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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길은 역사다. 길은 문화다. 그리고 길은 인생이다. 길은 인간이 만든다. 누군가가 지나가야만 길이 생긴다. 길에는 그곳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와 그 시간들이 스며 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 길도 곧 사라진다. 역사도 시간도 멈춰버린다. 사람들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저 유명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도 지금 한낱 흔적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 문경새재를 걸어서 넘은 적이 있다. 굽이굽이, 오르락내리락 제1관문을 지나 제2관문을 통과해 제3관문까지 가파른 산길을 걸으면서 먼 옛날 이 길을 오갔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유생들은 과거를 보러, 장사꾼들은 봇짐을 지고, 임진왜란 때 의병들은 창을 들고 비장한 각오로, 숨이 차면 길 옆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더우면 계곡의 시원한 물을 얼굴에 끼얹으며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문경새재

▶ 자연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문경새재 과거길.

 

과거에 급제한 선비는 돌아올 때는 말을 타고 기쁨에 넘쳐 이 길을 지났을 것이고, 낙방한 유생은 힘없이 터덜터덜 이 길을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 환희와 절망이 이 길을 만들고 지켰을 것이다. 그래서 길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같은 길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맑은 날과 비오는 날이 다르고, 여름과 겨울이 다르고, 꽃이 필 때와 낙엽이 질 때가 다르다. 그 길을 지나간 인생들이 그럴 것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
자기 내면의 성찰과 사색의 시간

인간이 걷는 길은 겸손하고 부드럽다. 자연에 순응한다. 강을 건너지도, 계곡을 뛰어넘지도 않는다. 강과 시내를 따라, 들판의 가장자리로, 산등성과 계곡을 따라 꾸불꾸불 돌아가고 비껴간다. 곡선이다. 길은 길로 이어진다. 아무리 작은 길도 가다 보면 큰길과 맞닿고, 큰길도 어디쯤에서는 작은 길로 바뀐다. 막다른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 역시 이런 ‘길 위의 날들’인지도 모른다.

문명 그리고 빠르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인간이 그 곡선을 직선으로, 좁은 것을 넓게 만들었다. 이때 길은 오로지 이동통로일 뿐이다. 가능한 한 길이를 줄여야 한다. 문경새재에도 길이 4개다. 옛길 옆으로 자동차 길이 생기더니, 그 옆에 4차선 길이 다시 생겼고, 그 옆으로 또다시 고속도로가 뚫렸다.

1970년대 초, 버스를 타고 먼지가 날리는 포장길로 산허리를 돌아올라 험준한 고개를 넘을 때만 해도 ‘새재’의 역사가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산 중간에 터널을 뚫어 4차선 도로가 만들어지면서부터는 ‘새재’는 이름만으로 존재할 뿐 표정도 느낌도 사라졌다. 길도 인생도 표정과 색깔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

인간의 발길로 다져진 길은 느리고 겸손하다. 자동차 바퀴만 지나가는 길은 빠르고 맹렬하다. 고속도로가 인터넷이라면, 옛길은 종이책과 같다. 인터넷이 그렇듯 고속도로는 우리에게 효율성과 시간을 주고, 종이책이 그렇듯 걷는 길은 우리에게 생각과 자유를 준다. 느림이, 멀리 돌아가는 여유가 가져다주는 자기 내면의 성찰과 사색, 자연과의 대화. 아무래도 좋다. 샛길도, 어슬렁거려도, 가다가 멈춰서도, 가던 길 되돌아와도, 길을 잃고 헤매도, 지나가는 사람과 얘기를 하며 걸어도.

걷기야말로 인간이 직립보행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동력이다. 어떤 도구나 문명 없이 오직 두 다리의 힘과 발바닥만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어딘가를 가야만 하는 목적이라면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면, 어디를 가기 위해 굽은 길을 걷는 일은 우둔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한국계 일본인 문화인류학자 쓰지 신이치는 <슬로 라이프>에서 “걷기는 그 자체에 만족하고 있는 상태이며, 느리게 사는 삶(슬로 라이프)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그는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즐길 때처럼, 목적과 수단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무엇이든 존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과연 우리가 얼마나 지니고 있는 것인가 하고 묻고 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경제라는 척도만으로 이 귀중한 자유를 낭비라는 한마디로 정리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로지 건강을 위해 부지런히, 마치 숙제하듯이 걷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역시 목표가 있기에 걷기가 자유롭지 못하다. 걷다가 지치면 쉬어가고, 길 옆 이름 모를 들꽃에 잠시 한눈을 팔기도 하는, 말 그대로 ‘산책’이어야 육체와 함께 정신도 건강해진다. 걷기가 강박이 되는 순간, 걷기는 즐거움과 여유가 아닌 미련한 노동이 된다.

 

둘레길•해파랑길 걷기
자연과 문화, 역사의 흔적을 느끼는 행복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사람이 지나다닌 수많은 길들이 있다. 그것들이 ‘올레길’, ‘둘레길’로 이어져 사람들의 발길로 생명을 되찾고 있다. 최근엔 동해안에도 ‘해파랑길’이란 이름의 걷는 길이 열렸다. 저 남쪽 부산에서 위로는 강원도 고성까지, 때론 동해의 일출과 파도와 함께, 때론 바닷바람 부는 모래밭과 솔밭을 지나, 때론 그 옛날 생선장수의 생선 비린내를 맡으며, 때론 역사의 흔적을 확인하며 몇 날 며칠이고 가다 쉬다 하면서 걷는 2000리 가까운 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이 길 위에도 수많은 삶이 쌓이고, 추억이 쌓이고, 역사와 시간이 쌓일 것이다.

 

문경새재

▶ 휴일을 맞아 등산에 나선 시민과 관광객들이 봄의 정취를 만끽하며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꼭 천 리를 다 걸을 필요도 없다. 꼭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목적지를 정할 이유도, 한 시간에 가야 할 거리를 정할 필요도 없다. 어디에서 걷든, 얼마를 걷든 그곳, 그만큼이 나의 길이고 인생이다. 욕심도 버리고, 시간도 버려야만 살아 있는 길을 만날 수 있다.

세상에는 빠른 길도, 느린 길도 있다. 어느 하나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인생에는 둘 다 필요하니까. 다만 늘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남들보다 한 걸음이라도 앞서려고 곧은 길, 넓은 길, 빠른 길만 선택하지는 말자. 발길 닿는 대로 걷는 느리고 좁고 굽은 그 길 위에도 인생이 있고,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길이 있어 그 길을 걷는다”라고. 이를 인생에 대입하면 인생이 있어 살아간다는 얘기다. 아니다. 인생도, 길도 우리가 걸어가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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