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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문화, 지금] 하루키 열풍, 부러워만 할 것인가

하루키 열풍이다. 2017년 무더운 여름 독서가를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신작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가 휩쓸고 있다. 초판만 한꺼번에 3쇄 30만 부를 찍었고, 이미 4쇄에 들어갔다. 이 같은 열풍을 반영이라도 하듯 정식 판매를 시작하기도 전에 선주문만으로 국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지금도 정상을 달리고 있다.

책_기사단장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문학동네

물론 하루키 열풍은 그의 나라인 일본에서 가장 거세다. 지난 2월 출간되자마자 그의 소설을 사려는 독자들로 서점가에 긴 줄이 이어졌고, 무려 130만 부를 찍었다. 소설 한 편으로 그가 벌어들이는 돈도 천문학적이다. 출판사인 문학동네가 한국어 출판권을 따기 위해 지급한 돈이 20억 원이 넘는다는 소문이다. 7년 전 <1Q84>의 두 배다. 과잉 경쟁과 엄청난 선(先)인세 지급을 놓고 논란도 있었지만, 전례에 비추어 그래도 장사가 된다는 얘기다.

무라카미 하루키

▶ 무라카미 하루키 ⓒ뉴시스

하루키도 자신의 소설이 한국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기사단장 죽이기>의 한국어 출간에 맞춰 출판사를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도 “오랜 세월 제 책을 변함없이 열심히 읽어주신 한국 독자들에게는 늘 각별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겉치레가 아니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에서 2013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은 나올 때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그리고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단골로 오르며 미국과 유럽에까지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은유와 상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그의 소설을 두고 사람들은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은유와 상징이야말로 그의 문학을 독자적인 세계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온갖 동물에서 비롯된 상상의 세계서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은유와 상징의 키워드들은 때론 <1Q84>처럼 난해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하루키가 바라는 “읽는 이마다 다르게, 되풀이 읽을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다.

물론 그의 문학세계를 곱게만 보는 것은 아니다. 비록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고는 있지만 그의 소설은 다분히 일본적 감상이며, 다채로운 소재와 은유도 독자의 물질적, 교양적,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통속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서양 독자에게도 통할 만한 매력적인 소재와 세련된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문학이 아닌 상업적인 대중문화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과는 숙명적인 역사적 고리를 가진 우리로서는 그가 소설 속에 모티프로 집어넣는 역사와 현실에 대해 예민한 긴장과 불만도 숨기지 않는다. 뉴욕타임스가 2005년 ‘올해의 책 10’에 선정한 <해변의 카프카>도 그랬다.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으로 하루키에게 ‘프란츠 카프카상’을 안긴 이 소설에서 일본 국민 스스로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기억은 지우고 전쟁의 피해자로만 기억하려 한다는 것이 좋은 예다.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1937년 일본군이 난징대학살에서 40만 명의 중국인을 학살했다고 서술했다. 중국이 주장하는 숫자보다 많다. 이를 두고 이번에는 일본 우익이 반발했다. 그는 “사람들이 말을 마치 돌멩이처럼 다루며 상대에게 던져대는데 이것은 매우 슬프고 위험천만한 일”이라면서“역사에서 ‘순수한 흑백’을 가리는 판단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말이 딱딱하게 굳어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상실의 시대>에서 그가 쓴 서문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작품에 따라 이렇게 비판과 냉소가 엇갈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열풍’은 그가 말하는 명백한 실재이고 현상이다. 분명 독자들을 매료시킬 만한 그 무엇이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오히려 하루키 현상,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선에 위치한 또 다른 일본 추리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 열풍’까지 보다 냉철하고 편견 없이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문학의 저변을 넓히고, 한국 문학을 세계 속에 더욱 확장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가 희미해진 시대에 굳이 그 둘 사이에 선을 긋는 일은 시대를 읽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종면 교수(서울여대 국문과)의 말처럼 “순수문학 본연의 품격을 지키고 대중의 건강한 오락 욕구도 채워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중간 문학이 있다면 이를 애써 무시하고 외면하거나 ‘상업적’으로 치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할 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의 토양을 풍성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하루키 소설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큼 그의 문학의 특징과 세계가 모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실과 관념의 세계가 아무런 경계 없이 뒤섞이고, 과거와 현재는 운명적으로 연결되고, 이성과 감정이 번갈아 이야기를 끌고 가고, 적당히 지성과 낭만을 드러내고, 일본적이면서 탈일본적인 색채를 덧씌우면서 궁극적으로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하루키는 이를 비밀을 간직한 그림과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와 그 주변 인물, 이데아의 존재, 나치와 일본군, 날카로운 인간심리와 삶에 대한 통찰력, 끝없이 등장하는 음악과 섹스, 최고와 가장 대중적인 음식과 술을 통해 은유하고 서술한다. 
     
그런 것들이 하루키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며, 그의 소설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독특한 맛과 대리만족, 선망을 느끼게 해주는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이야기란 머리로 생각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 몸속에서 자연히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만이 시간과 공간, 언어나 문화의 차이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선량한 힘’을 지닌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의 이야기야말로 단순한 지적 허영이나 기교가 아닌 깊은 내면화와 통찰력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하루키는 일본이란 땅을 딛고 있으면서도 국가와 민족과 시대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마치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처럼 통속적이면서도 순수한 모습으로, 시대의 흐름을 타고 세계인과 호흡하고 있다. 이를 부러워만 할 텐가. 한국 문학도 언제든 가능하다. 작가와 작품에 보다 자유롭고 너그러우며, 그런 작가와 작품을 우리가 먼저 존중하고 아낀다면.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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