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동물원! 사자며 악어, 기린 등 이국적인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 회전목마 등 환상적인 놀이기구들을 즐길 수 있는 곳. 한때는 창경원의 또 다른 이름인 줄 알았던 곳. 중•장년들에겐 향수를 자아내는 이 말을 요즘은 듣기 힘들다. 동물보다는 롤러코스터며 플룸라이드 등 이름도 낯선 신기한 놀이기구들이 주역인 ‘놀이공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 책은 어쩌면 시대의 퇴물이 돼가는지도 모르는 세계 곳곳의 동물원을 다녀본 여행기다. 대만의 소설가가 2012년부터 2년간에 걸쳐 14곳의 동물원을 답사하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캐냈다. 그러니 흔히 말하는 ‘테마 여행기’인 셈인데 당연히 주제에 관한 깊은 이야기가 담겼다.
프랑스 파리식물원 안에 있는 동물원은 시민의식의 요람 역할을 했단다. 1789년 대혁명 이후 베르사유 궁전의 동물들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급진주의자들은 말과 소 등 ‘쓸 만한 동물’만 남겨두고 원숭이 등은 피혁상에 넘겼다. 쓸모도 없고 처리하기도 난처한 동물들은 표본이나 만들라고 파리식물원에 보냈다. 세계 최초의 공공동물원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맹수의 비율, 기르는 방식, 예산과 인력 등 동물원을 둘러싼 끝없는 논쟁 속에서 사회 안전과 권익의 문제에 눈을 떴다.
“1941년 첫 번째 폭탄이 떨어졌다. 총 764대의 영국 전투기가 날아와 폭탄을 떨어뜨렸다. 동물원도 이미 초토화되었다. 3715종 가운데 살아남은 동물은 사자 두 마리, 하이에나 두 마리, 아시아코끼리 한 마리, 코뿔소 한 마리 등 모두 91마리뿐이었다.”
서베를린 동물원이 겪었던 일이다. 명소를 찾아 사진 찍기에 바쁜 겉핥기 관광객들로선 모두 떠올리기 어려운 이야기다.
여기에 사이사이 너구리, 토끼 등 동물에 관한 글이 담겨 읽는 맛을 더한다. ‘사랑에 빠진 실버백 고릴라’가 그중 하나다. ‘실버백’은 무리 중 가장 강한 성년의 수컷 고릴라를 뜻한다. 열두 살이 되면 등의 털이 은백색으로 변하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2007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동물원의 ‘보키토’란 실버백 고릴라가 우리를 뛰쳐나와 한 여성을 공격해 중상을 입혔다. 한데 이 여성은 일주일에 평균 네 차례나 보키토를 찾아와 유리를 사이에 두고 ‘교감’하던 사이였다 해서 화제를 모았다. 결국 고릴라의 공격을 견뎌낼 정도의 내구성과 강도를 뜻하는 ‘보키토프루프(Bokito-proof)’라는 말이 그해 네덜란드 최고의 유행어가 됐다고 한다.
‘지식을 통한 저항의 상징(베이징 동물원)’, ‘느림의 미학을 체득하는 공간(몽펠리에 동물원)’ 등 다양한 동물원이 등장하지만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것은 지은이의 글솜씨다. 동물과 여행을 다룬 온갖 영화와 동화와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작가이니 그렇다 쳐도 동물원을 둘러싼 온갖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설명들을 보면 ‘아, 정치학을 공부했다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
베이징 교외에 자리 잡은 야생동물원인 바다링 동물원을 이야기하면서 “그대가 곰도 아닌데 춤추는 곰이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 어찌 안단 말인가?”라는 장자(莊子)의 말을 꺼낸다. 그러면서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춤추는 곰도 기분 좋을 때가 있다. 심지어 웃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춤추는 곰들에게서 비할 데 없는 슬픔을 본다. 춤추는 곰은 모두 사슬에 묶여 있으니까”라고 마무리한다. 단순한 여행 에세이를 넘어서는 책이라 권하는 이유 중 하나다.

동물원 기행
나디아 허 지음 | 남혜선 옮김 | 어크로스 | 408쪽 | 1만7000원
글 ·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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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