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명저로 읽는 과학세상] 아닐 아난타스와미의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조현병 환자는 스스로 간지럼을 태울 수 있다는 대목에서 나는 놀랐다. 보통 사람은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간지럼 태울 수 없다. 내 손, 내 몸을 내가 만지면 무슨 특별한 느낌이 있겠는가?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저자인 미국 스님 현각이 하버드대 신학대학원 재학 시절, 한국에서 온 숭산 스님을 보스턴에서 마주했을 때다. 숭산은 한때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책을 끼고 살았던 미국 학생에게 “당신은 누구세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현각은 당황했지만 이내 대답했다. “제 이름은 폴입니다.” 숭산은 “그건 당신 몸의 이름이다. 나는 당신의 진짜 이름을 알고 싶다”며 다시 물었다. 현각은 이에 바로 무너졌다. 하버드 다니며 머리가 반짝반짝하던 그는 이 평범한 질문에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자아란 무엇인가’는 큰 물음 중에서도 큰 물음이다. 철학자는 3000년간 이 문제에 매달렸다. 자아 문제는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때로 미혹케 했다.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는 자아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신경과학 책이다. 자아에 관한 질병 여덟 가지를 이야기하며 다시금 자아를 생각해보도록 한다. 자아 관련 질병 환자는 ‘자아’의 여러 측면을 보여준다. 저자 아닐 아난타스와미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만난 연구자와 환자들의 생생한 얘기를 들려준다.
아난타스와미는 인도 첸나이에 있는 인도공과대학(IIT)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활동하며 주로 과학에 관한 글을 쓰는 저자다. 그는 종교의 나라 인도인답게 ‘자아’에 관한 사유의 시작을 인도의 종교 전통에서 찾는다. 불교 중관파 경전에 나오는 자기 몸을 잃은 남자의 우화로 책을 연다.
이 남자는 버려진 집에 들어갔다가 도깨비들을 만난다. 도깨비 둘이 시체를 놓고 서로 자기가 들고 그 집에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남자에게 당신은 우리가 각각 들어오는 걸 봤으니 진실을 말해달라고 요청한다. 말을 잘못했다가 화가 난 한 도깨비가 이 남자의 사지를 하나씩 떼어내고, 그때마다 다른 도깨비는 시체에서 사지를 하나씩 떼어 이 남자에게 붙여준다. 결국 이 남자의 몸은 시체의 몸으로 다 바뀌어버리고, 남자의 몸을 가진 시체는 도깨비들이 다 먹어버린다. 몸이 바뀐 이 남자, 당황한다. 혼란스럽다. 나는 누군가?
그는 다음 날 길에서 만난 불교 승려에게 묻는다. “내가 존재합니까, 아닙니까?” 승려들은 답을 주지 않았다. 되레 반문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 남자, 2000년 뒤 미국 하버드대 학생 마냥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아난타스와미는 말한다. “이 남자가 오늘날 신경과학자에게 내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들의 답은 무엇일까?” 신경과학자들은 승려들로부터 1500년이 더 지났지만 여전히 “감질 나는 대답을 몇 가지 내놓는다.”
코타르증후군 환자는 자아를 부정한다
책이 다루는 자아에 관한 뇌 질환 8개는 코타르증후군, 알츠하이머병, 신체통합정체성장애, 조현병, 이인증(離人症. depersonalization disorder), 자폐스펙트럼장애, 유체이탈, 황홀성 간질이다. 들어본 병도 있고 낯선 질환도 있다.
코타르증후군 환자 일부는 자아를 부정한다. “내 뇌가 죽었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시체, 관 들어갈 날만 기다리는 것 같다고 이 환자를 돌본 신경의학자는 말한다.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죽었다고 생각하니 자살할 이유가 없다. 뇌의 일부 조직이 손상돼 자기 몸에 대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자아를 부정하는 병이라니. 아난타스와미는 책 이름을 이 코타르증후군 환자의 증상에서 땄다. 다행히 이 병 환자는 매우 드물고 병도 오래가지 않는다고 한다.
신체통합정체성장애가 내게는 흥미롭고 쉽게 와 닿았다. 환상지(幻想肢) 혹은 환상사지라고도 한다. 내 다리이고 팔인데 내 것이 아니라고 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말한다. 이 증후군을 오래 앓았고, 잘라내고 싶어 하는 강박증으로 평생 괴로워하다가 아내에게 고백한 남자 얘기가 나온다. 그는 아시아 어느 나라에 가서 끝내 자신의 다리 대퇴골 아래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야 말았다. 책 저자 아닐 아난타스와미는 수술 받으러 가는 그를 따라갔고 의사도 만났다. 수술 이후 몇 달이 지난 뒤 목발을 짚고 다니는 그는 아난타스와미에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난생처음으로 그는 몸이 온전함을 느낀다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학의 신경학자 라마찬드란은 환상지 연구로 이름이 높다. 그는 팔다리 일부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실제 몸과 뇌 속의 신체 신경지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냈다.
신체통합정체성장애를 앓는 사람은 뇌가 팔다리를 인식하지 못해 고통을 겪는 경우다. 남의 다리가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느낌은 불쾌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이물질이 달려 있는 느낌이라니. 반대 경우도 있다. 몸에 팔다리가 없는데도 붙어 있는 것으로 잘못 아는 증후군이다. 신경학자 라마찬드란은 환상지 연구를 저서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에 잘 소개해놓았다.
알츠하이머는 익숙한 병이다. 기억을 망가뜨려, 심하면 끝내는 사람을 무너뜨리고 만다. 좀비가 되는 병.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많은 이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할 때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하버드대학의 신경학자 루돌프 탄지는 “알츠하이머병은 인간으로서 내가 누구인가를 사실상 규정하는 그 경계를 뜯어내버린다”고 말한다. 여기서 파괴되는 건 ‘서사적 자아’다. 이야기가 사라지면 자아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조현병 환자는 스스로 간지럼을 태울 수 있다는 대목에서 나는 놀랐다. 보통 사람은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간지럼 태울 수 없다. 내 손, 내 몸을 내가 만지면 무슨 특별한 느낌이 있겠는가?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경계를 알아차리는 게 뇌의 일 중 하나다. 나와 외부 세계의 경계를 모르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조현병 환자 대개가 간지럼을 스스로 태울 수 있다는 건, 자기 행위와 자기 행동이 아닌 걸 구분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또 건강한 사람은 자기 목소리는 작게 듣고, 외부 세계 소리에는 민감하다. 뇌의 청각 피질 활동을 보여주는 N1이라는 뇌전도 신호는 건강한 사람이 소리를 내고 난 뒤 100밀리초 동안 약해진다. 자기가 낸 소리라는 꼬리표를 붙여 잘 들리지 않게 한다. 외부 소리에는 N1이 억제되지 않는다. 나보다는 외부 소리에 예민해야 자신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조현병 환자는 자기 발생적 소리에 대해서도 뇌의 N1 신호가 억제되지 않는다.
무아 진영에 비해 유아 진영은 초라하다
아난타스와미는 여덟 가지 자아 관련 질환을 소개한 뒤 책의 끝부분에서 자아가 어떤 측면을 갖고 있는지를 정리한다. “자아의 여러 속성은 우리에게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통일성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우리의 이야기, 행동 주체이자 생각 발기인이라는 느낌, 신체 부위를 소유한다는 느낌, 내가 곧 정서라는 느낌, 몸이라는 일정 부피의 공간과 내 눈 뒤쪽에서부터 비롯되는 기하학적인 시점 속에 위치한다는 느낌, 이 모든 것은 대상으로서의 자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자아가 놀라우리만치 탄탄하면서도 연약하다는 걸 책을 읽고 나는 알았다. 책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도깨비에게 몸을 뜯어 먹히고 남의 몸을 갖게 된 사람이 다시 등장한다. 나는 있는가, 없는가? 철학자가 3000년 넘게 토론해온 내용과 20세기 후반 신경과학자의 연구를 두루 살펴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철학자와 신경과학자는 두 개 진영으로 각각 나뉜다. 자아가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쪽과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쪽이다.”
‘무아(無我)’파의 대표 인물은 붓다다. 18세기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미국의 인지철학자 대니얼 데닛도 있다. 붓다는 ‘모든 것은 계속 변한다. 그러니 불변의 자아라는 게 어디 있겠느냐. 그걸 본다면 집착일 뿐’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데이비드 흄은 자아는 없다고 하고, 마음을 온갖 이미지가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극장에 비교한다.
무아 진영에 비해 유아(有我) 진영은 초라하다. 논리도 약하다. 책 저자가 등장시킨 철학자는 미국 뉴욕대 조나단 가네리와 힌두교의 한 종파다. 설명도 짧다. 아난타스와미는 유아니, 무아니 하는 논쟁은 사실 별다른 의미 없다고 말한다. 두 진영 간 큰 불일치도 없다고 한다.
붓다는 기원전 6세기 갠지스 지역을 돌며 무아를 강조했다. 위대한 스승의 이 말은 내게는 희로애락, 빈부귀천, 생로병사, 길흉화복의 대상인 자아라는 옷을 벗어던지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자아가 만병의 근원이다. 자아 과잉에서 벗어나는 게 공부의 귀결이다.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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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