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의 ‘시가 흐르는 광장’에 새봄을 맞아 봄을 노래한 시들이 걸려 있어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뉴시스
시인 김춘수(1922~2004)의 ‘꽃’이다. 시의 해석은 읽는 사람 마음이다. 이름이 불리기 전에는 꽃도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그 이름을 부르면서 의미가 부여됐다는, 실존과 언어에 대한 이 시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투영시켜 상대에 대한 존재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꽃은 ‘시’의 언어다. 꽃만큼 시의 소재가 된 것도 없다. 꽃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겨울을 보내고 이렇게 맞이하는 따스한 봄날에 핀 꽃을 만나면 김춘수의 시처럼 내가 시로 불러주면 나에게 하나의 의미가 될 것 같은 마음이다.
누군가는 그랬다. “열매 한 아름보다는 꽃 한 아름을 받겠다”고. 열매는 끝이고 꽃은 시작이다. 열매는 결과고 꽃은 과정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란다. 물론 삶에 비유한 이야기다.
김소월의 시 ‘산유화’인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도 흔히 삶에 투영된다. 생성과 소멸, 고독하지만 겸허한 존재. 시는 읽은 이의 마음이라고 했으니 굳이 해석을 따를 이유는 없다. 공자의 말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을 뽐내려 하지 않는 겸손함으로 받아들인들 누가 탓하랴.
꽃 이름도 그렇다. 김춘수의 시처럼 누군가 불러주면서 ‘그 무엇’에서 ‘꽃’이 되었듯, 그 모양과 색깔이 서로 다른 꽃들도 누군가가 저마다 구분해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저마다 꽃이 됐다. 어떤 꽃은 모양에서, 어떤 꽃은 비슷한 다른 꽃에서, 또 어떤 꽃은 전설과 신화에서 이름을 가져왔지만, 누가 언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 알지 못하는 꽃들이 대부분이다.
어디 그뿐이랴. 아직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혼자서 저만치 피어 있어’서, 아니면 너무나 수줍어 아주 잠깐 피었다 사라져 ‘이름’조차 갖지 못한 꽃들이 수두룩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와 풀은 저마다 꽃을 피운다는 것을 감안하면 식물도감에 나오는 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당당하게 ‘꽃말’까지 붙은 꽃은.
진달래의 꽃말은 사랑의 기쁨이고, 벚꽃은 순결과 미인, 개나리는 희망과 기대와 깊은 정이다. 매화는 고결하고 맑은 마음, 철쭉은 정열과 사랑의 기쁨이며, 동백은 진실한 사랑과 겸손한 마음이다. 목련은 고귀함을, 유채꽃은 명랑과 쾌활을 상징한다. 같은 꽃이라도 색깔에 따라 꽃말을 달리 붙인 것도 있다. 붉은 튤립은 사랑의 고백이고, 보라색은 영원한 사랑이지만, 흰색은 실연이다. 목련도 흰색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의미한다. 동양과 서양의 꽃말이 다른 것도 있다.
꽃의 특징과 상징성을 가지고 붙인 것이지만, 이 또한 순전히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꽃말에 유난히 ‘사랑’과 ‘희망’이 많은 것도 마찬가지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라고 화두를 던진 성철 스님의 눈으로 보면 어이없거나 가소롭기 짝이 없을 수도 있다. 꽃은 꽃일 뿐이건만 인간은 멋대로 이름을 붙이고 꽃말까지 달아 본래 꽃의 존재를 가두고 속박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불교적 관점으로는 당연하다. 인간이 이름을 정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이전부터, 아니 인간보다 훨씬 앞서 꽃은 있었기에 ‘본래 그대로’ 곧 자연적 존재 그 자체야말로 진리다.
그렇더라도 꽃이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체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사람과 만나야 하고, 이름을 얻어야 하고, 의미를 가져야 한다. ‘산에 혼자서 저만치 피어’만 있다면 단지 자연일 뿐이다. 그 자연이 사람과 함께 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오고, 언어와 선율과 이미지와 만날 때에야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된다.
독일의 하이데거가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 언어에 의해 꽃은 김춘수의 시처럼 그 무엇에서 벗어나 의미가 됐고 시가 됐다. 화가는 그림으로 그 의미를 담았고, 작곡가에게는 음악이 됐다. 시와 음악과 그림이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4월 매주 금요일마다 봄빛 가득한 고궁의 정취를 담은 덕수궁의 ‘정오 음악회’처럼 가만히 음악과 어울리는 풍경만으로도 꽃은 문화다.
굳이 문화와 어울리지 않아도 된다. 해마다 봄이면 열리는 축제의 주인공으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저 멀리 경남 진해에서, 그리고 서울 여의도에서 끝난 벚꽃축제가 그렇고, 아직도 전국 곳곳의 산과 들과 공원에서 이어지는 꽃의 축제들이 그렇다. 충남 태안에서 5월 10일까지 열리는 세계튤립축제에서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모여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만든다.
이달 30일부터 시작하는 경남 합천 황매산철쭉제는 또 어떤가. 산 전체가 진분홍 ‘철쭉 바다’가 된다. 철쭉은 경기 군포에서도 축제 시간(4월 28~30일)을 기다린다. 해마다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대구 비슬산도 꽃과 사람, 놀이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날(4월 22~30일)을 기다린다. 경기 고양에서는 아예 세계의 봄꽃들을 다 불러 모은 꽃박람회(4월 28일~5월 14일)를 연다. 인천 강화 고려산에서는 아직도 진달래 축제(23일까지)가 계속되고 있다.
풍성하게 차려진 잔치마당이 아니어도 좋다. 뒷산, 작은 공원과 놀이터에도 꽃은 있다. 아직도 벚꽃은 눈부시게 남아 있고, 아파트 공터나 화단에서는 개나리가 활짝 웃고 있다. 작은 봄바람에도 눈 내리듯 떨어지는 벚꽃, 탐스러운 목련도 고개만 들면 보인다. 가수 송창식이 노래한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도 여수 오동도나 고창 선운사에 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다.
시와 그림이 아니어도 좋다. 봄 햇살을 받으며, 달빛을 밟으며 그 꽃들 사이로 걸으면서 향기를 맡고 꽃과 함께 사진 한 장이라도 남기면 그것이 나의 축제고 문화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많은 꽃도 나의 삶과 기억 속에 들어오지 않으면 지나가는 풍경이 된다. 그 풍경을 문화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2017년 봄은 다시 오지 않으며, 봄은 또 바람처럼 지나가고, 꽃은 진다.
이대현 |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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