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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명저로 읽는 과학세상] 성찰과 번민, 침묵으로 과학 역사를 바꾼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행성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영원히 돌고 도는 동안, 이토록 단순한 시작에서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멋진 무한한 형태가 진화해 나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찰스 다윈

▶ 찰스 다윈

런던 도심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구글 지도를 검색했다. 찰스 다윈 집에 가는 길이었다. 런던 남쪽 방향이고 거리는 28킬로미터. 그리 멀지 않으나 버스와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야 했다. 동행한 큰 아이가 우버 택시를 제안했다. 우버 앱으로 검색하고 차편을 골랐다. 이용료는 편도 37.7파운드. 구글 지도가 추천한 대중교통 요금보다 저렴했다. 도요타 프리우스가 득달같이 나타났다.

구불구불한 길을 한 시간쯤 달렸나? 런던 교외가 끝나고 농촌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좁은 2차선 도로에 안개가 살짝 끼었다. 탐정소설 <셜록 홈스>에 나올 듯한 영국의 분위기다. 필자가 방문했던 날은 다윈 생일인 2월 12일. 국제 다윈의 날이기도 했다. 다윈은 1809년생이다.

“살인을 고백하는 것 같습니다”

책_종의 기원

▶ <종의 기원> 1859년 초판 속표지.

다윈은 ‘나는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답을 알려줬다. 그는 <종의 기원>(1859년 11월 24일 출간)을 통해 종(種)은 변하며 자연선택이 바로 종을 변하게 하는 진화의 동력이라고 주장했다. 다윈 집을 찾는 건 과학의 성지 순례다. 기독교도가 신이 사는 예루살렘을 찾듯이, 나는 내 오랜 족보를 가르쳐준 19세기 영국인에게 합당한 존경심을 표하려 했다. 이를 위해 런던 교외의 구불구불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언덕길을 내달렸다. 다윈은 결혼 3년 후인 1842년 9월 셋째 아이를 가진 뒤 런던에서 이 집으로 이사 왔다. <종의 기원>을 이곳에서 썼고, 1882년 이 집에서 죽었다. <종의 기원>을 몇 장 넘기면 서문에 다윈의 핵심 메시지가 나온다.

“각각의 종이 개별적으로 창조되었다는 생각은 대부분 박물학자의 견해이나 이 견해가 잘못되었다는 걸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종이 변한다고 확신한다. 나는 자연선택이 변형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

다윈 집인 다운 하우스(Down House)에는 날도 춥고 흐린데 수십 명의 방문객이 보였다. 주차장을 지나 문 안으로 들어가니 과수원이 있었다. 집은 과수원에서 다시 담장에 난 문을 지나가야 했다. 회색빛 3층 건물. 대저택은 아니고 시골 지주가 여유 있게 사는 규모다. 지금은 내셔널 트러스트가 집을 매입, 관리하고 있다.

1층 입구에 기념품 가게가 있고, 집 1층과 2층은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2층 여러 방에는 다윈의 삶과 연구 관련 전시물이 놓여 있다. 1층은 거실과 식당이 있고, 다윈의 서재는 거실 건너편에 3평(10㎡) 남짓한 크기였다. 인류의 생각을 바꾼 사상을 쏟아낸 책상이라 생각하니 달리 보였다. 3층은 비공개다.

조용하고 겸손한 다윈은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성찰과 번민, 집필, 침묵의 시간으로 보냈다. 19세기 중반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세계에서 쏟아지는 부로 풍요로운 사회였다. 하지만 ‘창조론’이 압도적인 사회였고, 그것을 거스르는 생각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자연선택’ 관련 글을 써놓고도 책상 속에 넣어두었다. 친구인 찰스 라이엘(지질학자, 1797~1875)과 조지프 돌턴 후커(식물학자, 1817~1911)에게만 보여줬을 뿐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발표하기 15년 전인 1844년 1월 친구인 후커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살인을 고백하는 것 같습니다(다운 하우스 2층 전시실 벽면에 적힌 문구).”

어느 날 동남아시아 말레이제도에서 날아온 편지와 논문 한 편이 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1858년 6월 18일이었다. 알프레드 월리스(1823~1913)란 젊은 학자가 다윈에게 자신의 논문이 발표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는데, 그게 자연선택론이었다. 다윈은 소스라치듯 놀랐다. 다운 하우스 전시실 자료는 말한다.

“다윈은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신사로서 명예가 달려 있다고 느낀 그는 친구인 찰스 라이엘과 조지프 후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들은 월리스 논문과 다윈의 설명(sketch)이 린네학회에서 함께 낭독되도록 주선했다.”

1858년 7월 1일 두 논문 작성자가 없는 가운데 런던 린네학회에서 ‘자연선택론’이란 세상을 바꾼 논문이 낭독됐다. 다윈-월리스 두 사람은 자연선택의 동시 발견자로 역사에 남았다. 하지만 역사는 다윈을 편애했다. 월리스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빛은 다윈을 향했고, 어둠은 월리스 위에 오래 드리웠다(월리스 저서 <말레이제도>가 2017년 한국에서 첫 번역돼 나왔다).

 <종의 기원>은 영국 군함 ‘비글함 여행’에서 받은 충격 이야기로 시작한다. 다윈은 비글함을 타고 남아메리카와 남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5년간(1831~1836)의 세계 일주 항해를 했다. 사람은 역시 낯선 곳으로 여행해야 성장한다. <종의 기원> 첫 문장이다.
“박물학자 자격으로 비글함을 타고 항해하던 중 나는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동물의 분포, 그리고 과거에 살았던 동물들과 현재 살고 있는 동물들의 지질학적 관계에 대한 일부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들은 종의 기원과 관련해 나에게 어떤 빛을 던져주는 것 같았다.”

산책 즐기며 <종의 기원> 핵심 내용 구상

<종의 기원>은 읽기 쉽다. 전문 용어가 없고 평이해서 다윈 이야기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주옥같은 문장이 즐비하다. <종의 기원>이 1859년 11월 24일 나왔을 때 영국 독자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초판 1250부는 출간 첫날 다 팔렸다. 책은 ‘종(種)은 불변한다’는 당대 상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종은 신이 만들었고 변하지 않는다는 게 그때까지 합의된 진리였다.

다윈은 육종가 얘기로 책 1장을 시작한다. 그는 비둘기와 개 품종 개량을 예로 들어 ‘선택’이 우리 주변에서 익숙한 풍경임을 말한다. 집에서 비둘기를 키웠던 그는 비둘기를 잘 알았다. 런던의 비둘기 클럽 두 군데에 회원으로 가입도 했다. 그는 “비둘기는 세계 곳곳에서 몇 천 년에 걸쳐 가축화되었다”고 하고, 개에 관해서는 “이탈리아 그레이하운드, 블러드하운드, 불독이나 블레넘 스패니얼 등과 매우 닮은-즉 야생의 갯과 동물과는 전혀 다른-동물이 자연 상태에서 생존했다고 믿을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그는 책 2장에서 ‘생존경쟁’을, 3장에서는 ‘자연선택’을 말한다. 그가 자연선택을 깨달은 건 당대 경제학자 맬서스의 <인구론>(1798년 출간)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의 보호를 거부하고 자연선택이란 차가운 법칙을 깨달은 다윈은 어떠했을까? 마음 둘 데가 없어 다운 하우스 화단 옆 벤치에 앉아 파란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선각자 다윈은 다음과 같은 말로 내 어깨를 토닥인다.

“그런 투쟁에 대해 숙고하다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믿음으로 위안을 삼고 싶어진다. 자연의 전쟁도 끊임없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될 거라는 믿음, 죽음은 일반적으로 신속하게 끝날 것이라는 믿음, 생기 넘치고 건강하고 행복한 자가 살아남고 번영하리라는 믿음…….”

다운 하우스에는 다윈이 연구를 위해 가꿨던 텃밭이 있고 텃밭 뒤로는 작은 동산이 있다. 집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다윈은 동산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그 뒤로 계속 몇 만 평은 될 듯 보이는 널찍한 잔디밭이 펼쳐진다. 집 오른쪽으로 해서 앞쪽으로 걸어가니 온실과 밭이 나왔다. 수백 평 규모의 밭은 ‘영국의 갈라파고스 섬’이라고 불린 자연선택 실험장이었다.

 다윈의 그 유명한 산책로는 텃밭 끝 담장 모서리에서 시작됐다. 샛문이 하나 있었다. 밀고 나가니 길이 보였다. 토머스 헉슬리, 조지프 후커가 찾아오면 같이 산책하던 곳이다. <종의 기원> 맨 마지막 문장이고,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산책길 사유에서 나왔다.

“이러한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있다. 최초에 소수의 형태 또는 하나의 형태에 갖가지 능력을 지닌 생명의 숨결이 불어넣어졌다. 행성이 고정된 중력의 법칙에 따라 영원히 돌고 도는 동안 이토록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멋진 무한한 형태가 진화해 나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네 시간 정도 다운 하우스에 머물며 내 마음은 이리저리 분주했다. 같이 갔던 식구들은 그런 나를 싫다 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다운 하우스를 떠나올 때 큰아이가 말했다. “아빠가 다윈을 그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어요.” 속마음을 들킨 듯 순간 얼굴이 화끈했다.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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