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글보다는 영상이 종이보다는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한다 해도 문학은 사유와 소통의 원천이고 힘이다.”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들이 한자리에, 그것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대한민국에 모인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의 작가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문학이 고통을 치유하고, 너와 나를 하나로 연결시키고, 새로운 언어를 탄생시키고, 문화주의를 넘어 다차원주의를 열고, 서사를 지키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임을 확인하고 강조했다. 지난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이 행사에 참가한 해외 작가는 10개국 13명.

▶ 5월 23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컨벤션홀에서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참석자는 왼쪽부터 윤상인 서울대 교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고은 시인, 평론가 김우창, 평론가 최원식. ⓒ연합
우크라이나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 독일의 얀 코스틴 바그너, 나이지리아의 벤 오크리, 중국의 위화 등 이름만 들어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로 웬만한 문학청년이면 그들의 작품 한 편 정도는 읽어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그들이 기꺼이 한국을 찾은 것은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의 맨부커상을 수상할 만큼 우리 문학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기에 고은과 황석영, 도종환과 정현종, 김애란과 장강명 등 신·구세대를 아우르는 한국의 문인 50여 명이 함께했다.
그들은 우리(나)와 타자, 세계화 시대의 문학, 다매체 시대의 문학, 작가와 시장이란 네 가지 주제로 변화하는 환경에서 새로운 문학 담론을 향해 서로의 사유와 관점을 진솔하고 폭넓게 나누면서 한국 독자들에게 문학의 가치를 일깨워줬다. 3일 동안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포럼에서 그들이 던진 문화에 대한 화두와 저마다 문학 세계에 대한 진술, 현실을 담는 그릇으로서 문학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토론은 ‘왜? 이 시대에도 문학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날카롭고도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삶과 문학에서 나와 타자의 일치에 대한 작가들의 대화가 우리의 삶과 문학에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2015년, 증언을 토대로 독창적 형식인 목소리 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700여 명의 한국 독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간의 기억은 두 칸으로 나뉘어 저장된다. 첫째 칸에는 진짜 기억, 둘째 칸에는 그 사회가 기억하라고 하는 것들, 사상이 있다. 그것은 조작이기도 하다. 40년 동안 그런 사람들의 기억과 전투를 하며 글을 써왔다”고 말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역시 참혹한 전쟁을 겪는 여자들의 진짜 기억들이다. 그녀의 진짜 기억 찾기는 지금 체르노빌에 있다. 아직도 그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와 타자로 지칭하면서 그곳 도처에 숨어 있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형태의 죽음과 공포와 고통에 대해 작가, 주민, 학자의 세 가지 시선으로 담고 있다. 그녀는 “고통도 정보의 한 형태이고 우리를 연결시키는 고리”라고 했다.
소설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는 ‘나’와 ‘타자’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그는 “작가는 서술의 진전을 책임지는 ‘나’이고, 독자는 서술 진전의 한계에 책임을 지는 ‘타자’”라고 규정했다. 작가와 독자가 작품을 함께 이끌어가고 조정하는 대립과 전환,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것이다.
이들과 달리 탄핵정국이란 엄청난 요동과 그것을 딛고 일어선 오늘의 대한민국을 경험한 고은 시인에게 나와 타자의 일치는 “공공과 무아의 감동적인 미학”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2016년 겨울 이후 광장에서 계속된 한국의 촛불 혁명의 감동이 나와 우리, 타자의 문제에 대한 사유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면서 자작시 <어떤 기쁨>을 소개하기도 했다.
원로 문학평론가 김우창 역시 “‘나’란 존재가 ‘우리’에 합치될 때 집단이 나를 보강하고 그 일부가 되게 해 ‘나’를 격상시킨다”면서, 특히 오늘의 한국에서의 삶과 문학에서 타자의 존재론적 의미와 가치를 강조했다.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의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타자’조차 되지 못한 채 존재하는 북한을 언급하면서 젊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도덕적 의무가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들은 세계화, 다매체 시대의 문학에 대한 고민과 희망도 이야기했다. 황석영은 “서사가 ‘가능하다’와 ‘불가능하다’로 나눠지는 시대에 이렇게 우리 작가들이 현실과 부딪히면서 줄기차게 서사에 대해 전에 없이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한국 현대문학의 특성”이라고 했다.
1991년 소설 <굶주린 길>로 맨부커상을 받은 벤 오크리에 의하면 문학은 이제 다문화주의를 넘어 다차원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진정한 문학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변화하고, 스스로를 변형시킬 수 있으며, 바로 그 지점에 문학의 ‘마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마법은 길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때문에 프랑스의 작가 르 클레지오는 문학은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가장 강력한 힘과 신념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며, 소설에는 역사와 기억, 삶과 욕망, 꿈이 현실과 섞이며 현실을 변화시키는 영감이 신비스런 실체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번 포럼이 우리에게 즐겁고 자랑스러운 것은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 문단의 관심과 평가다. 클레지오는 자신이 말한 소설의 ‘그 실체’가 바로 한강의 <채식주의자>나 김애란의 풍자소설 등 젊은 한국 작가들 작품에서 발견되고 있다면서 이들의 작품이 우리가 몰랐던 문화와 역사를 어떤 역사서나 교양서보다도 훌륭하게 설명해준다고까지 했다.
클레지오뿐만이 아니다. 판문점, 백담사, 석굴암을 소재로 시를 쓴 미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하스도 어떻게 시가 거대한 리듬으로 시장을 붙잡아두는지를 김혜순의 <검은 브래지어>와 고은의 <선제리 아낙네들>을 통해 분석했다.
이렇게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은 문학의 가치와 힘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한국문학이 이미 세계 속에 널리, 그리고 높이 자리 잡고 있음도 확인했다. K-POP과 드라마만 ‘한류’가 아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고 넘어야 할 산도 많지만 한국문학 역시 이미 세계 문단 속에서는 ‘한류’다.
이대현 |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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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