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첫 책을 내던 때가 떠오른다. 2007년 가을인데, 작가가 된 뒤 시간과 작품이 차곡차곡 쌓인 다음 책을 낸 게 아니라 등단과 동시에 발간이 되어 얼떨떨했다. 책의 표지와 사진, 소개, 인쇄된 활자 모두가 나의 것 같지 않고 낯설었다. 내용과 상관없이 내가 쓴, 내 이름이 새겨진 책이 서점의 책장에 꽂혀 있고 그걸 누군가 돈을 지불하고 산다는 것이 황홀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첫 책은 너무나 내 것이면서도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 뒤로 한 권 두 권 더 낸 소설책이 어느새 여덟 권이 되었다. 장편소설만 있다가 첫 소설집이 생겼을 때 뿌듯했고, 마음에 쏙 드는 표지를 만났을 때 흐뭇했다. 책이 쌓일수록 특별함이나 감격보다는 생활의 나이테 같은 것을 만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그렇지만 나도 책이 나오면 서점에 가서 신간 코너에 꽂혀 있는 책을 보고 오는 편이다. 혼자 가방을 메고 첫 등교 하는 아이를 배웅하듯, 다른 책들 사이에 놓인 책을 보며 가만히 행운을 빌어주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징크스나 의식이라기보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책에 환영 인사를 보내는 것이자, 앞으로 그 책을 위해 내가 할 것이 없다는 작별 인사를 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고 나면 책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새겨지는 나이테 같은 것이 되었다.
3월 초에는 아홉 번째 책이자 첫 에세이집이 발간되었다. 소설가나 시인들도 에세이를 많이 쓰고 묶어서 내지만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어려워하는 편이라 꽤 망설였다. 오래 준비하고 쓴 글인데도 임신, 출산에 관한 에세이라서 마음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나중에 아이가 읽을 거라는 생각에 걱정이 되기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아이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결국 쓴 것은 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3월 발간을 결정하고 밀어붙였다. 여러 권의 책이 있는데도 에세이는 처음이라 마음속에서 ‘첫’이 주는 묘한 설렘과 기대감이 일렁였다.
기다리고 기대하던 마음과 달리 첫 에세이는 발간과 동시에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책을 낸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독자들과 만나는 이벤트도 못 하고 큰 이슈를 다루는 책들에 묻혀 조용히 신간 코너에서 물러났다. 무엇보다 책이 나온 뒤 서점에 가지 못해서 다른 책들 사이에 있는 모습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렇게 에세이 <한 몸의 시간>은 환영 인사와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한 유일한 책이 되었다.
내 책장에 꽂힌 민트색의 책을 보며 이 봄에 처음의 설렘과 찬란함을 꿈꾸었을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결혼식과 첫 해외여행을 앞두었던 사람들, 가게 개업을 추진하고 봄에 선보일 새 상품을 준비하며 메뉴를 개발해왔을 사람들. 그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많은 일을 준비했다가 미루고 취소하고, 열었다가 주저앉았을 사람들에 대해.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눈처럼 날리는 걸 보면서 그들의 실망과 한숨과 눈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 준비하고 마음을 쓰고 노력하던 것이 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알 수도 없다. 다만 우리는 그런 순간에만 다른 사람을 돌아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돌아봄 뒤에야 비로소 내가 하는 일이 혼자서 할 수 없고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러 권의 책을 내는 동안에도 이것은 내가 쓴 것이라고, 좀 더 잘 쓸걸 그랬다고, 이 부분은 이렇게 고칠걸 하며 책과 나에게만 집중하던 시기가 있었다. 책이란 많은 사람이 함께 읽어주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깨달음 역시 머리로 아는 것에 가까웠다. 첫 에세이가 내 책장에만 꽂힌 책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에야 나는 책이라는 물성의 존재가 세상에 나오는 과정에 대해, 책으로서 독자와 만나고 읽히고 감정을 만들어내는 연결에 대해 좀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서유미_ 소설가. 2007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두 권의 소설집과 여섯 권의 장편소설을 냈다.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