에 맞춰 단계적인 현지화 전략도 마련했다. 향후 수주가 성사될 경우 HD한국조선해양과 사우디 국영기업 아람코가 공동 투자해 설립한 사우디 IMI(International Maritime Industries) 조선소를 중심으로 현지 건조 비율을 점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백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