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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문화, 지금] 민화, 위대한 예술 세계로 초대

세상에는 유명 화가들의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점에 몇억원 하는 그들의 그림은 솔직히 서민들과는 별 관계도 없다. 기회가 닿아 전시회에서 한번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화가도 그렇다. 꼭 고전적인 화풍과 예술적 형식과 장르만을 추구해야만 화가가 아니다. 비록 정통성은 없지만 나름대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화가다.

예나 지금이나 이름이 없거나, 이름이 있어도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은 많다. 그들은 정식으로 그림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화단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냥 떠돌며 그림을 그렸고, 그림에 자기 이름 석 자조차 남기지 않았다. 신분질서가 흔들리고 서민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조선 후기에 정통회화를 모방해 그들이 그린 그림들. 바로 ‘민화’다.

 

 2014년 계명대 행소박물관에서 열린 민화전시회에서 학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2014년 계명대 행소박물관에서 열린 민화전시회에서 학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한국적 삶과 정서가 스며 있는 민화
'속화’라 불리며 평가절하되기도

당시 유행처럼 번진 민화는 병풍이나 족자, 부채와 용기, 벽 등 생활 공간을 장식하기 위해, 아니면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그려졌다. 당연히 예술적 가치 구현이나 예술적 존재 추구보다 실용적 목적이 강했다. 그리고 그 종류와 양식도 장식하는 장소와 용도에 따라 다양했다. 온갖 새와 꽃, 물고기와 동물이 등장하고, 사시사철 풍속이 담겼으며, 유명 고사와 전설, 소설의 내용을 간추려 표현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글자의 획에 그 글자의 의미와 관계있는 형상을 그린 문자도도 있다. 진짜 서가처럼 병풍에 책장과 책들, 거기에 문방사우까지 곁들인 대형 책거리도 있다. 무당이나 점쟁이 집에 거는 크고 작은 무속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소재와 모습으로 늘 서민들의 일상 가까이에 있었으며, 시대의 생활양식과 정신세계, 역사와 관습을 표현했다.

이렇게 민화는 내용이나 발상에서 한국적인 삶과 정서가 짙게 스며 있는 우리 고유의 그림이었지만 ‘속화(俗畵)’라고 불리며 ‘싸구 려’ 취급을 당했다. 처음 한글을 ‘언문’이라고 하면서 천대했듯이. 정 통회화에 비해 민화는 품격과 세련미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점도 있다. 서민들의 일상생활 양식과 관습에 바탕을 두고 있 었기에 예술적 창의성보다는 그리는 삶에 따라서는 인습적인 되풀 이에 그치기도 했다.

 

 앙증맞은 고양이와 어여쁜 나비를 그린 조선시대 민화 ‘묘접도’. 이 그림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숨어 있다.

▶ 앙증맞은 고양이와 어여쁜 나비를 그린 조선시대 민화 ‘묘접도’. 이 그림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숨어 있다.

 

그러나 민화에는 정통회화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있다. 익살스 럽고 소박한 형식, 때론 대담하고 파격적인 구성, 아름답고 원색적 인 색채 등이다. 한국민화학회를 창립했고, 20년 가까이 우리의 민 화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민화는 자유다”라 고 했다. 정통화가들이 구사하기 힘든 상상의 세계가 자유롭게 펼쳐 져 있다는 것이다.

어떤 권위에도 구애받지 않고, 어떤 규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 유로움의 구가. 그것이 때론 과감하게 때론 무심하게 전통의 형식 을 파괴하고, 굳어진 관습을 넘나들고, 형식을 재구성하면서 다채롭 고 풍요로운 예술세계를 영롱하게 빛나게 했다는 것이다. 무명 화가 들이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우리의 빛깔과 정서를 담고, 낡은 세계를 새롭게 만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 민화야말로 정 교수는 미국 민 간미술연구가 베트릭스 럼포드의 표현을 빌려 “평범한 사람들의 위 대한 예술”이라고 했다. 한국적인 정서와 미의식을 잘 드러내고, 정 감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표현한 민화가 진정한 의미에서 ‘민족화’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민화를 천시해 우리는 한동안 그 가치를 모르고 있었다. 그 것을 알려준 사람이 다름 아닌 일본의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 (1889∼1961)라는 사실도 부끄럽다. 1959년 그는 조선 민화를 극찬 했고, 일본에 조선 민화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일본 박물관 들이 우리 민화 수집에 열을 올렸고, 도록을 발간하는가 하면 에도 시대 풍미했던 자신들의 대중미술인 우키요에(淨世繪)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일본 대중미술 우키요에
문화관광 상품•국가브랜드로 자리매김

일본의 우키요에도 우리의 민화도 한 시대의 대중문화다. 그러나 둘 의 운명은 엇갈렸다. 목판화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우키요에는 시대를 이어 생명력을 키워갔다. 화려하며 감각적인 화면 구도, 강렬한 선과 색의 대비, 관능적인 묘사와 환상적인 문양의 우키요에는 일본의 자 연과 생활, 가부키와 연결되고 일상용품에까지 장식으로 활용됐다.

이렇게 일본을 대표하는 대중예술이자 문화상품이 된 우키요에 는 반 고흐, 마네, 모네 등 인상주의 화가와 유럽 예술가들을 열광 시켰고, 유럽 전역에 일본의 예술과 생활양식을 모방하는 ‘자포니즘 (Japonisme)’을 유행시켰다. 지금도 우키요에의 각종 캐릭터는 일본 은 물론 세계 곳곳의 음식점과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문화관광 상 품으로의 인기는 물론 세계인들에게 일본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브랜드’가 됐다.

민화도 그 개성이나 매력, 예술적 감각, 문화상품으로의 다양한 변주 잠재력이 결코 우키요에 못지않다. 형식을 의식하지 않은 미의 식, 투박하면서도 진솔한 정감,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인 삶에 대한 애착과 동경과 기원을 담은 다양한 캐릭터의 독창성은 얼마든지 지 금도 생활 속 실용화가 가능하고, 세계로도 나아갈 수 있다.

민화 자체가 융합이고 창조다. 무명 화가들은 무한한 변화와 상 상력으로 기존의 공식을 넓히고 변형하고 해체하면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형상과 주제를 뒤섞고 녹였다. 그 과감하고 자유로운 상상력 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우키요에처럼 민화를 문화산업화로 연결한다 면 유명한 ‘까치호랑이’처럼 민화가 문화융성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또 하나의 행복한 사자(使者)가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부터 ‘민화’를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자유와 상상력이 넘치는 고유의 대중문화로 더 가까이하고 사랑해야 한다.

서울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 전이 8월 28일까지 열린다. 좀처럼 볼 수 없는 58점의 아름답고, 자유분방하고, 섬세하고, 상 상력 넘치는 문자도와 책거리 58점을 한자리 에 모았다. 이름 없는 조상들이 남긴 ‘위대한 예술’을 한번 만나보라. 민화에 대한 ‘지금까지 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이대현 교수

 

·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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