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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한 어린이가 승마를 체험하고 있다. 말보르승마장은 기승자의 연령과 체격, 심리상태를 고려해 적합한 말을 배정한다. 사진 C영상미디어

치유농업 현장을 가다
“와, 말 진짜 크다!”
경남 밀양의 한 농촌 마을. 초등학생을 태운 버스가 승마장 앞에 멈춰서자 조용하던 마을에 금세 웃음소리가 퍼졌다. 아이들은 승마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신기한 듯 말을 바라보고 탄성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긴장한 표정으로 말고삐를 움켜쥐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자 달라졌다. 말 등에 올라 천천히 호흡을 맞추고 조심스레 목을 쓰다듬었다. 어느새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이곳은 경남 밀양시에 있는 말보르승마장.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승마체험장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곳은 말과의 교감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치유농업 프로그램이 중심에 있다.
치유농업은 농업과 농촌 자원을 활용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증진하는 활동이다. 농촌진흥청이 육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농촌 치유 서비스 가운데 하나다. 말보르승마장은 올해 1월 밀양지역 최초로 농진청의 ‘우수 치유농업시설 인증’을 획득했다. 프로그램의 전문성과 효과, 시설 안전성, 운영체계, 전문 인력 등을 종합 평가해 부여하는 인증이다.

참가자들이 승마 체험에 앞서 말의 특성과 안전수칙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말보르승마장의 비기승 프로그램인 ‘말에게 먹이주기’는 말과 교감하며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대표 체험 프로그램이다. 사진 C영상미디어


말과 교감 후 스트레스 완화 뚜렷
치유승마는 생각보다 천천히 시작된다. 승마장 한쪽 마방에는 말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다.
이름과 품종, 생년월일은 물론 성격과 특징 등을 소개한 안내판도 비치돼 있다. 참가자는 말의 특성을 미리 이해해야 말과 교감을 시작할 수 있다.
“얘는 사람을 좋아해요.”
지도사의 설명을 들으며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말에게 다가가 목을 쓰다듬어 보고 먹이를 주기도 한다. 말과 친해지는 과정 자체가 프로그램의 일부다.
치유농업시설은 운영 형태에 따라 ‘농장형’, ‘마을형’, ‘기관형’으로 구분된다. 농장형은 개별 농장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마을형은 지역공동체와 연계해 다양한 치유 활동을 한다. 기관형은 보건의료기관, 사회복지기관, 재활기관 등 전문기관과 협력해 체계적인 치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말보르승마장은 말이라는 동물 자원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농장형 치유농업시설’이다.
이곳의 치유승마 프로그램은 기승(말 타기)과 비기승(말과의 교감 활동)으로 운영된다. 말을 타는 것뿐 아니라 먹이주기, 그루밍, 산책시키기 등 다양한 교감 활동이 포함된다. 참가자의 연령과 신체조건, 심리상태를 고려해 적합한 말을 배정하고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사전 상담을 거쳐 전문 승마지도사가 맞춤 설계한다.
보통 8회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단순히 승마 기술을 익히는 게 목적이 아니다. 정서 안정과 스트레스 완화, 자신감 향상, 사회성 증진 등 개인별 목표에 맞춰 다양한 체험으로 구성된다. 스트레스지수 측정기가 있어 프로그램 체험 전후 스트레스 변화를 측정할 수 있고 측정 결과에 따라 프로그램 내용도 조정된다.
실제 효과도 확인되고 있다. 말보르승마장이 운영한 ‘말과 나’ 프로그램(8회기)에 참여한 초등학생 11명을 분석한 결과 ‘자아존중감과 사회적 유능성 평균점수’가 참여 전 평균 3.42점에서 참여 후 평균 3.53점으로 상승했다. 스트레스지수(절댓값 기준)는 31.57에서 27.14로 감소했다. 만족도 조사에서는 5점 만점에 평균 4.5점(90%)을 기록했다.

말보르승마장에서는 승마 체험 전후에 지역에서 재배한 밀을 활용한 피자 만들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한 어린이가 승마 체험 후 스트레스지수를 측정하고 있다. 승마 체험 후에는 스트레스가 감소하고 특히 자아존중감과 성취감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C영상미디어

지역산업 살리는 마중물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 승마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먹이를 주고, 털을 손질하고, 고삐를 잡고 직접 말을 이끄는 비기승 활동이 더 인기가 높다. 특히 초등학생과 미취학 아동은 자신보다 훨씬 큰 동물을 돌보고 통제하는 경험이 성취감과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반면 중학생 이상 청소년은 승마 활동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말 위에서 균형을 잡고 움직임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도전의식을 충족하고 학업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어서다.
치유승마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말의 건강 관리도 중요하다. 권은출 말보르승마장 대표는 “정기적인 건강 관리와 충분한 휴식을 통해 말의 컨디션을 관리하고 있다”며 “현재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말 입장에서도 과도한 노동이 아니라 일상적인 운동 수준에 해당해 오히려 말의 건강 유지와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치유농업은 이제 건강 증진을 넘어 지역경제를 살리는 새로운 콘텐츠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날 승마장을 찾은 한 가족은 “프로그램을 마친 뒤 가족과 함께 밀양 시내 식당에도 들를 계획”이라며 “아이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경험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찾는 방문객도 꾸준히 늘고 있다. 체험객이 늘어나면 지역 식당과 카페, 숙박시설 이용도 함께 증가한다. 치유농업이 지역관광과 농촌경제 활성화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정부 역시 치유농업을 농촌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농진청은 치유농업시설 인증제도를 운영하며 프로그램 품질을 높이고 각 지역에서는 농촌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농진청이 올해 4월 전국 치유농장 91곳과 농가맛집 75곳 이용객 2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만족도는 97.6%에 달했다. 응답자들은 치유농업시설 운영자의 친절한 서비스와 전문적인 프로그램 운영, 아름다운 자연경관, 쾌적한 시설 환경을 주요 만족 요인으로 꼽았다.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아이들도 고삐를 잡고 말과 호흡하며 자신감을 얻은 듯했다. 치유와 관광, 농업과 지역경제를 연결하는 새로운 모델. 밀양의 승마장은 치유농업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백재호 기자

방학 맞은 자녀와 특별한 휴가
치유농장·농가맛집·교육농장 찾아 ‘녹색’ 휴식을!
올여름 방학을 맞은 자녀와 함께 특별한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농촌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농촌진흥청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는 전국의 치유농장과 농가맛집, 농촌교육농장을 소개했다.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농촌 체험을 즐기며 지역의 맛까지 경험할 수 있는 곳들이다.
치유농장은 농업·농촌 자원을 활용해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이다. 원예활동과 동물 교감, 농업·농촌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신체적·정서적·심리적·사회적 건강 증진을 돕는 이른바 ‘녹색 처방전’을 제공한다. 2017년부터 2025년까지 도 농업기술원과 시·군 농업기술센터의 치유농업 관련 사업과 기술 지원을 받은 농장과 마을은 전국 670곳에 이른다.
지역의 맛을 즐기고 싶다면 농가맛집을 찾아보자. 농가맛집은 지역 농산물 소비를 촉진하고 향토 음식을 관광 자원으로 육성하기 위해 운영되는 곳이다. 7월 현재 전국 66곳이 운영되고 있다.
여름방학을 맞은 가족 여행지로는 농촌교육농장을 추천할 만하다. 초·중등학교 교과과정과 연계한 농업·농촌 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일회성 체험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올해 기준 품질인증 유효농장은 전국 255곳이다.
농가맛집과 농촌교육농장 정보는 농업기술포털 ‘농사로(nongsaro.go.kr)’, 치유농장 정보는 ‘치유농업 ON(agrohealing.go.kr)’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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