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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문화, 지금]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다시 떠올리는 이유

좋은 지도자란 거창하지 않다. 뛰어난 학식, 명석한 두뇌를 꼭 가져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초능력을 가진 ‘영웅’일 필요도 없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숱한 성현들이 지도자가 가장 소중히 해야 할 덕목으로 꼽는 것이 ‘민심을 섬기는 자세’다. 동서고금, 정치체제와 이념을 막론하고 같다. 스스로를 낮춰 늘 백성의 마음과 함께해야 하고, 진심으로 백성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의 마음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고, 임금이 가장 낮다고 했다. 백성이 군주보다 소중하며, 군주는 그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천하를 얻고 잃음은 백성에게 달려 있으며, 백성을 존중하고 위하는 것이 통치의 근본이라고 했다. 그 백성이야말로 물과 같아서 그 위에 떠 있는 배인 군주를 물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제 역할을 못해 국민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면 어김없이 이를 새삼 일깨우는, 국민이 진정 바라는 지도자상(像)을 그린 영화들이 나온다. 지금보다 나은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고, 다음 지도자를 향한 당부이기도 하다.

영화_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 2012년 9월 13일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리얼라이즈 픽쳐스, CJ엔터테인먼트

2012년 가을에 개봉해 1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킨 ‘광해, 왕이 된 남자’도 그랬다. 그해 겨울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어느 후보는 그 영화를 보고 감동해 눈물을 흘렸고, 어느 후보는 아예 그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 영화를 본 후보는 낙선했고, 대통령이 된 후보는 나중에 그 영화가 ‘좌파적’이라며 투자와 배급을 맡은 기업을 억압했다.

그리고 4년 뒤, 그 대통령은 탄핵됐고, 그 때문에 때아니게 치러진 대선에서 이번에는 눈물을 흘렸던 후보가 다시 후보로 나서 대통령이 됐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은 “너무 쉽고 뻔한 영화”라고 했다. ‘뻔하다’는 것은 시대와 배경만 다를 뿐 플롯과 인물 설정, 극의 전개가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와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게무샤’와 같이 어느 날 신분이, 그것도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게 바뀌는 이야기란 얘기다. 

또 하나의 ‘뻔하다’는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인간이 가짜 왕자, 카케무샤(그림자 무사), 왕이 되어 보여주는 것들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누구보다 왕에 대한 백성의 바람을 아는 광대 하선이 왕의 옷을 입고는 대동법 시행을 명하고, 양반과 관리의 횡포를 꾸짖고, 가난한 이들에게 선정을 베푼다. 헤어진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하는 어린 궁녀 사월이의 소원을 들어주고, 배고픈 나인들에게 음식을 남겨주고, 역모죄를 뒤집어쓴 오라비를 방면해 중전의 웃음도 되찾아준다.

가짜 왕의 ‘반란’은 누구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의 아픔을 먼저 들여다보고 차별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을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조정 대신들을 향해 “임금이라면, 백성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내 그들을 살려야겠소.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라고 꾸짖는 왕에게 감동하지 않을 백성이 있을까.

백성들만이 아니다. 도승지, 내관, 호위무사, 중전도 그가 가짜 왕이란 사실을 알고도 감동한다. 그래서 도승지는 그에게 이렇게까지 말한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진정 그것이 그대가 꿈꾸는 왕이라면 그 꿈 내가 이뤄드리리다”라고.

위대한 지도자도 별것 아니다. 우리가 ‘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소중히 하는 사람이다. 그 가치란 수많은 성현이 말했고, 꼭 그들이 아니라도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정의와 상식, 용기와 사랑, 나눔과 배려, 연민과 용서, 함께 사는 공동체 의식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간과 세상을 조금씩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그것을 실천하는 지도자가 세상을 감동시킨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뻔하지 않은 이유는 비록 역사적 상상력을 섞었지만 현실적 구체성으로부터 보편적 가치를 찾아내 그것을 섬세하고 개성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우리에게 인간성을 발견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화의 힘이자 문화의 본질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전설의 인물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가 끝도 없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이유도 비슷하다. 누구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의 아픔을 먼저 들여다보고 창녀와 거지조차도 차별하지 않고 아끼는 지도자와 조력자였기 때문이다. ‘킹 아더’, ‘원탁의 기사’, ‘엑스칼리버’, ‘카멜롯의 전설’에 이어 최근 선보인 가이 리치 감독의 ‘킹 아서: 제왕의 검’도 색다른 재미를 위해 판타지를 가미했지만 그 모습에는 변함이 없다.

운명적 사명감으로 폭정과 부패와 불평등과 사리사욕이 넘치는 세상을 정의롭고 공평하고 모든 백성이 편안한 왕국으로 바꾼 아서 왕은 ‘영웅’이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민주적이며 친근하고 겸손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약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한다. 그의 왕위를 도왔던 원탁의 기사들과 주변 인물들 역시 공을 과시하거나 자리 욕심을 내지 않고 조용히 뒤에서 돕는다. 

‘공정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는,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는,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되어 군림하고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따뜻하고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

새 대통령의 약속이다. 적어도 취임 이후 지금까지 새 대통령이 보여준 국민에게 먼저 소탈하게 다가서는 모습들은 그가 자신의 약속을 가식이나 포퓰리즘이 아닌 진심을 다해 하나하나 실천해나가고 있다고 믿게 해준다. 지도자라면 지극히 마땅하고(상식), 옳은(정의) 그 모습에 국민은 감동한다. 그만큼 우리 국민은 그런 지도자에 목말라 있었다는 얘기다. 늘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쓸데없는 노파심이겠으나 그에게 경구 한 구절 보내고 싶다.

 “너희 가운데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가장 높은 곳에 이른 예수의 말이다.

 
이대현 |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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