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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문화, 지금] 소설 읽기, 노동 아닌 즐거움으로

우울할 때면 기발하고 엉뚱하고 대담한 상상력과 이야기로 잠시나마 우리를 유쾌하게 해주는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펴든다.

한국 소설가가 아닌 것이 조금은 유감이지만, 그가 늘 반가운 것은 누구보다 우리 불만과 심리를 잘 읽고 그것을 섬세한 이해와 따뜻한 사랑으로 쓰다듬고 녹여주기 때문이다. 잡지 편집자, 카피라이터, 방송 구성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쌓은 재치 있는 글솜씨로 그는 현실의 모순과 문제점들을 날카롭고 섬세하게 파고들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유머러스하다. 심각하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담스럽다.

<공중그네>는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듬해(2005년) 국내에 선을 보였으니 벌써 12년이 됐다. 그러나 지금도 독서에 관한 글이나 강의를 할 때면 이 소설을 가장 먼저 언급하고, 권한다. “왜”라고 물으면, 자신 있게 말한다. “재미있으니까.”

7~8년 전 이웃에서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 독서와 글쓰기 지도를 부탁했다. 마침 그들의 친구인 둘째 아들도 책을 읽지 않고 컴퓨터게임만 하고 있어 한번 해보기로 했다. 지도라고 해야 별것 없었다. 책 읽고, 서로 생각을 말하고, 그것을 글로 간단히 써보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책보다 영화를 더 좋아한다는 것, 그나마 만화는 가끔 읽지만 소설이나 다른 책은 싫어한다는 것, 내용이나 장르에 상관없이 길고 두꺼운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 당연히 첫날부터 모두 우거지상. “또 공부야?”가 얼굴에 쓰여 있었다. 어른들이라고 그들과 크게 다를까.

알다시피 우리나라 국민, 특히 성인의 독서량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2015년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1/3 이상이 1년에 한 권도 안 읽었다는 통계도 있다. 더구나 지금처럼 세상이 정신없이 요동치거나, 살기가 팍팍하고 침울할 때는 더욱 책을 멀리한다. 현실이 소설이나 드라마보다 훨씬 재미있고, 책보다는 영화나 드라마란 판타지로 현실을 잠시 잊는 것이 편하니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책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책의 선택에 있다. ‘재미’없는 책을 읽으려 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더 잘 살고, 더 잘 벌고, 남보다 앞서고, 이기기 위한 목적만을 위한 책. 아니면 괜히 명작이니 고전이니 하는 허명에 매달려 내 취향이나 감성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책을 읽으려 하니 그게 어디 독서인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또 하나의 노동일 뿐이다. 공자의 말을 빌리면 재미가 없으니 좋아할 리 없고, 좋아하지 않으니 즐거울 리 없다.

독서의 ‘재미’도 여러 가지다. 희로애락의 자극일 수도 있고, 새로운 지식의 습득일 수도 있고, 역사와 현실의 깨달음일 수도 있으며, 보편적 가치에 대한 소중함의 확인일 수도 있다. 그 재미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독서의 고정관념부터 깨야 한다. 의외로 간단하다. 무조건 ‘재미’있고, ‘길지 않은’ 책부터 읽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선택한 첫 책 역시 <공중그네>였다. 재미없으면 즉시 그만둔다, 다 읽기 힘들면 그중 한 편만 골라서 읽는다는 조건으로. 이런 조건을 비웃듯 이 소설을 낄낄거리며, 키득키득하며 다 읽은 아이들은 오쿠다 히데오의 팬이 되어 <마돈나>, <남쪽으로 튀어>, <면장 선거>를 읽었다.

오쿠다 히데오 소설의 ‘재미’가 기상천외한 캐릭터일 수도 있고, 엉뚱한 상황에 빠진 인간에 대한 연민일 수도 있고, 정신병에 대한 새로운 공감과 자각일 수도 있고, 잠재된 욕망의 대리 발산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 재미의 폭과 다양성도 걱정할 필요 없다. 한 가지 재미가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 독서의 매력이다.

<공중그네>의 유쾌함은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환자인 야쿠자, 서커스 단원, 야구 선수, 여류 작가 모두 고정관념을 깨버린 인물들이라는 사실, 그래서 어이없는 상황들이 이어지지만 결국에는 그것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과정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지방선거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을 코믹하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한 <면장 선거>, 어느 직장에서나 있을 법한 회사원들의 고민과 이탈, 애환과 환상을 거침없는 웃음과 눈물로 드러낸 <마돈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남쪽으로 튀어!>는 어떤가.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싫다고 버릴 수는 없다. 사회제도와 문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살 수는 더더욱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꿈을 대신해 주인공 우에하라는 그 무모한 목표에 도전한다. 정치인들이 멋대로 ‘국민의 의무’라고 정해놓은 것을 거부하며 “난 오늘부터 국민 안 한다”면서 가족과 함께 남쪽 외딴섬으로 튄다.

<남쪽으로 튀어!>가 바라는 것은 주인공의 멋진 이탈도, 무정부주의의 성공도 아니다. 그의 어설픈 도전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코믹한 해프닝을 통해 크게는 국가란 존재에서부터 작게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인간을 옥죄고 있는 법과 제도, 그것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불합리와 탐욕, 이기주의와 비인간성의 고발이다. 그 방법 역시 오쿠다 히데오답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노인들만 남은 산골의 삶과 풍경을 담았다. <공중그네>, <면장 선거>,
<마돈나>처럼 6편으로 된 연작 <무코다 이발소>는 젊은이라고는 없는, 나날이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쓸쓸하고 쇄락한 홋카이도의 도마자와가 무대. 강원도 어느 탄광촌으로 바꿔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삿포로에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이발소 가업을 잇겠다며 내려온 스물세 살 아들, 중국 처녀와 몰래 결혼해놓고는 마을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노총각, 늙은 부모만 고향에 두고 도쿄에서 생활하는 중년 사내, 도시에서 호스티스 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내려와 술집을 차린 40대 여자, 한때 고향에서 최고로 성공한 인물로 꼽혔지만 사기꾼이 되어버린 청년의 이야기가 미소와 함께 가슴에 스며든다. 박태원의 <천변풍경>처럼 따뜻하고 애잔하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유머가 예전 소설처럼 요란하지 않다. 기발한 캐릭터나 엉뚱한 해프닝도 술집 여자와 그녀를 둘러싼 동네 남자들의 심리전을 빼면 별로 없다. 대신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인정과 사랑이 넘친다. 나이가 들면 사람도, 풍경도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유쾌하다는 것을 예순을 바라보면서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더욱 우울한 날이면 동년배인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이 읽고 싶어지는 것은 아닌지.

 


이대현 |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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