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말이 어지럽다. 선거철을 맞아 더하다.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한 거친 말, 유권자를 끌어들이려는 달콤한 말 등말잔치가 벌어졌다. 비단 정치 탓만은 아니다.
아리송한 줄임말이 판치고, 인기 드라마 덕분에 "~지 말입니다"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이 유행한다. 이러니 말은 스스로 장벽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에서 보듯 세대나 직업을 같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말들이 늘어난다. 감정과 정보를 전달하거나 설득을 위한,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가장 유용한 수단인 말이 제 기능을 잃은 느낌이다.
그러니 언어의 연금술사라 할 시인들이 말에 관해 침묵할 리가 없다. 말의 숨은 뜻을 캐내고, 상황과 느낌에 적합한 말을 찾아내는 이들이 어지럽게 오가는 말에 한마디 보태는 것이 마땅하고, 또필요하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지은이는 말에 관해 깊고 빛나는 생각을 다듬어낸 적이 있는 시인이다. ‘시인의 감성 사전’이라 해서 몸, 동물, 사물에 관한 언어를 살핀 세권의 책을 낸 바 있다. 이번에는 일상어 사전이다. 아니 일상어 사전이라 했지만 실은 관용어 사전이다. 우리말에 무슨 관용어? 의아해할 게 아니다.
‘교회오빠’처럼 낱말 뜻만으로는 알 수 없거나 ‘기싱 꿍꼬또’처럼 혀 짧은 소리로도 말하는 이나 듣는 이가 충분히 교통하는 낯선 말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책에 실린 표제어는 칠십칠개다. 흔히 쓰는 상투어, 누리소통망(SNS)에서 자주 쓰이는 줄임말이나 신조어, 유행어 등을 골라 뜻풀이를 하고 긴 주석과 짧은 용례를 붙였으니 일종의 사전처럼 쓰인 에세이다. 한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생각이 깊고 흥미로워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음’이란 뜻으로 푼 ‘썸’을 보자. ‘어떤 것’, ‘무언가’란뜻의 영어 ‘something’에서 온 말이란다. 뭔가 있긴 있는데 딱히 뭐라고 지칭하기 어려운 것을 ‘썸’이라 부르면서 이성교제를 막 시작하거나 한창 교제하는 것을 ‘썸 타다’라고 말한다고 일러준다. ‘이 정도는 나도 안다’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겠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썸은 연옥이다. 여기에는 ‘혼자’에서 ‘함께’로 넘어가는 사이의 온갖 고통, 행복, 불안, 기대가 다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연옥에 산다." 이런 구절은 삶에 관한 성찰이 담겼다.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타다’는 능동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피동이다.
썸이라는 감정 혹은 사건이 내게 닥칠 때 반응이므로 나는 주체적으로 썸 탈 수가 없다. 나는 썸이라는 물결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약한 조각배에 불과하다"에이르면 시인의 감수성에 감탄이 나온다.
여자가 남자를 추궁할 때 종종 쓰는 말, ‘내가 왜화났는지 몰라?’ 편에선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모른다는 대답은 불쏘시개다. 그녀의 분노는 더욱 맹렬히 타오를 것이다. 그렇다고 안다고 해서도 안 된다. 더 무서운 질문이 돌아오기 때문이다"란구절에 공감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은이는 "남자는 이렇게 대답해야 옳았다. 자기가 모르는 걸 왜 나한테 물어?"란 말로 끝을 맺는다. 물론 그 뒷감당은 읽는 이의 몫이다.
‘헐’, ‘밀당’ 같은 이제는 일상어가 된 말에서 ‘방금 출발했어요’, ‘언제 밥 한번 먹자’ 등 상투적 표현, ‘차카게 살자’ 등 양지로 나온 말까지 곰곰 생각해본 글은 재미있다. 일상의 철학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만날 수도 있고.

외롭지 않은 말
권혁웅 지음 | 마음산책 | 268쪽 | 1만 3천 원
글 ·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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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