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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백마강 위로 황포돛배를 단 백마강유람선 한 척이 떠간다. 백화정 아래 낙화암(사진 왼쪽)엔 ‘잃어버린 왕국’ 백제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사진 부여군

충남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충남 부여는 1500년 전의 백제가 천도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사비시대’(538~660)의 숨결이 이어지는 곳이다. 한때 삼국의 한 축을 이루며 번성했지만 이제는 ‘잃어버린 왕국’으로 기억되는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에는 흥망성쇠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격년제로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여섯 차례 이름을 올린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중심축을 이룬다. 걷기 좋은 계절, 사비 백제의 실마리를 품은 부여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부소산 동쪽의 영일루는 조선시대 관아문이었던 집홍루를 1964년에 부소산성 안으로 이건 후 개명한 건축물이다. 가을이면 단풍이 이어져 부소산 산책에 운치를 더한다. 사진 부여군

관북리유적 지나 부소산으로
지난 2월 5일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부여 관북리유적 16차 발굴조사(2024~2025) 성과를 공개했다. 이날 관심을 모은 유물 중 하나는 목관악기인 ‘횡적(橫笛·가로피리)’, 즉 가로로 부는 피리였다. 몸체의 30% 정도가 소실된 채 발굴된 횡적과 함께 화제가 된 것은 이 횡적이 발견된 구덩이였다. 구덩이 내부의 유기물을 분석한 결과 인체 기생충란이 검출됐다. 이를 근거로 조당에 딸린 화장실 시설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학계에선 다양한 가설이 나오고 있다. 악기가 왜 그곳에 묻혀 있었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백제 역사 탐방은 이처럼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는 것과 같다. 특히 백제의 흥망이 교차한 마지막 도읍지 사비, 지금의 부여에서는 온전한 형태의 유물이나 유적보단 파편으로 발견된 유물과 유적이 훨씬 더 많다. 흩어진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사라진 왕국의 모습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낸다.
사비 백제의 실체를 짐작하게 하는 결정적인 조각은 관북리유적이다. 관북리유적 일대는 대형 전각 건물과 수로, 도로시설, 대규모 대지 등이 확인돼 사비 왕궁지로 추정하고 있는 곳이다. 유적지에 들어서면 너른 대지와 함께 구역별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남북으로 뻗은 도로 흔적과 석축을 따라 걷다 보면 사라진 왕궁의 규모와 형태를 짐작해볼 수 있다. 유적 뒤편으로는 부여의 진산 부소산(해발 106m)이 이어진다. 멀리서 보면 평지에 솟은 언덕처럼 보이지만 산길에 들어서 동쪽과 북쪽으로 향하면 경사가 점차 가팔라진다. 이내 발아래로 절벽이 펼쳐진다.
소나무 그늘이 드리운 부소산에는 부소산성을 비롯해 낙화암, 고란사 등 백제 유적과, 영일루, 사자루, 백화정 등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유적들이 자리 잡고 있다. 백제의 마지막 충신인 성충·흥수·계백을 기리는 ‘삼충사’, 곡식창고 터로 알려진 ‘군창지’도 남아 있다. 이 흔적들은 부소산이 평소에는 왕실의 후원 역할을 하다가 전쟁 때는 사비도성을 지키는 방어 거점 역할을 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상공에서 내려다본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관북리유적. 백제 왕궁지였음을 알리는 도로 흔적, 전각 건물지 등이 당시 웅장했던 규모를 가늠케 한다.

1500년 역사의 증인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림사지의 ‘정림사지오층석탑’. 사진 부여군

낙화암 전설, 고란사 약수
백화정 아래로는 푸른 백마강이 유유히 흐른다. 백마강은 부여 일대를 흐르는 금강의 또 다른 이름이다.
탐방객의 발걸음이 가장 많이 머무는 백화정 아래쪽엔 ‘낙화암’이 자리한다. 낙화암은 부소산 서쪽 절벽에 있는 바위다. 백제 의자왕 때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피해 달아난 궁녀들이 굴욕을 면치 못할 것을 알고 이곳에 와 치마를 뒤집어쓴 채 몸을 던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낙화암의 본래 이름은 타사암(墮死岩)이었으나 몸을 던진 백제 여인들을 꽃에 비유해 훗날 낙화암(落花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전망대에 서면 백마강의 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늘어진 소나무 가지 너머로 황포돛배 모양의 유람선이 강을 오가는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 같다. 서쪽 절벽 중간에는 조선시대 학자 우암 송시열이 썼다고 전해지는 낙화암 암각문도 남아 있다. ‘부여백마강유람선’을 타면 이 글씨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절벽에서 내려와 조금 더 걸으면 아담한 사찰 ‘고란사(皐蘭寺)’가 기다린다. 고려시대 백제의 후예들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고란사는 법당 뒤편의 약수와 주변에서 자라는 고란초로 유명하다.
‘한 잔 마시면 3년 젊어진다’는 전설의 약수 앞에서는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노년의 탐방객들은 “3년 젊어져 뭐하냐? 이왕 마실 거 10년은 젊어져 가야겠다”며 약수를 몇 잔씩 벌컥벌컥 들이켜기도 한다.
고란사 가까이에 유람선 선착장이 있어 코스 선택지에 넣어볼 만하다. 유람선은 고란사와 구드래 선착장을 오간다. 현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낙화암 절벽을 강 아래에서 감상할 수 있다. 백마강의 또 다른 명물인 수륙양용차는 현재 운영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이용 전 운영 여부부터 확인해야 한다.

백제금동대향로 사진 박근희 기자

정림사지오층석탑부터 백제금동대향로까지
관북리유적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정림사지’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역사의 증인처럼 서 있는 국보 ‘정림사지오층석탑’과 만날 시간이다. 정림사지는 백제 사비 도읍지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사찰 터다. 백제의 미학을 대표하는 정림사지오층석탑은 조용히 기도하며 ‘탑멍’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1층 탑신엔 사비성을 침략했던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승전기 공문이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정림사지 발굴 유물은 바로 옆 ‘정림사지박물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백제의 미학과 만나는 여행의 끝은 국보 백제금동대향로가 찍는다. ‘국립부여박물관’ 전용 전시실에 전시된 백제금동대향로는 용받침대에서 시작해 턱 밑에 여의주를 품은 봉황까지, 신비롭고 고아한 자태의 향로 하나에 사라져버린 백제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금동관음보살입상을 거쳐 미디어아트까지 보고 박물관 밖으로 나서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득한 시간을 건너온 듯하다. 해 질 녘 다시 정림사지오층석탑과 재회한다.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탑신에 어느 정복자의 글자가 새삼 선명하다.

박근희 기자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주소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문의 (041)830-2880

야경 명소로 사랑받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最古) 인공정원인 부여 ‘궁남지’. 사진 부여군

가까이 있는 ‘2025~2026 한국관광 100선’
서동공원과 궁남지
충남 부여 ‘서동공원과 궁남지’도 한국관광 100선 중 하나다. 관북리유적에선 궁남지와 서동공원이 차로 5분 거리, 백제 무왕이 궁궐 남쪽에 만들어 궁남지라고 불린다. 백제시대의 연못으로 백제의 조경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자 우리나라 최고(最古) 인공정원이다. ‘삼국사기’에 ‘백제 무왕 35년(634) 궁의 남쪽에 못을 파 20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한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연못 주변엔 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우물과 주춧돌이 남아 있다. 사계절 아름다운 관광지로 연꽃이 만발하는 7월에는 ‘서동연꽃축제’가, 10~11월에는 ‘굿뜨래 국화전시회’ 등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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