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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명저로 읽는 과학세상] 그레고리 코크란·헨리 하펜딩의 <1만 년의 폭발>

동네 인터넷서점 중고책방에서 책을 발견했다. 「1만 년의 폭발」 낯선 책이다. 책 부제는 ‘문명은 어떻게 인류 진화를 가속화시켰는가’. 책을 구입하게 된 건 마지막 장 제목 때문이다.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어떻게 똑똑해졌는가’. 유대인이 머리가 좋다는 얘기는 다 알지만, 왜 그런지를 분석한 것은 잘 들어보지 못했다. 궁금증을 풀어줄 걸로 기대됐다. 집에 와서 보니 서울대 장대익 교수(진화학·과학철학)도 포털사이트에 추천한 책이었다. 좋다.

책_1만년의폭발

이 책 저자는 미국 유타대학의 인류학자 두 명이다. 헨리 하펜딩과 그레고리 코크란. 헨리 하펜딩은 집단유전학자이기도 하다. ‘아슈케나지 유대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걸 보면, 이들은 백인 유대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하니, 유대인 문제보다는 이 책이 본래 가진 문제의식이 더 재밌다. 책 부제, 즉 문명은 어떻게 인류 진화를 가속화시켰는가가 도발적이다. 상식에 도전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20세기 말 거물 생물학자들도 인류는 더 이상 진화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책에 하버드대학의 두 생물학자를 인용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저명한 고생물학자였고, <다윈 이후>, <풀하우스>, <판다의 엄지>와 같은 과학 고전의 저자다. 그는 “4만 년 또는 5만 년 동안 인류는 생물학적 변화를 전혀 겪지 않았다. 우리가 문화와 문명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같은 몸과 뇌가 만들었다”고 말했다.

에른스트 마이어는 뛰어난 진화 이론가다. 현대 진화 이론을 발전시킨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연구자다. <진화란 무엇인가>, <이것이 생물학이다>를 썼다. 에른스트 마이어는 “선택압을 엄청나게 약화시킨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 인간다움을 향한 인간의 진화가 갑자기 멈춰 섰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헨리 하펜딩과 그레고리 코크란은 이 진화생물학의 최고봉들을 비판한다. “현대 인류는 지난 5만 년 동안 폭풍 같은 변화를 겪었다. 인간이 지난 600만 년보다 최근 1만 년 동안 100배는 더 빠르게 진화했다.” 600만 년 전은 인류가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진화의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때다. 5만 년 전은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시점이다. 1만 년 전은 농경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다.

현생 인류에게 필요한 조건은 ‘네안데르탈인’ 유전자였다.

아프리카를 탈출한 이후 현생 인류의 혁신이 시작됐다. 아프리카에서 약 20만 년 전 태어난 현생 인류의 일부 그룹은 약 5만~6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났다.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오늘날 소말리아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건너왔다.

이들은 몸이 고(古)인류와는 달랐다. 다른 인간이었다. 하지만 해부학적인 변화만으로는 곧이어 이들에게 닥칠 문화 혁신인 후기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문을 열어젖힐 수 없었다. 해부학적인 변화는 필요조건이었고, 문화적 빅뱅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충분조건이 아니었다는 단서는 제일 먼저 아프리카 대륙을 떠난 현생 인류가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호주 원주민이 그 사례다. 이들은 나중에 유럽인이 찾아갔을 때 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1만 년의 폭발> 저자들에 따르면 당시 현생 인류에게 필요한 조건은 ‘네안데르탈인’ 유전자였다. 호주까지 간 첫 번째 아프리카 엑소더스의 물결에 이어 아프리카를 떠난 그룹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새로운 유전자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인류의 생물학적 한계를 확장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누가 봐도 훔쳐올 가치가 있는 대립유전자는 유럽의 지역적 조건들에 대한 적응을 제공한 유전자들이다. 그런 적응 예로는 추위를 참는 능력, 풍토병에 대한 저항 능력, 연중 큰 변동을 보이는 해의 길이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다.” 오늘날 인류가 갖고 있는 뇌 크기 조절 유전자도 네안데르탈인의 것일 확률이 높다. 대표적인 언어 유전자 FOXP2도 마찬가지다.

저자들에 따르면 생물적인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현생 인류는 곧바로 후기 구석기 시대에 진입했다. 구석기 시대 피카소는 유럽의 알타미라 등 동굴 벽면에 신의 경지에 가까운 붓을 휘둘렀다. 그리고 빙하기가 물러나가면서 새로운 기회가 열렸을 때 그 속도가 빨라졌다. 신석기 시대라는 농경 정착 문화를 시작했다. 이제 숲을 돌아다니며 과일을 따먹고 사냥에 의존하던 수렵채집문화 시대는 끝났다.

유럽인의 아메리카 정복에는 전염병이 일등공신이다.

농경문화의 시작이 가져온 환경 변화는 인류에게 풍요로움만 안겨줬는가? 아니다. 새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류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초기 농부들은 새 음식이 익숙하지 않았다. 탄수화물 섭취가 거의 세 배로 늘어난 반면 단백질 섭취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低)단백 고(高)탄수화물 식단은 초기 농부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유전자와 환경의 이런 부조화는 골격 증거에서 확인된다. “평균 신장이 13센티미터나 줄었다. 초기 농부의 뼈에는 병을 앓은 흔적이 많이 나타난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옥수수 도입으로 많은 사람이 충치와 빈혈에 걸렸다. 철분 결핍 탓이었다.”

식품 변화에 따라 몸이 달라져야 했다. 소와 양을 가축이라는 이름으로 키우면서, 즉 우유라는 새로운 식품을 소화시키기 위해 락토오스를 분해하는 유전자를 만들어내야 했다. 동아시아(중국과 한국)인에게 술을 분해할 수 있는 유전자가 몸에 만들어진 것도 이때였다. 술은 농업 문명의 산물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소폭’을 그리 마시고도 다음 날 아침 약간의 고생만 하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선조들이 오래전 술을 마시기 시작해 술 분해 유전자를 미리 몸에 장착해놓았기에 가능했다는 말인가.

지리적 팽창도 진화에 대한 선택압으로 작용했다. 유럽의 고위도 지방에서 살기 위해서 밝은 피부를 필요로 했다. 자외선이 약하기 때문에 몸에 필요한 비타민D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피부색을 바꿔야 했다. 피부색 변화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영국 북동부에 살던 픽트인의 피부색은 검었다고 고대 로마의 정복자는 적고 있다.

질병은 농업 시대를 맞은 인류에게 닥친 진정한 어려움이었다. 밀집 거주와, 같이 살기 시작한 동물이 큰 원인이었다. 발진티푸스와 림프절 페스트는 쥐가 갖고 왔다. 홍역도 새로운 질병이다. 홍역이 수두와 달리 새로운 질병이라는 것은 홍역은 크고 밀집된 개체군에서만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인의 아메리카 정복에는 전염병이 일등공신이다. 유럽인은 전염병에 일정한 저항력을 갖고 있었지만 신대륙에 살고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은 무방비 상태였다. 미생물 군대가 스페인 군대보다 먼저 아스텍과 잉카제국에 침투, 이들을 초토화시켰다. 이들이 없었다면 에르만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가 1519년 아스텍 문명을 무너뜨릴 수 없었고,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532년 잉카제국을 붕괴시킬 수 없었다. 

유럽인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를 정복할 때는 남미와는 경우가 달랐다. 아프리카는 쉽게 정복되지 않았다. 유럽의 전염병보다 아프리카의 질병이 유럽인에게 더 위협적이었다. 말라리아, 황열병은 유럽인이 아프리카 내륙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유럽인이 풍토병을 극복할 수 있는 연구를 마친 뒤에야 본격적인 아프리카 공략에 나설 수 있었다. 때문에 아프리카 정복 시기는 아메리카 대륙보다 훨씬 늦었다.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주민은 아메리카 원주민과는 달리 대거 질병으로 죽지 않았기 때문에 아프리카는 식민지배에 오래 신음해야 했으나 거주민 자체가 바뀌는 일을 당하지는 않았다.

헨리 하펜딩 등 저자는 현재도 인류는 급격한 유전적 변화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인류의 유산율이 높은 걸 한 증거로 말한다. 인간 여성의 유산율은 진화상 친척인 침팬지에 비해 훨씬 높다. 유전자들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일어나는 ‘유전자 질주’를 그 원인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높은 지능 이야기다. 이들의 평균 지능지수는 115로 높다. 노벨상을 휩쓸고, 월스트리트를 장악하고 있다는 건 다 아는 얘기다. 하지만 흑역사도 있다. 족외혼을 오래도록 하지 않아 유전병이 가장 많은 집단이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끔찍한 유전병이 아슈케나지 유대인에게 많다. 그러니 유대인을 꼭 부러워할 만한 일도 아니다.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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