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무와 교감하면서 의미를 나누고 나무의 언어로부터 상징적인 생태 학습을 했다. 헤르만 헤세는 그런 맥락에서 나무와 십분 교감했던작가였다. 그는 집을 옮길 때마다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에 밀짚모자를 쓴 헤세는 정원에서 토마토 가지도 묶어주고 해바라기에 물도 주었다.
싱그러운 함박웃음으로 포도를 수확하기도 했다. 적어도 헤세에게 정원은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몸을 맡길 수 있는 자연의 리듬이었다. 혼란스럽고 고통에 찬 시대에 영혼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안식처였다. 정원 일을 하면서 자연과 인생의 비의를 성찰했던 헤세는 〈정원 일의 즐거움〉에서 이렇게 쓴다.
"얼마 안 가서 우중충한 쓰레기와 죽음을 뚫고 새싹들이 솟아오를 것이다. 썩어 분해되었던 것들은 그렇게 새롭고 아름다우며 다채로운 모습으로 힘차게 되살아난다. 이러한 자연의 순환은 단순하고 명징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깊은 생각에 빠뜨리며, 모든 종교는 예감에 가득 차 경배하듯 거창하게 그의미를 해석해낸다. (중략) 지난해의 죽음에서 양분을 얻어 소생하지 않는 여름은 없다. 모든 식물은 흙에서 자라나올 때 그러했듯, 역시 묵묵하고 단호하게 흙으로 돌아간다."
이런 질서정연한 자연의 순환을 헤세는 내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땅 위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이 이런 순환 원리에서제외돼야 한다는 사실을 반성한다. 무정부적 소유 의지를 지닌 인간 행태를 반성적으로 성찰한다. 이런 헤세이기에 그의 에세이집 〈나무들〉은 많은 사람들의관심을 끌었다.
"나무는 늘 내게 가장 감명을 주는 설교자였다. 나는 나무가 크고 작은 숲에 종족을 이루고 사는 것을 숭배한다. 나무들이 홀로 서 있을 때더더욱 숭배한다. 그들은 마치 고독한 사람들과 같다. 시련 때문에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아니라 위대하기에 고독한 사람들 말이다, 마치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나무들의 꼭대기에서는 세상이 속살거리고 그들의 뿌리는 영원 속에서 쉰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제 안에 있는 법칙에 따라 자기 고유의 것을 채우고 자신의 모습을 완성하고 표현하는 데 온 힘으로 정진한다. 그 어느 것도 아름답고 튼튼한 나무보다 더 성스럽고 모범이 되는 것은 없다."
헤세가 성찰한 고독한 사람은 품격 높은 자기 세계를 추구하는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위대한 고독한 사람들"이 될 수 있다. 숲에서 더불어 혹은 홀로 끊임없는 위험 속에서도 강인하고 옹골차게 자라는 나무를 전범 삼아 자기 세계를 도야하려 했던 헤세는 나무의 신화성을 신뢰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무의 나이테를 눈여겨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헤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게 마련이다. 서 있을 때는 헤아리기 쉽지 않지만, 어떤 연유든 나무가 베어져 저마다 다른 속살을 드러낼 때 우리는 그 나무들의 다채로운 이력을 짐작하게 된다. 나이테의 간격이나 일그러진 모양새는 곧 그 나무가 어떤 이야기를 살아냈는지를 증거로 보여주는 구체적 형상이기 때문이다.
폭풍우와 싸우던 시절, 혹한이나 혹서의 고통, 가뭄이나산불의 시련 등을 잘 견디며 단단하고 옹골찬 나무로 성장한 경우에는 대개 나이테가 촘촘하고 아름답다. 비교적 행운의 세례를 받아 여유 있게 자랄 수있었던 시절은 그 간격이 널찍하고 모양새도 좀 심심한 편이다.
봄이 왔지만 봄이 온 게 아니라고, 쉬운 일이 없다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힘겨워하는 목소리들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과연 고독한 고난을 넘어 품격 높은 자기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래저래 나이테에 스미고 짜인 수많은 의미의 고리들과 그 역설을 생각하게 하는 봄날이다.
글 ·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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