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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명저로 읽는 과학세상] 찰스 다윈의〈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

다윈이 1871년 성 선택 책을 냈으나 학계가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수컷들이 살아남기 위해 뒤엉켜 싸우는 자연선택에 몰입했다. 자연선택을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는 제1의 원리로 확고하게 세우기 위해 그들은 곁가지는 무시했다. 이로 인해 성 선택은 100년 동안 사실상 묻혀 있었다.

 

책_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

찰스 다윈의 3부작 책 중 마지막이 1871년에 나왔다.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이다. 삼부작에 속하는 <비글호 항해기>는 1839년, <종의 기원>은 1859년에 나왔다.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은 두 개의 주제를 다룬다.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는 인간의 기원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종의 기원> 출간 13년 뒤에야 ‘사람은 어디서 왔나’ 하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의 두 번째 주제는 ‘성 선택’. 첫 번째 주제와는 상관없는 내용인데, 다윈은 두 주제를 하나로 묶어냈다. 때문에 책이 두툼해졌다. 나는 ‘성 선택(sex selection)’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다윈을 괴롭힌 공작 수컷의 꼬리

성 선택이라는 용어는 낯설다. 새로운 유전 형질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연장으로 ‘성 선택’이라는 게 있는 줄 몰랐다. 종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도구로 ‘자연선택’, ‘적자생존’에 비교적 익숙했을 뿐이다. 런던정치경제대학 헬레나 크로닌은 <개미와 공작>(1991)에서 그 곡절을 말해준다. 다윈이 1871년 성 선택 책을 냈으나 학계가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수컷들이 살아남기 위해 뒤엉켜 싸우는 자연선택에 몰입했다. 자연선택을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는 제1의 원리로 확고하게 세우기 위해 그들은 곁가지는 무시했다. 이로 인해 성 선택은 100년 동안 사실상 묻혀 있었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에서 성 선택을 이렇게 말한다. “(동물의) 여러 신체 구조와 본능은 성 선택을 통해 발달된 것이 틀림없다. 다른 경쟁자들과 싸우고 그들을 몰아내기 위한 공격 무기와 방어 수단, 수컷의 용기와 호전성, 갖가지 장식들, 성악이나 기악 장치들, 냄새를 발산하는 분비샘이 그렇게 해서 발달했다. 뒤에 열거한 구조 대부분은 암컷을 유인하고 자극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이들 특징이 자연선택이 아닌 성 선택 결과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영국 저술가 매트 리들리는 <붉은 여왕>(1993)에서 “오늘날 성 선택론이 유행”이라며 학계가 진화사에서 성(性) 선택이 한 일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성 선택론을 다음과 같이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다. “각각의 성은 상대방 성을 만들어간다. 여자가 모래시계와 비슷한 몸매를 갖고 있는데, 이는 남자가 그 모습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공격적인 성격을 가지는데, 그 이유는 여자가 그런 성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리들리는 인간의 지성도 자연선택이 아니라 성 선택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의 큰 두뇌는 남자가 다른 남자를 속이고 앞지르게 하거나(여자도 다른 여자를 속이거나 앞지르게 하고), 큰 두뇌가 처음부터 이성을 유혹하여 짝을 찾는 데 이용되었기 때문에 생식적 성공에 기여했다고 대부분의 진화인류학자는 믿는다.

나는 그간 살아남기 위해 경쟁자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여온 건 생존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행동 중 ‘생존’이 아닌 ‘짝짓기’를 위한 게 많다고 이 진화생물학자들은 말한다. 남자인 나의 몸을 여자인 아내가 빚었고, 아내의 몸을 내가 빚었다. 좋은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 나는 또 뇌 크기를 키웠다는 것이다. 의외다.

공작 수컷의 긴 꼬리는 성 선택의 마스코트다. 헬레나 크로닌에 따르면, 공작 수컷의 꼬리는 다윈을 괴롭혔다. “눈은 완벽해 보이는 외양 때문에 다윈을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공작 꼬리는 그의 내적 평화를 훨씬 더 크게 위협했다.” 다윈의 내적 평화가 흔들리고 있는 건 그가 1860년 4월 3일 미국 하버드대학 식물학자 아사 그레이(Asa Gray)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작 꼬리 연구에 진력이 났다고 고백한 데서 확인된다. “공작 꼬리의 깃털을 보는 것, 그걸 볼 때마다 넌더리납니다.”

공작 꼬리에 넌더리난다고 한 게 1860년이면 <종의 기원>을 내놓은 다음 해다. 그리고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을 내놓기까지는 11년이 남아 있을 때다. 다윈이 오래도록 공작 수컷 꼬리를 붙잡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공작 수컷의 꼬리는 펼치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문제는 꼬리가 너무 커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선택에 위배된다. 포식자 눈에 잘 띌 수 있고, 포식자가 나타났을 경우 달아나기 쉽지 않다. 자연선택 원리만 생각하면  거추장스러운 수컷 공작 꼬리는 없어야 한다. 공작 암컷의 몸 장식은 자연선택 원리에 들어맞는다. 공작 암컷은 비용을 절감하는 냉정한 공학자가 설계한 듯하다. 다윈은 공작 수컷 꼬리를 성 선택의 마스코트로 만들었고, 100년이 지난 오늘 후학은 다윈을 자연선택과 성 선택 원리를 발견한 학자로 평가하고 있다.

남자 가수에게 여자 광팬이 몰리는 이유

다윈은 노래와 춤도 성 선택 형질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과 춤을 잘 추는 사람은 상대 성을 유혹할 수 있다고 봤다. 노래와 춤 유전자는 이로 인해 후대에 전달될 수 있었다. 미국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뉴멕시코 대학)는 2000년에 발표한 <연애>에서 남자 가수에게 여자 광팬이 몰리는 이유를, 그게 성 선택임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제프리 밀러는 음악이 성 선택 산물이라는 증거를 미국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1942-1970)에서 찾았다. 지미 헨드릭스가 수백 명의 여성 광팬과 성관계를 가질 정도로 인기를 모았음을 강조하며 “그가 피임을 하지 않았다면 그의 (노래하는 호모 사피엔스) 유전자는 음악 활동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후대에 더욱 널리 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 가수에 여성 팬이 얼마나 열띤 반응을 보이는가는 한국에서도 익숙한 풍경이다.

찰스 다윈은 새의 미적 감각에 탄복했다. 공작의 아름다운 꼬리도 그렇고, 뉴기니의 외딴 정글에서만 사는 극락조 수컷의 아름다운 모습은 새 암컷의 미적 감각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암컷이 그런 미적 감각을 갖고 있지 않다면 수컷 극락조가 그토록 멋진 긴 머리 털 장식이나 환상적인 깃털 색깔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검은색 양쪽 날개를 부채꼴로 펴고 암컷 앞에서 구애의 춤을 출 필요가 없다. 유튜브에서 극낙조(bird of paradise)를 찾아보니 아름다운 자태와 수컷의 구애 장면은 참으로 압권이다. 수컷에 비해 미모가 떨어지는 극락조 암컷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초현실적인 수컷의 구애 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수컷을 길들여 아름다운 몸을 빚어낸 암컷만이 즐길 수 있는 공연 감상의 순간이다. 다윈은 “일반적으로 조류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미적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보이며, 아름다운 것에 대한 취향이 우리 인간과 거의 같아 보인다”고 말한다.

새는 암컷이 수컷을 성 선택하나, 포유류는 수컷 간의 경쟁으로 성 선택이 이뤄진다. “포유류 수컷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기보다 전투를 한다”고 다윈은 말한다. 그에 따르면, 전투를 하는 데 필요한 무기가 전혀 없는 아주 겁이 많은 동물도 사랑의 계절에는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두 마리의 수토끼는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 서로 싸우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인간은 좀 다르다. 다윈은 “문명국가에서 남자 간 경쟁으로 성 선택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오늘날 남자가 아내를 얻으려고 전투를 벌이지는 않으므로 힘에 따른 선택은 사라졌지만 성인 시절에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 것은 여전히 남자의 보편적인 몫으로 남아 있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여자를 둘러싼 남자 간 경쟁의 경험은 인류의 옛 문헌에 선명하다. 서구문명이 정신의 원류로 섬기는 호메로스 서사시 <일리아스>를 보자. 이는 남의 여자를 납치한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벌어진 두 국가 사이의 전쟁 이야기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유혹해 납치해갔고, 이후 두 문명은 10년 전쟁을 벌였다. 또 미국 샌타바버라 대학의 인류학자 도널드 브라운의 말은 나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군대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남자들은 모이면 밤낮으로 섹스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성(性)은 실로 오묘한 세계다. 단지 번식의 문제가 아니다. 이토록 다채로운 세상을 만든 건 성이기 때문이다.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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