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945년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이 만든 핵먼지구름│위키미디어 코먼스
“미국의 페르미와 실라르드가 진행한 지난 넉 달 동안의 연구를 통해, 질량이 큰 우라늄의 핵 연쇄반응은 매우 큰 힘과 라듐 비슷한 많은 양의 새로운 원소들을 발생시킬 수 있도록 조절 가능하다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 이 새로운 현상은 폭탄 제조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질 새로운 형태의 폭탄은 가장 낮춰 생각해도 극도로 강력한 폭탄이 될 것입니다.”
1939년 8월 2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당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편지에서 미국이 독일보다 앞서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한다고 다그쳤습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이 편지 때문에 후회하며 살았지요. 자신이 편지를 보내는 바람에 원자폭탄이 개발돼 수많은 사람이 죽고, 세계 냉전체제가 공고히 됐다고 안타까워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입니다. 자신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본능이지요. 아인슈타인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의 편지는 실제 원자폭탄의 개발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가 보낸 편지를 계기로 ‘우라늄위원회’가 구성되기는 했지만 딱 두 번 모였을 뿐입니다. 또 페르미와 실라르드가 실험 재료를 구입하도록 6000달러를 제공한 것이 전부지요.
핵분열은 1939년 초에 알려졌습니다. 당연히 독일, 프랑스, 영국, 소련, 일본 등 당시 열강의 과학자들은 핵분열을 이용해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굳이 아인슈타인의 편지가 아니더라도 미국 정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이 없었다고 해도 미국 역시 원자폭탄을 개발했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오해와 과대평가
원자폭탄은 끔찍한 무기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어떤 과학자도 그런 무기를 개발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문제는 독일이었습니다. 나치 독일이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한다면 온 세계가 나치 치하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과학자들은 미국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라고 다그친 것입 니다.
처음엔 영국을 생각했습니다. 유럽의 과학자들은 영국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영국은 마우드(MAUD)위원회를 구성했지요. 1941년 7월 마우드위원회는 10kg의 우라늄-235가 있으면 2년 안에 2kg짜리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독일보다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영국은 자원과 자금이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영국은 독일의 폭격 사정권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독일 폭격기가 날아갈 수 없는 곳, 바로 미국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게 안전했습니다.
1941년 8월 영국의 마우드위원회는 모든 자료를 미국으로 넘깁니다. 이때 스파이들이 같은 자료를 소련에도 넘깁니다. 미국과 소련은 각각 원자폭탄 개발에 뛰어들게 된 셈이죠. 그리고 석 달 후인 1941년 11월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합니다. 그러자 속도가 빨라집니다. 이후 단 열흘 만에 미국 정부는 본격적으로 원자폭탄을 개발합니다. 소위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죠.
예나 지금이나 원자폭탄 개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라늄 농축시설과 플루토늄 재처리 설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원자폭탄을 만들려면 우라늄-235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연에 있는 우라늄 가운데 우라늄-235는 단 0.7%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9.3%는 우라늄-238입니다. 우라늄-238과 우라늄-235를 분리하고 다시 우라늄-235를 농축하는 게 원자폭탄 개발의 핵심이죠. 올해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영변의 핵 단지가 진정성 있게 완전히 폐기된다면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의 입구가 되리라 판단”한다고 말한 것도 바로 영변에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미국은 1943년 2월부터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우라늄 농축 단지를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듀폰과 코닥, 유니언 카바이드사가 참여합니다. 오크리지는 지금도 인구가 3만 명이 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농가 몇 가구가 있는 촌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미국 전기의 7분의 1을 사용했습니다. 뉴욕시보다도 전기를 20% 더 사용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때 건설된 테네시의 수력발전소가 없었다면 원자폭탄 개발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미국은 농축 우라늄-235를 이용한 원자폭탄 외에 플루토늄을 이용한 원자폭탄도 개발했습니다. 우라늄의 99.3%를 차지하는 우라늄-238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플루토늄이 생깁니다. 이것을 이용한 것이지요. 준비된 우라늄-235와 플루토늄을 이용해서 폭탄을 만드는 작업은 뉴멕시코주의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진행됐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한겨레
호리병을 함부로 문지르지 마라
지금부터 딱 74년 전의 일입니다.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45초. 미국 과학자들은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 사막에서 트리니티 실험을 했습니다. 최초의 원자폭탄을 터뜨린 것입니다. 현장에서 9km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과학자들과 정부 고위 인사들은 12km 상공까지 피어오르는 거대한 버섯구름을 보고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을 자축했습니다.
핵실험이 성공했으니 실전용 폭탄을 만들었습니다. 리틀 보이(꼬마)와 팻 맨(뚱보)이 그것입니다. 두 원자폭탄을 어디에 떨어뜨려야 할까요? 원래 목표이던 독일은 이미 항복한 상태였습니다.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하고 대부분의 독일군은 5월 초에 항복했습니다. 6월 5일 연합군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이겼다고 선언합니다. 남은 적은 일본뿐이었습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바랐습니다. 원자폭탄이 가져올 대량 인명 살상에 대한 고려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가 투하됐습니다. 그리고 8월 9일 나가사키에 팻 맨이 투하됐습니다. 단 두 발의 폭탄이 2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그리고 두 도시를 초토화했습니다.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은 지난 500년간 가장 결정적인 순간일 것입니다. 이날 과학자들은 깨달았습니다. 호리병을 빠져나온 지니는 결코 스스로 호리병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호리병은 함부로 문지르는 게 아닙니다.
이정모_ 현재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대학교수를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다. <250만 분의 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내 방에서 콩나물 농사짓기> 등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과학 도서와 에세이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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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