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2월 합작회사를 만든 하이브와 유니버설뮤직 관계자들이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하이브 유튜브K-팝의 세계화 국면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올 새로운 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얼마전 약속이나 한 듯 K-팝 산업을 대표하는 세 회사가 세 가지 다른, 하지만 본질적으로 유사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월 하이브는 미국 최대 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그룹(UMG) 산하의 게펜(Geffen)레코드와 함께 합작 레이블(음반회사)을 설립, 새로운 K-팝 그룹을 북미에서 키워내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현지에서 리얼리티 경연을 열어 인재를 선발한 뒤 새로운 합작 레이블이 이들의 음악을 제작하고 홍보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발표가 있고 세 달 뒤 CJ ENM과 SM엔터테인먼트도 이와 유사한 방식의 계획을 각각 발표했다. CJ ENM은 미국의 유명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서비스 업체인 HBO맥스(Max)와 함께 남미 K-팝 밴드를 제작하게 되며 SM엔터테인먼트는 MGM텔레비전과 합작해 NCT의 미국 유닛(소그룹)인 NCT 할리우드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세부사항은 조금씩 달라도 궁극적으로 미주에서 활동하는 ‘현지용’ 그룹이라는 점에선 일치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K-팝을 새로운 물결로 활용하려는 움직임
K-팝 산업에서 현지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예정된 운명이나 정해진 미래의 가까운 전개라 말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K-팝이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릴 때 그 궁극적 목표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시장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인종이나 언어와 같은 너무도 명확한 장벽도 문제지만 팝의 종주국에 K-팝이라는 일종의 ‘변종’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K-팝의 국제적 성공은 아시아권 시장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보란 듯이 바뀌고 있다. 단순히 K-팝이 북미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정도의 발판이 마련된 수준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그들 시장의 이익을 위해 K-팝을 새로운 물결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지금까지 K-팝의 세계화는 대략 세 단계의 전략으로 진행됐다. 첫 번째가 우리나라 아티스트를 훈련시켜 외국 시장에 맞는 아티스트로 키워내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는 교포나 외국인 멤버를 일종의 매개체로 활용해 해외 시장과 친밀도를 높이는 방식이었다. 모두 그 나름의 성과는 있었지만 한계와 위험요소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3단계, 그러니까 오로지 현지(지역) 멤버들로만 이뤄진 그룹을 만든다는 방식이야말로 K-팝 산업이 꿈꾸는 궁극적인 세계화를 가능케 할 모델로 여겨진 것이다. 이미 이 실험은 일본과 중국을 대상으로 했는데 JYP엔터테인먼트의 일본 그룹 ‘니쥬’, SM엔터테인먼트의 중국 그룹 ‘WayV’가 그 예다. 그렇다면 이 공식이 미국이나 남미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을까? 아직 그 결과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음악 산업 내부에서는 가능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고 그 시기가 지금이라는 것에 업계 리더들의 생각이 일치하는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세 개의 유사한 프로젝트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것도 이를 방증한다.
미국 시장의 틴팝 산업 앞지른 K-팝
미국 음악 산업계의 입장에서 이 실험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탄소년단(BTS)의 성공이다. 최근 몇 년째 자국 아티스트들을 능가하는 BTS의 인기몰이는 ‘제2의 BTS’를 만들겠다는 미국 업계에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가 됐다. 특히 돈을 움켜쥐고 있는 보수적인 유대계 자본가들 입장에서 빌보드 1위, 그래미 후보지명 등은 K-팝의 인기와 잠재력을 비로소 받아들이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을 것이다. BTS를 키워낸 빅히트엔터테인먼트(하이브)가 세계 최고의 음악 그룹인 UMG와 가장 선제적으로 계약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중요한 것은 미국 시장이 개별적인 K-팝 아이돌뿐만 아닌 그것을 만드는 기술과 시스템이 가진 상업적 폭발력에 관심과 신뢰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령 CJ ENM이 HBO맥스와 준비 중인 기획은 남미의 재능인들로 이뤄진 ‘프로듀스101’과 다름없다. SM엔터테인먼트가 준비하는 NCT 할리우드 프로젝트 역시 ‘문화기술’이라고 하는 K-팝 특유의 선발 및 육성 시스템에 대한 미국 측의 신뢰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팬들의 취향을 읽고 그들과 소통하는 능력에서 이미 K-팝이 미국 시장의 틴팝 산업을 앞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세계 시장을 뒤흔든 틴팝, 즉 10대를 위한 아이돌 음악 산업은 우리나라가 독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미 각종 누리소통망(SNS) 지수에서 K-팝의 압도적인 팬덤(열성 팬) 구축 능력은 팝의 본고장인 미국을 너끈히 추월하는 상황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수십 년을 앞선 기술과 기반을 가진 미국 시장이 적어도 K-팝이라는 하위 범주에 한해선 K-팝의 기술적 우위를 인정하고 우리나라와 협업을 통해 이 산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것이다.
김영대 음악평론가이자 문화연구자_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K-팝에 대한 연구로 음악학(Ethnomusicology)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