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 삶의 영역이 되는 도시의 모습이 있다. 하지만 몇 년을 살면서도 내가 사는 동네가 어떤 모습인지,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식으로는 평생 타인의 도시에서 살 수밖에 없다. 잠시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타인의 도시가 아닌 나의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
현대인은 대부분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도시에서 삶을 마감한다. 저마다의 건물은 도시의 풍경이자 얼굴이다. 건물 사이로 길은 이어지고 꼬리를 무는 자동차와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인파는 매일 반복되는 도시의 모습이다. 건축가인 저자는 도시 혹은 건물의 풍경 속에 흔적처럼 남아 있는 시간의 흐름을 드로잉으로 잡아낸다.
먼저 서울의 오래되고 사라져가는 피맛길에 눈길이 머문다. 피맛길은 '낮은 사람'들의 길이다. 종로 뒤편에 말 한 마리가 겨우 통과할 만한 길, 아랫것들이 윗사람 눈치 안 보고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배려했던 길, 골목 양옆으로 온갖 주점들이 줄을 서 있던 길, 도심에서 에너지를 소진하고 인공호흡이 필요할 때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어 시민들의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인사동과 낙원상가의 모습도 담아낸다.
건축의 형태를 모방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모방과 창조의 기준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건축을 하나의 창작행위 혹은 예술행위로 보는 시선의 등장과 함께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경주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보은 법주사 팔상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 김제 금산사 미륵전 등 한국 전통건축을 대표하는 최고의 목조건축물을 콘크리트로 정교하게 재현해놓았다. 각 건축물이 국가대표로 차출돼온 것이다.
근대화 이후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펼쳐졌다. 자고 나면 올라가는 건물,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건물이 수두룩하다. 부산도 마찬가지. 휴가철 피서지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해운대도 1965년 해수욕장이 개장하기 전까지는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했다. 지금은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이 해운대와 동백섬을 중심으로 줄줄이 늘어서면서 스카이라인을 바꿔놓고 있다.
석탄도시 강원도 철암에서는 버릴 수 없는 희망을 담아낸다. '검은 황금'을 찾아서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빠져나간 도시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하다. 도시는 마치 흑백사진처럼 점점 형태를 잃어가지만 그곳 사람들은 여전히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노화돼간다. 건축도 예외가 아니다. 건축주와 건축을 실제 이용하는 사람들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돼간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타인의 도시를 나의 도시로 만드는 일이다. 나의 도시와 타인의 도시 경계에는 낯선 것들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있다. 도시를 찬찬히 살피고 경험하는 일은 어쩌면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드로잉을 하는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그냥 스쳐가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너무나 평범해서 과연 이야깃거리가 될까 싶은 곳도 있다. 틈만 나면 그런 곳을 찾아가 그곳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성능 좋은 사진기로 살짝 누르기만 하면 건물 모습을 쉽게 담을 수 있는 지금, 창문 하나 기둥 하나 세심하게 손을 놀려 기록하는 것은 어쩌면 도시 곳곳에 정(情)이 흘렀으면 하는 마음을 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이 머무는 풍경
정연석 지음 | 재승출판 | 288쪽 | 1만5000원
글 · 윤융근 (위클리 공감 기자) 2016.03.21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