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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명저로 읽는 과학세상] 아름답고 경이로운 유전… 션 캐럴의 <이보디보>

인간은 모태에서만 만들어진다. 몸 조립법의 전체 매뉴얼을 알아내려면 갈 길이 멀다.
그 전에 인간의 유전자 서열을 모두 파악하는 게 일의 순서였다. 2003년에 끝난 휴먼 게놈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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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이보디보

내가 어머니 자궁에 자리 잡은 건, 그러고 보니 이승만 정권의 마지막 해였다. 단세포로 시작한 나는 머리 큰 아기가 되어 자궁을 빠져나왔다. 두상이 크면 아이 지능이 좋다는 속설이 있었다. 어머니는 산고가 컸으나 그걸 위안으로 삼았다. 고고성을 울렸을 때 독재정권은 무너져 있었다.

오래전 일을 되짚어보는 건 새삼스런 호기심 때문이다. ‘나는 어디에서 왔나’ 하는 기원에 대한 궁금증 못지않은 게 내 몸은 어떻게 발생했나이다. 학자들은 그걸 어디까지 알아냈을까? 〈이보디보〉 저자 션 B. 캐럴은 내 호기심에 동의한다. 미국의 발생유전학자(매디슨 소재 위스콘신 대학)인 그는 “수정란이 배아를 거쳐 완전한 동물로 변하는 과정만큼 경이로운 자연현상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션 캐럴은 이 분야에서 당대 최고. 알고 보니 나와 동갑이다.

책 제목 〈이보디보(EVO-DEVO)〉는 ‘진화발생생물학’의 영어(Evolutionary developmental biology) 약칭. 유전자가 동물의 발생을 어떻게 지휘하는지 연구하는 게 발생생물학이고, 그 유전자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연구하는 분야가 진화발생생물학이다.

초파리 통해 알아낸 유전자의 기능

독일 하이델베르크는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1954)의 무대로 유명하다. 테너 마리오 란자가 맥주잔을 들고 노래 부르던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있다. 하이델베르크에 유럽분자생물학실험실(EMBL)이라는 곳이 있다. EMBL은 유럽 정부들이 분자생물학 연구를 위해 공동으로 세운 곳이다. 미국의 독주에 자극받았기 때문이다.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네카르 강 건너 남쪽 숲 속에 자리 잡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인 1978년,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폴하르트와 에릭 위샤우스라는 두 남녀 학자가 현미경으로 돌연변이 초파리를 찾고 있었다. EMBL이 문을 연 해에 연구소에 들어간 뉘슬라인폴하르트는 얼마 전 짧은 결혼 생활을 뒤로했다. 에릭 위샤우스는 대학 시절 초파리 담은 병 청소 알바를 한 게 인연이 돼 유전학자가 됐다.

이들의 야심은 컸다. 초파리 몸을 빚어내는 유전자를 모두 알아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5년 전 왓슨과 크릭이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하면서 문을 연 분자생물학이 당시 궤도에 오르고 있었다. 초파리는 빨리 자랐고, 유전자 수가 적어 살피기에 좋았다. 24시간이면 발생이 끝났다. 초파리들에게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화학물질을 먹였다. 초파리 돌연변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정상체가 아니라 돌연변이를 연구해야 돌연변이를 만드는 게 어떤 유전자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수만 마리가 두 사람의 현미경 아래를 지나갔다.

꼬박 3년의 노력은 보상으로 돌아왔다. 1980년 10월 30일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이 큰 반향을 얻었다. 1995년 두 사람은  스톡홀름의 노벨상 수상대에 섰다. 노벨상 수상자 선정위원회는 시상식장에서 이들의 공적 사항 ‘초기 배아 발달의 유전적 조절에 관한 연구’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전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삶이 시작되는 그 순간, 수정란은 분열해 두 개가 되고, 그다음 네 개, 여덟 개 등으로 계속 분열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세포가 똑같아 보입니다. 나중에는 모든 세포가 분화되어 어느 세포가 머리, 꼬리 또는 앞과 뒤가 될 것인지 분명해집니다. 이와 같은 분화 과정은 유전자가 좌우합니다. 어떤 유전자가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그 유전자들은 몇 개나 될까요?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작용하는 걸까요?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은 이 궁금증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들은 연구가 간단하다는 장점 때문에 초파리를 실험동물로 사용했습니다. 초파리가 새로 낳은 알은 10일 만에 유충이 되고, 그다음 번데기를 거쳐서 성적으로 성숙한 파리가 됩니다. 곤충 유충은 각각의 체절로 나누어집니다. (중략)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폴하르트 박사님과 에릭 위샤우스 박사님은 정확히 14개의 체절로 발달하는 유충에서 그 모든 유전자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중략) 그들은 간단하면서도 독창적인 실험으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초파리 유전자 2만 개 중 절반 이상을 시험한 결과, 체절 분할을 좌우하는 세 종류의 유전자를 찾아냈습니다.”

초파리 발생 유전자 연구 성과는 학계를 자극했다. 연구자들은 다른 동물에서 초파리 발생 유전자가 있는지를 찾기 시작했다. 스위스 바젤대학의 발터 게링 교수(1984년 혹스 유전자 발견) 연구실에서 연구하던 빌 맥기니스와 마이크 리바인은 초파리가 딱히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은 지렁이, 개구리, 소는 물론 사람에서도 초파리에서 확인된 혹스 유전자(Hox Gene)를 발견했다. 가령 초파리의 혹스 유전자를 제거하고 사람의 혹스 유전자로 교체해도 초파리는 정상적으로 발생한다. 두 생명체는 5억 년 이전에 분리돼 따로 진화했다. 그런데도 이 발생 유전자는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보디보〉 저자 션 캐럴은 “이보디보 혁명의 첫 개가는 모든 동물이 공통의 마스터 유전자들을 갖고 있음을 밝힌 것”이라며 “곤충의 몸과 내부 기관 형성을 통제하는 바로 그 유전자들이 인간의 몸 형성도 통제하고 있으리라 짐작한 생물학자는 한 명도 없었다”라고 말한다. 연구자들은 당황했다. 그럼 뭔가?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유전자와 분자스위치의 상호기능

동물 전체를 만드는 과정은 몹시 복잡하다. 수많은 툴킷(Tool Kit·도구상자) 유전자가 동시에, 그리고 차례로 작동한다. 한 시기 한 장소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만도 수십 개가 되고, 그 시기 다른 장소에서 활약하는 유전자가 또 수백 개 있다. 그것들이 병렬로, 또한 순차적으로 작동함으로써 복잡성을 만들어낸다. 유전자를 순차적으로 가동시키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여기서 〈이보디보〉의 또 다른 영웅들이 등장한다.

자크 모노와 프랑수아 자코브는 ‘유전자 스위치’ 발견자다. 1961년 박테리아의 일종인 대장균을 연구해 알아냈고, 이 공로로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당시는 박테리아 연구가 인기였다. 모노와 자코브가 주목한 건 ‘효소 유도’ 현상이었다.

대장균은 글루코오스라는 당을 좋아한다. 글루코오스가 없고 대신 락토오스라는 당이 있으면 락토오스를 분해해서 글루코오스를 뽑아낸다. 대장균이 락토오스를 분해할 때 필요한 효소가 베타-갈락토시다아제. 놀랍게도 박테리아는 배양액에 글루코오스가 있을 때는 베타-갈락토시다아제를 만들지 않고, 락토오스만 있으면 베타-갈락토시다아제 생산 속도가 천 배 가까이 급속도로 올라간다. 박테리아라는 단순한 세포가 언제 어떻게 이 효소를 만들어야 할지 아는 것일까. 이것이 모노와 자코브가 당시 가진 의문이었다. 두 사람은 베타-갈락토시다아제 유전자에 있는 어떤 스위치가 효소 생산을 통제한다는 걸 알아냈다. 스위치는 락토오스가 없으면 꺼져 있고 등장하면 켜진다.

유전자 스위치는 단독으로, 혹은 여러 개가 조합을 이뤄 특정 유전자를 끄고 켠다. 유전자를 켜면 그 유전자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이룬다.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들라는 명령어 문구라면, 특정 단백질을 언제 만들라고 유전자에 지시하는 건 ‘유전자 스위치’다. 신체 부속, 조직, 다양한 종류의 세포는 무수히 많은 스위치와 단백질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진화발생생물학은 발생의 초기 단계에 관한 성과를 많이 쌓았다. 하지만 미스터리가 많다. 유전자(단백질)와 분자 스위치가 생명체 조립을 마무리하기까지 보이는 2인무의 실체를 모른다. 션 캐럴은 “이 수수께끼는 여전히 생물학에서 가장 난해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고 인정한다.

인간은 모태에서만 만들어진다. 인공 자궁이 있는 생명공학 공장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같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다. SF 영화가 그런 장면을 즐겨 보여준다는 건 인간 만들기가 현 세대 능력 밖이라는 얘기다. 몸 조립법의 전체 매뉴얼을 알아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전에 인간의 유전자 서열을 모두 파악하는 게 일의 순서였다. 2003년에 끝난 휴먼 게놈 프로젝트다.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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