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재즈는 머리에서 나왔고 로큰롤은 바짓가랑이 사이에서 나왔다’는 말은 록 음악의 성격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다. 60여 년 전, 블루스와 가스펠, 스윙 등 흑인의 음악과 백인의 컨트리 등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일종의 변종 음악인 로큰롤이 탄생했다. 이후 록으로 진화해 반세기 이상을 세계의 대중에게 사랑받으며 수많은 이들의 이성과 감성을 사로잡았다. 컨트리와 리듬 앤드 블루스에서 발전한 로커빌리(rockabilly)와 보컬 하모니가 강조된 두웝(doo wop)은 초기 로큰롤의 핵심적 요소였고, 1940년대 후반부터 고리 카터(Goree Carter)나 지미 프레스턴(Jimmy Preston), 빌 헤일리(Bill Haley) 등이 로큰롤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이어 척 베리(Chuck Berry)와 보 디들리(Bo Diddley),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 등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로큰롤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일반적으로 빌 헤일리의 ‘록 어라운드 더 클락(Rock Around The Clock)’이 발표된 1954년이 로큰롤 탄생의 원년으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20세기 미국의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슈퍼스타, 엘비스 에런 프레슬리(Elvis Aaron Presley)라는 이름이 자리한다.

▶ 엘비스 프레슬리. ⓒ연합
1954년 여름은 말 그대로 로큰롤이 본격적으로 비상(飛上)한 때
1954년 1월 4일, 미국 테네시 주 멤피스의 한 녹음실에서 열아홉 살의 젊은이가 4달러를 들여 자작 싱글을 녹음한다. 그 녹음실의 소유자였던 샘 필립스(Sam Phillips)는 젊은이의 재능을 알아채고 자신의 레이블인 선(Sun)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당시 풋내기에 불과했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이후 로큰롤 음악의 대중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함으로써 세계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꾸게 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리듬 앤드 블루스와 컨트리 앤드 웨스턴, 가스펠, 그리고 블루스와 스탠더드 팝 등의 요소들을 적절히 버무리고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해 역동적인 에너지를 표출함으로써 흑인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로큰롤 음악을 백인들의 세계, 즉 ‘주류’에 진입시켰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첫 싱글 ‘댓츠 올 라이트(That's All Right)’가 발표되고 전에 없던 노골적인 몸동작과 목소리 등 섹시함(또는 천박함)으로 가득한 무대를 선사했던 1954년 여름은 말 그대로 로큰롤이 본격적으로 비상(飛上)한 때로 기록된다. 이후 1977년 8월 16일, 약물 과다로 마흔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25장의 정규 스튜디오 앨범과 19장의 사운드트랙, 6장의 라이브 앨범, 10장의 컴필레이션, 그리고 29장의 EP와 200여 장의 싱글을 발표하며 ‘로큰롤의 제왕’으로서 음악과 문화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엘비스의 앨범은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약 6억 장이 판매됐다. 비틀스(Beatles)와 더불어 역사상 최고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아티스트에 랭크가 된 그의 차트 성과 또한 주목할 만하다.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을 가장 많이 보유한 아티스트는 20곡을 기록한 비틀스인데, 엘비스는 18곡으로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함께 비틀스의 뒤를 잇고 있다. 10위 안에 진입한 싱글 수는 36곡으로 마돈나(38곡)에 버금가는 기록이며, 탑 40 차트로 가면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그는 발표한 모든 싱글의 과반수인 114곡을 40위권에 진입시켰는데 이는 2위의 릴 웨인(Lil Wayne)이 기록한 64곡의 두 배 가까운 숫자다. 자신의 곡으로 1위를 갈아치우며 가장 오랫동안 빌보드 정상에 머무른 아티스트의 최고 기록 또한 엘비스의 몫이다. 1956년 ‘하운드 독(Hound Dog)’이 5주 동안 1위에 머무른 이후 곧바로 (‘Hound Dog’의 B사이드 곡인) ‘돈 비 크루얼(Don't Be Cruel)’이 6주간 정상을 차지했고, 뒤이어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가 1위에 오른 후 5주를 지속함으로써 총 16주 동안 그의 이름이 넘버원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곡이 차트 1위에 머문 주는 도합 79주로, 머라이어 캐리와 더불어 최고의 기록이다. 영국 차트에서는 21장의 싱글이 1위를 기록해 비틀스(17장)를 제치고 가장 많은 1위 싱글 보유 아티스트로 남아 있다. ‘핫(Hot) 100’과 함께 빌보드의 핵심 차트라 할 수 있는 ‘빌보드(Billboard) 200’에서는 10장의 1위 앨범과 27장의 10위권 앨범을 기록했고, 총 67주간 1위에 머물렀다. 이는 132주의 비틀스에 이은 기록이다.
사실상 엘비스 프레슬리의 위상은 위대한 뮤지션 또는 거장 아티스트보다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서의 이미지가 더욱 강하다. 그가 1956년 ‘Love Me Tender’를 시작으로 1969년 ‘체인지 오브 해빗(Change Of Habit)’까지 31편의 그저 그런 영화에 출연하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했다는 점, 그리고 중후반기의 여러 작품에서 음악적 성취보다는 짙은 매너리즘을 표출했다는 점 등은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에 결점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싱어송라이터가 아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녹음한 750여 곡 중 직접 쓰거나 작곡에 참여한 곡은 10곡 정도에 불과하다. 그중 ‘Love Me Tender’와 ‘Don't Be Cruel’, ‘올 슉 업(All Shook Up)’이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뒤의 두 곡은 오티스 블랙웰(Otis Blackwell)의 곡이라 보는 게 맞고 ‘Love Me Tender’는 남북전쟁 당시의 발라드 ‘아우라 리(Aura Lee)’를 차용한 작품이기 때문에 엘비스의 작곡 역량을 거론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1950년대의 엘비스 작품에서 기타 연주를 들려준 스카티 무어(Scotty Moore)가 언급했듯 엘비스 프레슬리는 ‘뛰어난 기량을 지닌 뮤지션’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놀라울 정도로 탁월한 리듬감과 타이밍에 대한 센스를 지닌 인물이었다.
더없이 매력적인 목소리와 타고난 가창의 재능
훌륭한 연주자가 아니었음에도, 격렬한 모습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엘비스의 이미지는 로큰롤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역사적인 데뷔 앨범의 커버를 장식하는, 기타를 치며 열창하는 엘비스의 흑백사진 한 장은 그 자체로 ‘로큰롤’과 동격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들고 있는 마틴 기타(Martin D-28)와 그가 1956년 10월 멤피스에서 구입한 이래 1970년까지 사용했던 깁슨 어쿠스틱 기타(Gibson J-200)는 화려했던 로큰롤의 시대에 이 격정적인 음악을 대표하는 강렬한 이미지가 됐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엘비스가 더없이 매력적인 목소리와 타고난 가창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높은 바리톤의 영역에 자리한 그의 굵고 나직한 음색은 기름지고 풍성한 색채로 특징된다. 지극히 부드러운 속삭임을 비롯한 저음부의 다양한 표현력과 격한 샤우트와 팔세토에 이르는 고음부의 탁월함은 그의 노래에 불멸의 생명력을 부여한 더없이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리듬 앤드 블루스와 로커빌리, 가스펠과 컨트리, 팝에 이르는 스타일을 오가며 한없는 풍요로움과 깊은 섬세함을 표출한 보컬리스트로서 엘비스 프레슬리는 거대한 빛을 발했다. 로큰롤 뮤지션임에도 유독 훌륭한 발라드가 많은 이유 또한 여기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한 그의 음악은 동시대의 버디 홀리(Buddy Holly)를 비롯해 비틀스와 밥 딜런(Bob Dylan), 엘튼 존(Elton John), 퀸(Queen), 클래시(Clash),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등 수많은 천재 음악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직접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엘비스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말했던 존 레논(John Lennon)이 엘비스의 골수팬이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헤아릴 수 없는 록과 팝의 거장들, 그리고 오늘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수많은 뮤지션의 음악적 스승이다. 그가 남긴 숱한 영혼의 음악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곳곳에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 이름이, 그 매혹적인 목소리가 ‘위대한 전설’일 수 있는 이유다.
김경진 |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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