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6월 13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 옥류천 청의정에서 모내기 행사가 열려 참가자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다.│한겨레
요즘처럼 더운 날 할 수 있는 농사는 몇 가지 안 됩니다. 너무 더워서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거든요. 그래도 한여름이 농사철인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벼농사 때문입니다.
한여름에도 벼농사가 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벼가 자라는 곳이 바로 논이거든요. 논은 물에 잠겨 있잖아요. 그러니까 벼는 마치 수생생물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덕분에 뜨거운 한여름에도 꿋꿋하게 잘 자라는 것이지요.
생명의 역사는 끊임없는 멸종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멸종하면 그 자리에 누군가 등장해서 생태계를 유지하지요. 어떤 생명이 멸종할 때 그 원인을 생명 안에서 찾기는 어렵습니다. 멸종의 가장 큰 원인은 기후입니다. 기후가 변하는 걸 생명이 어쩌겠습니까?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는 결국 패망의 역사입니다. 어떤 나라가 망하면 다른 나라가 그 자리에 등장하지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주로 정치와 경제가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런데 그 배후에는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원인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기후입니다. 중국 대륙의 기후는 13~14세기에 크게 변합니다. 당시는 소빙하기였습니다. 13세기는 추웠고 14세기는 따뜻했습니다.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이 있다면 누가 유리할까요? 추운 시대에는 유목민족이 유리하고 따뜻한 시대에는 농경민족이 유리합니다. 그래서 13세기 중국에는 북방민족 중심의 원나라가 있었고 14세기에는 한족의 명나라가 있었던 것이지요. 명나라가 다시 청나라로 넘어가는 배경에는 극심한 가뭄이 있었습니다.
추울 땐 유목, 따뜻할 땐 농경민족 유리
중국 고사에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는 말입니다. 춘추시대(기원전 8~3세기)에 오나라와 월나라는 원수지간이었습니다. 두 나라의 경계에서 같은 배에 두 나라 사람이 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오월동주라는 말은 필요 없습니다.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배 안에서 서로 으르렁대며 다투고 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고 거센 파도가 몰아쳤습니다. 싸움은 뒤로 미뤄야겠죠? 두 나라 사람은 힘을 합쳐서 돛대를 펼치고 파도와 맞서 싸웠습니다. 덕분에 거센 파도를 이겨낼 수 있었죠.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어져야 오월동주라는 사자성어가 완성됩니다.
그런데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들은 왜 사이가 안 좋았을까요? 바로 기후 때문입니다. 중국은 큰 나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중국에서 발현한 큰 문명도 하나가 아니죠. 우리가 잘 아는 중국 문명은 ‘황허문명’입니다. 황허(黃河)강 중하류에서 발현한 문명으로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황허문명에서는 콩을 처음으로 경작했습니다. 보리도 중요했죠. 그러니까 황허문명은 밭농사를 바탕으로 하는 문명입니다.
중국 북부에 황허강이 흐른다면 남부에는 창장(長江)강이 흐릅니다. 창장강 주변에서도 황허문명 못지않은 문명이 발생합니다. ‘장강문명’이 그것입니다. 장강문명은 논농사를 바탕으로 하는 문명입니다.
북쪽의 밭농사 문명과 남쪽의 논농사 문명은 자기 방식으로 역사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런데 기원전 5세기 무렵 갑자기 중국 대륙의 기후가 변했습니다. 추워졌습니다. 북부는 추위에 특히 취약했습니다. 밭농사를 짓던 황허문명인들이 남하해야 했죠. 황허문명인과 장강문명인들은 한정된 토지를 놓고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황허문명인이 쳐들어오면 장강문명인들이 힘을 합쳐서 이에 맞설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저마다의 처지가 달랐거든요. 또 원래 이웃한 나라 사람들은 먼 나라 사람보다 더 사이가 좋지 않기 마련입니다. 같은 장강문명권인 오나라와 월나라도 싸움을 벌였습니다.
논농사는 밭농사보다 조건을 갖추기 힘듭니다. 논을 만드는 것은 밭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인력이 들어갑니다. 더 큰 문제는 기후입니다. 비가 충분히 오지 않으면 아예 논을 만들지 못하죠. 그리고 햇빛이 충분하지 못하면 수확이 좋지 않습니다. 논농사를 짓는 것은 똑똑해서가 아니라 자연환경이 받쳐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논을 만들 수 있는 곳에서도 밭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벼농사를 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작은 이유는 밭보다 논에서는 잡초가 자라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큰 이유는 생산성입니다. 15세기 유럽 사람들이 밀 한 톨을 심으면 기껏해야 다섯 톨을 수확했습니다. 그런데 17세기 중국 사람들이 벼 한 톨을 심으면 무려 20배의 수확을 올렸습니다. 농업이 크게 발달한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밀은 20배가량의 수확량을 얻지만 벼는 140배 정도 수확합니다.
▶밭에서 땅을 일구고 있는 사람들│한겨레
사이가 나빠도 폭풍우에 함께 맞서다
밀농사를 짓는 지역과 벼농사를 짓는 지역의 식성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육류 섭취입니다. 밀농사를 짓고 빵을 주식으로 삼는 사람들은 육류 섭취가 많습니다.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밀에는 단백질이 결정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쌀에는 탄수화물뿐만 아니라 단백질과 비타민, 미네랄도 풍부합니다. 그래서 벼농사를 짓는 지역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육류 섭취가 적지요. 그런데 쌀에는 라이신이라는 아미노산이 결정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래서 콩을 함께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전부터 콩밥과 두부를 즐긴 이유가 다 있습니다. 비록 라이신이라는 말은 몰랐지만 말입니다.
다시 오월동주 이야기입니다. 쌀과 콩 그리고 두부에 익숙하게 살았던 오나라와 월나라가 원수처럼 싸웠습니다. 죽일 듯한 싸움이 있다면 패한 나라가 생길 수밖에 없죠. 월나라가 싸움에서 패했습니다. 자리를 비켜주어야 합니다. 싸움에서 패한 월나라는 산악지역으로 피신했습니다. 농사를 지을 기술이 있습니다. 또 비도 충분히 옵니다. 하지만 논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빗물이 한꺼번에 흘러가기 때문에 논에 댈 물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거든요. 어쩔 수 없이 계단식 밭을 경작하며 겨우 연명했습니다. 그러니 오월동주 상황이 벌어지면 일단 싸움부터 벌이게 되었죠.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아도 폭풍우에 함께 맞선 오월동주의 고사가 생각나는 때입니다.
이정모_ 현재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대학교수를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다. <250만 분의 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내 방에서 콩나물 농사짓기> 등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과학 도서와 에세이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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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