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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문화, 지금] 국제영화제를 기다리는 이유

17년 전의 일이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이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생기고, 이른바 우리나라 3대 국제영화제로 꼽는 전주국제영화제 출범(2000년)을 앞두고 영화문화정책연구소가 ‘바람직한 영화제’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해 22만7000 여 명이 방문하는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부산국제 영화제의 개막식을 보기 위해 관객들 이 기다리는 모습.

 

그때 이미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런 국제영화제 말고도 테마별, 장르별 크고 작은 영화제를 경쟁적으로 열고 있었으며, 지금은 국제라는 이름을 단 서울여성영화제도 시작했다. 그야말로 하루가 멀다 하고 영화판이 벌어졌고, 자고 나면 어느 도시에 영화제가 생겼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상을 뛰어넘는 성공이 자극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당연히 영화제를 두고 말도 많았다. 한쪽에서는 “영화제가 상영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지역주민들에게 즐거운 축제의 장이 되니 다다익선”이라고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소비성 잔치”, “지자체장들의 생색내기와 업적 과시”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날 토론회는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가운데 열린 영화제를 주제로 한 첫 논의였다.

그런데 그때, 그것도 영화제 당사자들이 말한 것들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뒤집어 말하면 영화제의 역할과 가치가 너무나 많이 바뀐 지금에도 우리나라 국제영화제들은 그 긴 세월 동안 크게 바뀐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규모와 유명 스타들에 의존하는 국제영화제
소비성 잔치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당시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출신인 김홍준 씨는 “우리나라의 영화제는 모두 필름 페스티벌, 그것도 큰 것은 관(官) 주도의 거액 행사이고, 작은 것은 민간 주도의 초라한 영화 보기 행사”라면서 “큰 영화제는 태생적으로 조급성을 지닌 데다 규모에 집착하고 일회성, 하향식의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도 여성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만들어져 국가와 지자체의 돈을 쓰면서 외형만 키우면 치적이 되는 “권력형 영화제”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실제로 ‘국제’란 이름을 붙인 영화제들은 해마다 규모가 커져 몇 개 나라, 몇 작품을 신기록 자랑하듯 내세웠다. 슈퍼마켓을 방불케 했다. 목표도 뚜렷하지 않고 차별성도 없는 영화제들이 작품 초청에만 매달려 중복 상영까지 하면서 관객 수에만 집착하고, 그것을 권위와 성공의 척도로 삼으려는 행태는 국제영화제의 시작과 함께 있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역시 같은 주제로 정치권까지 합세한 토론회가 열렸다. 정부가 국제영화제 지원을 줄이려는 분위기에 반대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지, 한국 영화의 위상과 발전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를 강조하는 자리였다.

정권이 바뀌면서, 시장이 바뀌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 와중에도 영화제들은 물론 나름대로 변신을 시도했다. 아시아의 창, 판타스틱, 대안, 음악 등의 성격을 입혔고, 단순한 영화 보기 잔치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필름 마켓을 열어 한국 영화산업과의 연계에도 신경을 썼고, 부대행사로 관광 효과도 노렸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부산프로모션플랜(PPP)’,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잇 프로젝트’, 전주국제영화제의 ‘전주프로젝트 마켓’ 등이 생겼고, 한국 영화 제작 환경 개선과 인력 발굴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도 영화제는 규모와 유명 스타들의 잔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칸영화제는 휴양지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영화제를 시작했지만, 전통과 권위와 예술을 추구해 세계 최고가 됐다. 베니스 역시 휴양과 관광도시답게 비엔날레와 함께 영화제를 축제로 만들었다. 낭트나 로카르노는 구색 맞추기보다는 철저히 예술 지향적이고, 신인 발굴이나 제3세계 중심의 작은 영화제를 개최해 도시의 색깔과 이미지를 높였다.

그러나 비경쟁이어서 권위가 없고, 휴양이나 관광과도 연계되지 못하고, 자국 영화를 소개하고 파는 마켓 기능도 약한 데다 축제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한, 이도저도 아닌 영화제도 많다. 겉만 화려하게 꾸미려 하고, 상영작들만 잡다하게 벌여놓고 “골라, 골라”를 외치며 눈요기를 위해 스타 모시기에만 애를 쓴다.

우리의 국제영화제들은 어디에 속할까. 슈퍼마켓 스타일의 영화제, 스타들의 잔치판 같은 영화제도 의미 있을 때가 있다. 배급이나 극장의 지나친 상업화로 외국의 다양한 예술영화들을 볼 기회가 없는 마니아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기회를 준다. 부산국제영화제도 그때 출발했고, 그래서 성공했고,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의 다양성 존중한 부산국제영화제
마니아들의 영화 축제에 대한 갈증 해소

영화 상영의 다양성과 영화 축제에 대한 갈증이 1996년 첫해 18만여 명의 팬을 부산으로 몰려가게 했다. 이후 20년을 지나오면서 지난해에는 22만7000여 명이 방문하는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그것도 처음에 비해 여섯 배 정도의 예산(120억 원)을 쓰고 세운 기록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결과였다. 도쿄와 홍콩의 영화제들이 시들해지면서 갈 곳 잃은 아시아 영화들, 아시아 시장을 노리는 유럽 영화들이 대거(31개국 169편) 부산을 찾은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여주기로 몇 년을 반복하는 사이 시대가 바뀌었다. 영화 상영 환경도 좋아지고 영화 소비 행태도 달라졌다. 수십 개의 영화 전문 케이블 채널이 생겼고, 인터넷 시대에 웬만한 영화는 어느 나라 것이라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블록버스터의 멀티플렉스 독과점은 아직도 여전하지만, 그 대신 작은 영화관이 곳곳에 생겼다. 영화제가 이 같은 상영의 다양성을 유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금 빨리, 아니면 세계에서 가장 먼저(월드 프리미어)라는 자랑 하나로 존재하기에는 영화제들이 너무 커졌다.

시기별 한국 영화의 제작 편수와 해외 시장에서의 등락을 보면 영화제의 중요한 존재 이유인 자국 영화산업의 활성화와 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어렵다. 애를 쓰고는 있지만 영화제의 성격이 변하지 않는 한 ‘생색내기’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에 대한 기여도 일부분일 것이다. 영화제가 영화의 ‘전부’도, 더구나 문화예술의 ‘전부’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과감히 인정하고 잡다한 욕심과 자만을 내려놓지 않는 한 우리나라 국제영화제들은 20년이 지나도 처음 안고 있던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이대현 교수

 

글 ·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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