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잠재성장률 방향을 바꿔라! 821조 예산안의 핵심은 ‘쓰임’이다

구미국가산업단지 일대. 삼성전자와 삼성SDS는 경북 구미에 휴머노이드 양산체계와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로봇 자동화 산업의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사진 뉴시스

2027년 예산안은 총수입 880조 8000억 원, 총지출 820조 9000억 원으로 편성됐다. 총지출은 전년보다 12.8%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외형만 보면 상당히 강한 확장재정이다. 그러나 올해 예산안을 이해하려면 지출 증가율만 볼 것이 아니라 세입의 급증, 미래대응기금 신설, 대규모 지출구조조정,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한 투자 확대를 함께 봐야 한다.
가장 큰 변화는 세입이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법인세와 소득세 증가 등에 힘입어 국세수입은 584조 4000억 원으로 전망됐다. 전년 본예산보다 194조 2000억 원 증가한 규모다. 총수입 역시 880조 8000억 원으로 30.4% 늘어난다. 세입이 크게 증가하면서 총지출을 93조 원 늘리고도 재정수지는 오히려 개선된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1%로 낮아지고 국가채무 비율도 48.3%로 전망된다. 지출을 늘렸지만 재정건전성은 더 좋아졌다.

162조 원 미래대응기금의 의미
이번 예산안의 특징은 늘어난 세수를 단순히 지출 확대에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최근 10년간의 내국세 증가 추세를 웃도는 추가 세수 162조 원을 미래대응기금에 적립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45조 4000억 원은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네 분야에 사용하고 상당 부분은 여유자금으로 남겨 세수 변동이나 향후 재정수요에 대응하도록 했다.
미래대응기금은 재정운용 측면에서 의미 있는 변화다. 반도체처럼 경기변동이 큰 산업에서 발생하는 세수 증가를 모두 상시지출로 전환하면 업황이 꺾였을 때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일시적으로 증가한 세입 일부는 미래를 위한 투자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적립할 필요가 있다. 미래대응기금은 재정안정화 기능과 미래 투자 기능을 함께 수행하려는 시도다.
지출의 방향도 분명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공지능(AI)과 미래산업에 대한 투자다. ‘3대 메가프로젝트+AI’ 관련 투자는 10조 8000억 원에서 21조 3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반도체 생산거점과 원천기술을 지원하고 피지컬 AI와 AI 데이터센터(AIDC)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전력·용수·산업단지 등 기반시설에도 재정을 투입한다. 프런티어급 AI 모델 개발을 위해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과 데이터·인재를 지원하고 모두의 AI도 추진한다.
미래 성장엔진에 대한 투자도 51조 2000억 원에서 62조 8000억 원으로 확대된다. 핵융합, SMR,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등 국가전략기술을 집중 지원하고 재생에너지와 창업, 문화산업 등에 대한 투자도 확대한다. 반도체 호황을 단순히 세수 증가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산업을 준비하는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방향이다.
청년에 대한 투자도 크게 늘어난다. 청년 관련 예산은 28조 2000억 원에서 43조 3000억 원으로 확대된다.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를 확대하고 대학생 6만 명에게 인턴학기를 통해 첫 취업경력을 제공한다. 청년미래적금은 소득요건을 폐지하고, 역세권을 중심으로 보편형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 혼인·출산·양육 지원도 하나의 패키지로 묶었다. 청년정책을 단순한 복지지출이 아니라 인적자본과 자산형성에 대한 투자로 보려는 접근이다.
지방에 대한 지원 방식에도 변화가 있다. 지방우대 원칙을 적용하는 사업을 61개로 확대하고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편성하는 포괄보조도 늘린다. 지방 국립대 등록금 전액 지원, 비수도권 직업훈련 지원 확대 등도 포함됐다. 지방소멸 문제를 이전지출만으로 대응하기보다 교육과 산업, 일자리, 생활 인프라를 함께 강화하겠다는 방향이다.

총액보다 중요한 것은 배분
그렇다고 지출을 일방적으로 늘린 것은 아니다. 정부는 재량지출 38조 6000억 원을 구조조정하고 2100여 개 사업을 폐지했다. 교육교부금의 내국세 연동구조도 55년 만에 개편했다. 기존 사업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사업을 계속 추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다. 총지출이 증가하더라도 생산성이 낮은 지출을 줄여 성장과 미래대응 분야로 재원을 옮긴다면 재정의 질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2027년 예산안의 핵심은 820조 9000억 원이라는 총액보다 늘어난 세수를 어디에 배분했는가에 있다. 반도체 호황이라는 현재의 성과를 AI, 미래산업, 청년, 인재, 지방에 대한 투자로 연결하고 일부는 미래대응기금에 남겨 두겠다는 것이 이번 예산안의 기본 구조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경제가 회복되고 세수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왜 다시 12.8%나 지출을 늘리는 확장재정이 필요한가. 답은 경기부양보다는 성장잠재력에 있다. 정부가 제시한 문제의식도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생산성 정체로 구조적 저성장이 고착될 가능성이다. 올해 상반기 실질GDP가 3.8% 성장했다고 해서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성장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지금의 경기회복을 잠재성장률의 반등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반도체 경기가 정상화된 뒤 다시 저성장 문제와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잠재성장률의 방향을 돌려야
지금 필요한 재정은 단순히 소비를 늘려 단기 총수요를 확대하는 재정과는 달라야 한다. AI와 연구개발(R&D), 전력망과 용수, 산업단지, 인재양성처럼 기업의 투자와 생산성을 높이는 분야에 집중돼야 한다. 이런 투자는 수요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공급 능력을 키운다.
이 때문에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확장재정은 긴축적 통화정책과 반드시 상충하는 것도 아니다. 통화정책이 금리 등을 통해 단기적인 물가와 금융 안정을 관리한다면 재정은 생산성 향상과 공급 능력 확대라는 중장기 과제를 담당할 수 있다. 통화정책은 단기 안정, 재정정책은 성장잠재력 반등이라는 역할 분담이 가능하다. 여기에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고통받는 중산층·서민을 위한 타깃형 재정정책도 필요하다.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한 해 높은 성장률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번 경기회복을 계기로 잠재성장률의 방향 자체를 돌려놓는 것이다. 2027년의 확장재정은 바로 그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얼마나 많이 썼느냐보다 그 재정이 몇 년 뒤 우리 경제가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높은 생산성을 갖도록 만들었느냐가 진짜 기준이다.

우석진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