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이름만으로 선뜻 선택할 수 있는 저자가 있다. 미국 태생으로 영국에서 활약하는 저널리스트 빌 브라이슨이 그중 한 명이다. 꼼꼼한 취재와 익살스러운 문체가 어우러진 그의 책은 어떤 주제를 다뤘든 믿고 펼쳐도 된다. 유익하면서도 유쾌하기 때문이다.
이건 주관적 평가가 아니다. 국내에 번역·출간된 그의 책이 20종에 가깝다. 유명 작가가 아니면서도 이 정도로 사랑받는 저자는 드물다. 게다가 여행기, 과학사, 언어, 역사 등 다방면에 걸쳐 있으면서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덕분이다. 실제 출간되던 해 ‘올해의 책’으로 수차례 꼽혔던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와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도전한 명랑한 기행문 〈나를 부르는 숲〉(동아일보사)이 같은 저자의 작품인 걸 뒤늦게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책 역시 브라이슨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책이다. 제목이 시사하듯 영국 여행기로 영국 시골마을을 답사한 기록이다. 한데 책머리의 영국 전도(全圖) 한 장 빼고는 지도나 풍광 사진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이색 기행문이다. 그 대신 꼼꼼한 정경 묘사와 숨겨진 지역사를 소개하는 데 이게 여간 맛깔스러운 게 아니다.
"버스 이름은 ‘연안정기버스 700’이었다. 미끈한 몸체에 세련된 외관, 터보 엔진이라도 달려 있을 법한 이름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그 무엇도 없었다. 비좁은 단층 버스는 마치 죄수들과 함께 어디론가 호송될 때 탈 법한 그런 차였다."
여행 출발지인 보그너레지스에서 브라이턴으로 가는 시외버스 이야기다. 지은이는 거기서 ‘얼간이 행성’에서 온 젊은이를 만난다. 제 머리보다 몇 치수는 더 크고 챙은 다리미로 누른 듯 평평한 야구 모자를 쓴 젊은이는 "이어폰으로 요란한 음파를 텅 빈 두개골로 보내고 있었다. 그의 두개골 속 공간은 아득하게 멀리 떨어진 별과 별 사이만큼이나 공허할 것"이라 추측한다.
‘영국의 책마을’로 거듭나려 안간힘을 쓰는 세드버그의 카페에서 유명 모델 케이티 프라이스의 자서전을 만나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책은 그녀의 다섯 번째 자서전이었으며 나이가 25세임을 생각하면 자서전을 아주 많이 낸 편이다. 소설도 다섯 권이나 썼는데 그녀가 낸 이 모든 책들은 그녀의 국제 비즈니스 왕국 운영과 최소한 한 개당 30kg은 나갈 것 같은 무거운 가슴을 달고 살아가는 삶을 지탱해준다."
지은이는 프랑스와 마주하고 있는 영국 남단의 보그너레지스에서 직선거리로 영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케이프래스를 여행하며 좌충우돌한다. 헉헉대며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다 바짝 뒤를 쫓아오는 운전자에 열을 받아 끔찍한 병에 걸려 확 죽어버리라며 저주를 퍼붓는가 하면, 주방장이 없다며 주문을 거절당해 밥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온 마을을 돌아다니고, 종착지인 케이프래스 목전에서 캐나다에서 온 할머니와 배표 예약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식이다. 지은이는 이 모든 과정을 예리한 통찰력과 건강한 유머를 통해 오늘날 영국의 최고의 모습과 최악의 모습을 전해준다.
이투덜이 노 저널리스트가 쓴 영국 기행문은, 실은 두 번째다. 그런데 어쩌다 이 책을 읽으면 지은이의 다른 책을 찾아 읽고 싶어질 것이라 장담한다. 여느 여행책에서 볼 수 없는, 낯선 영국 시골의 풍광과 인심을 통해 웃음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브라이슨의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그의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실감날 터다.

발칙한 영국산책 2
빌브라이슨 지음 | 박여진 옮김 | 21세기북스 | 496쪽 | 1만6000원
글·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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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