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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게티이미지뱅크

정신건강에 가장 해로운 것은 무의미다. 인간은 의미를 지향한다. 의미를 추구하려는 욕구가 좌절되면 고통에 빠진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이런 상태를 두고 ‘실존적 신경증’이라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든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목적의식이 충만한 이들은 우울증과 불안증에 덜 걸린다. 자살 위험도 낮다.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정신적으로 의미를 강하게 느끼며 사는 사람은 신체적으로도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이다. 자기 삶에서 목적의식이 충만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에 비해 심혈관계질환 발생 위험이 약 20% 낮다. 목적의식은 사망 위험도 20% 정도 낮춰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이 주제와 관련된 논문 열 편에서 피험자 13만 6265명을 분석해 얻은 결과다.
코로나19로 세상이 순식간에 변했다. 삶이 삐걱거리며 멈출 때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 나는 왜 살아야 하나? 도대체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이런 질문들이 집요하게 따라붙는 의미의 위기 상태를 톨스토이는 ‘삶의 마비’라고 했다. 의미가 있어야 살 수 있는 인간에게 의미가 사라졌다는 느낌은 공포와 같다.
우울증에 걸린 청년들과 대화하다 보면 “선생님이 아무리 설득해도 결국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고 죽고 나면 아무것도 안 남으니 열심히 살아봐야 소용없는 거잖아요!”라는 항변을 항상 듣는다. 이건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전에 마치 의미를 다 찾은 듯이 그 이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죽으면 무의미해지는 게 아니라 죽음조차 뛰어넘을 수 있는 의미를 아직 찾지 못한 것일 뿐이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연구팀이 피험자들에게 지금 현재와 지금 이 공간을 벗어나 과거와 미래 그리고 다른 장소를 상상하며 글을 쓰게 했더니 우리 뇌의 내측 측두엽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영역은 자아성찰, 자전적 기억, 사회성, 창의성과 관련된 뇌회로를 이룬다.
어떤 사건에 대해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그것을 더 높고 긴 시각에서 바라보며 추상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의미 있다’라는 자각이 부상한다. 의미는 상상력을 동원해야 찾을 수 있다. 문제에만 집착하면 못 찾는다. 현재의 고통이 과거와 어떻게 연결되며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는 어떻게 전개될지 다채롭게 상상해야 ‘그래, 지금 이 순간의 고통 속에도 의미가 숨겨져 있었어!’라고 깨달을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금세 답이 얻어질 리도 없다.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삶이란 이런 거야!”라고 말할 수 없다. 유튜브 속 멘토(지도자)가 인생의 의미를 대신 찾아줄 리 없다. 어떻게 해야 내 삶에 의미라는 햇살이 비추는지는 나만 안다. 길을 잃을 줄 알면서도 길을 떠나 목적지에 도달하리라는 확신이 없어도 자기 길을 걸어야 찾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의 의미다.

김병수 의사_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몇 권의 책을 쓴 저자.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교대역 작은 의원에서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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