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가능성의 세계로부터 온 편지

악몽을 꾸었다. 끔찍한 장면에서 깼다. 호흡을 가다듬고 휴대폰 검색창을 열어 꿈 해몽을 찾아보았다. ‘뜻밖의 재물운, 명예상승, 또는 귀중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 길몽.’ 길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했다. 눈을 감고 최근 내가 잘못한 일은 없었는지,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일이 있었는지,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시 해몽을 읽어 보니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복권을 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해몽과 양자역학
인간의 무의식과 상징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심리학자 칼 융은 ‘꿈은 무의식이 보내는 편지’라고 했다. 그는 꿈을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거울로 봤다. 정녕 꿈은 무의식이 나에게 보내는 편지일까. 꿈 해석과 양자역학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을까. 20세기 초 같은 시대에 등장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꿈 해석과 양자역학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다. 하지만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흥미로운 접점이 있다. 융에게 꿈은 ‘의식되지 않은 마음의 가능성’이었다. 양자역학에서 파동함수는 ‘아직 하나로 결정되지 않은 여러 가능성의 상태’를 의미한다. 둘 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가능한 상태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와 심리학자 칼 융은 오랜 친구였다. 파울리는 이미 20대에 양자역학의 핵심 인물이 된 천재 물리학자였다. 그는 파울리 배타 원리를 발견해 194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전성기를 맞았던 20대 후반에 개인적으로는 큰 위기를 겪고 있었다. 어머니의 자살, 결혼 1년 만에 이혼, 그리고 이혼 뒤 이어진 극심한 정서적 혼란과 외로움. 그는 과음하기 일쑤였고 술집에서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외부에서 보기엔 세계 최고의 이론물리학자였지만 내면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자연의 질서는 누구보다 명확하게 이해했지만 정작 자기 삶은 질서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 무렵 파울리는 강렬하고 기이한 꿈을 반복해서 꿨다. 그 이후 그는 융의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파울리와 융은 직접 만나고 편지를 교환하면서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를 넘어 서로의 지적 동료가 되었다. 파울리는 수백 편의 꿈을 기록했고, 융은 그 가운데 약 400편의 꿈을 분석했다. 융은 파울리의 꿈에서 우주의 질서를 보았고, 파울리는 융의 심리학에서 물리학이 아직 설명하지 못한 내면의 질서를 보았다. 두 사람의 협력은 1952년 ‘자연의 해석과 정신’이라는 책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양자역학과 심리학을 결합한 책’을 넘어서 자연과 정신을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20대 후반 유학을 떠날 때 내가 가져간 책은 전공 책 몇 권, 님 웨일스의 ‘아리랑’, 그리고 해몽 책이었다. 해몽 책은 박사과정 때 머리맡에 항시 두고 자주 펼쳐봤다. 그때는 꿈을 자주 꿨다. 불안한 시기였다. 특히 실험 결과를 기다리거나 논문을 투고한 뒤 결과를 기다릴 때면 어김없이 꿈을 꿨다. 그러면 해몽 책을 뒤져보곤 했다. 신기하게도 해몽이 현실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졌다.
대학교수가 된 뒤 반복해서 꿨던 꿈 중 하나는 수학시험에서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하는 꿈이다. 꿈속에서 ‘백지를 내면 어떻게 하지’ 걱정한다. 해몽 책에 나온 이 꿈의 해몽은 ‘돈과 관련된 골치 아픈 일이 생겨 해결책을 찾지 못한 답답한 상태’다. 이런 꿈을 꾸면 하루 종일 마음이 답답하다. 또 하나는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학생이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꿈이다. 이 꿈 역시 난감하다. 포털 검색창에 뜬 꿈 해석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상실감이나 고립감’이다. 이런 꿈을 꾸고 나면 내 주위를 다시 둘러보게 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꿈은 금방 잊힌다.
나는 아직도 자주 꿈을 꾼다
꿈을 정반대로 해석하는 것은 전통적인 해몽 방식이다. 똥을 뒤집어쓰는 꿈은 현실에서 큰 재물이나 횡재를 만나는 꿈이고, 시험에 떨어지는 꿈은 현실에서 좋은 결과를 암시하는 꿈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어디서나 꿈을 반대로 해석하지는 않는다. 이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반몽(反夢)’이라는 개념의 해몽일 뿐이지 모든 꿈에 적용되는 법칙은 아니다.
융은 꿈은 길한지 흉한지를 알려주는 점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꿈을 현재의 무의식이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보았다. 같은 ‘죽음의 꿈’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새로운 출발을, 다른 사람에게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또 다른 사람에게는 오래된 삶의 방식을 내려놓으라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꿈의 내용을 기계적으로 길몽이나 흉몽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이 그 사람의 현재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융은 악몽도 의미가 있다고 봤다. 악몽은 의식이 외면하고 있는 문제를 강하게 알려주는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융은 악몽을 없애려 하기보다 왜 그런 꿈이 나타났는지를 이해하려고 했다.
왜 악몽을 꾸었을까, 하루 종일 생각하다 동네 사거리에 있는 형제슈퍼로 복권을 사러 갔다. 꿈 해몽의 마지막 문장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갑에 있던 현금으로 복권을 샀다. “교수님 당첨되면 꼭 알려주세요!” 슈퍼 주인은 이 집에서 작년에 2등 당첨자가 두 명이나 나왔다고 자랑했다.
복권을 주머니에 넣고 나오면서 ‘어젯밤의 꿈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양자의 파동함수처럼,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꿈의 세계를 명확히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다. 하지만 미래에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가 결합한다면 훨씬 정교한 꿈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복권 당첨을 기대해본다.

이기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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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